韓國의 說話
낙랑공주(樂浪公主)설화 - 호동왕자설화
나라와 사랑을 사이에 놓고 비극적인 종말을 가져온 설화이다.
낙랑공주설화는 다음과 같다.
32년(고구려대무신왕 15) 옥저(沃沮)에 놀러 왔다가 최리를 따라
낙랑에 온 고구려의 왕자 호동(好童)과 결혼하였다. 당시 낙랑에는
적이 침입해 오면 저절로 소리를 내어 그 사실을 알리는 자명고(自
鳴鼓)가 있어 정복하기가 어려웠는데, 호동의 부탁으로 자명고를
부수어 고구려군대가 낙랑을 멸망시킬 수 있도록 하였다. 그녀는
뒤늦게 사실을 안 최리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고구려 왕이 낙
랑을 공략하고자 계획적으로 낙랑태수에게 청혼하여 공주를 자부
(子婦)로 삼은 뒤, 그녀를 본국에 돌려보내 자명고를 파괴하도록 하
였다는 설도 있다.
호동왕자설화는 '삼국사기' 대무신왕(大武神王) 15년 4월 조(條)에
실려 전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구려 대무신왕의 차비(次妃) 소생인 호동은 얼굴이 잘생기고 천
성이 총명하여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는데, 어느 날 옥저(沃沮)로 사
냥을 나갔다가 낙랑태수(樂浪太守) 최리(崔理)의 딸인 낙랑공주와
사랑하게 되었다. 그때 낙랑에는 적병의 침입을 저절로 알리는 자명
고(自鳴鼓)가 있어서 정벌하기가 어려웠다. 이에 호동이 낙랑공주를
꾀어 자명고를 찢게 하고 군사를 이끌어 정벌하였다. 태수는 이 사실
을 알고 딸을 죽인 후 항복하였으나, 낙랑을 정벌한 호동은 원비(元
妃)의 참소와 공주에 대한 사랑의 번민으로 자살한다.
[출 처] : 동아대백과사전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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