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우리 마을 설립 5주년입니다. 내가 여기에 터를 잡고 구상한 지는 족히 10년이 되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 않던가요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어 왔습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라면 내 자신의 내면세계입니다. 내면세계라니 좀 거창한 이야기가 되었지만 한마디로 내겐 기다릴줄 아는 습성이 생겼다는 점 입니다.
이건 대단한 발전이며 성숙 입니다. 조급한 내게 무엇보다 큰 축복 입니다. 이런 느긋한 성품은 내가 특별히 인간 수양을 잘해서 된건 아니고 산에 살다보니 절로 그렇게되지 않을수 없게 됩니다.
자연은 조급히 군다고 내 뜻대로 급히 움직여 주지 않습니다. 씨를 뿌린 이상 싹이 터 올라오기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 합니다. 이게 자연의 순환원리 입니다 차분히 기다리는 것밖에 달리 처방이 없습니다.
발을 동동 굴려야 소용없는 일. 오직 처방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일뿐 입니다. 이런 자연의 원리를 터득하는데 그리 긴 시간을 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미련하고 아둔한 사람이라도 산에 사는 이상 이 정도는 쉽게 깨칠수 있습니다.
산에 살려면 자연과 친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자연이 베푸는 무한한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나는 매일 새벽 우리 마을 큰 당나무 아래 차 한잔 먹을 걸 챙겨 들고 나갑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 5시반이면 나무 아래 짧은 명상이 시작 됩니다.
그러고는 모이를 뿌려놓고 새들이 날아들기를 기다립니다. 녀석들은 워낙 조심성이 많아 좀처럼 가까이 오질 않습니다. 차츰 안심하는지 몇 해가 지나자 녀석들이 모이를 쪼아 날아들기 시작 합니다.
특히 눈 오는 겨울엔 먹잇감이 없어 무더기로 날아 듭니다. 일단 가까운 나뭇가지에 앉아 아래 상황을 예의 주시합니다. 안전하다는 판단이 서면 조심스럽게 내려옵니다. 그러나 잠시도 경계의 끈을 늦추지 않습니다.
한번 쪼아먹고는 고개를 쳐들어 사방을 돌아보곤 별일없다 , 안전하단 판단이 서면 다시 쪼아먹곤 똑같은 경계태세를 되풀이 합니다. 대체로 수십 초 안팎밖에 머물지 않습니다 열 번을 쪼아 먹었을까? 배가 부를리 없는데 녀석들은 일단 안전한 나뭇가지로 올라갑니다. 덩치 큰 놈도 이런 경계태세는 똑 같습니다.
다만 작은 놈일수록 그 속도가 빨라서 아주 신경질적 입니다. 먹이가 있는곳에 위험이 있다는 걸 짐승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것 같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인간 세계와 다르지 않습니다. 차츰 나와는 익숙해지고 안심이 되는지 거리를 좁혀오지만 한번 찍고 고개를 쳐들고 경계하는 동작엔 변함이 없습니다. 여긴 매도 없고 다른 천적도 없는것 같은 데, 그들의 본능적인 경계심은 나마저 불안하게 합니다.
나는 행여 그들이 놀랄까 봐 새가 가까이 있는 동안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차츰 나와 익숙해진 탓인지 아니면 아예 바위같은 정물로 생각한 건지 어떤 녀석은 내 신발 위에까지 올라타기도 합니다.
어느 날 아침, 한 놈이 내 어깨 위에 올라앉는게 아닌가? 아, 이럴수가! 순간 짜릿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구나 .이젠 너와도 친구가 되었구나 마치 애타게 기다리던 여인이 손을 잡아 주듯 잔잔한 감동이었습니다.
사람 사귀기보다 힘든게 새요,자연 입니다. 기다림, 믿음 , 베풂이 안겨주는 축복입니다. 이 점에서 사람이라고 어찌 다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