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談.野史.說話 523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명당

野談 ♡ 野史 ♡ 說話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명당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명당 여수설화 / 설화』   앵무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 봉두 (鳳頭)마을은   위씨 집성촌이다.   이곳에는 위효징의 집터가 있는데, ‘봉황포란지혈(鳳凰抱卵之穴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세 의 명당)’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일이다.   이순신 장군 막하에서 활동하였던 위 대경(魏大經 1555~1597)은 충렬공  (忠烈公) 위계정 (魏繼廷 ?∼1107)의 후손이다.   위계정은 고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부상서 등을 거쳐 1104년에 문  하시랑평장사를 지내고, 예종 즉위 후에는 문하시중을 지낸 장흥 위씨 최  초의 재상이다.   위대경은 장흥에서 태어나 21세 때인 1575년(선조 8) ..

야반도주했던 며느리 돌아오자

野談 ♡ 野史 ♡ 說話야반도주했던 며느리 돌아오자『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주막』  장날 저녁나절, 다섯살 아들 손을 잡고 장터에서 돌아온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어머님,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하는데 시어머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다섯살 손자가 솜을 두둑이 넣은 비단 바지에 공단 조끼를 사 입고 깨엿을 먹으면서 들어온 것이다.  “할머니도 깨엿 하나 먹어.” 삼대 독자 손자 녀석이 주는 깨엿을 받아들고 할머니는 목이 메어 말 한마디 못했다.  밤이 되자 시어머니는 고양이 걸음으로 며느리 방문 밖 에서 귀를 기울였다.“엄마 왜 울어?” “아니야, 감기가 걸려 눈물 콧물이 나는구나.” 손자 녀석이 잠이 들었는지 조용해지자 며느리의 흐느낌 이 시작되었다.이튿날 아침, 부엌문을 열어도 며느리가 보이지 않고,..

시어머니 드러눕자 살판난 며느리

野談 ♡ 野史 ♡ 說話시어머니 드러눕자 살판난 며느리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삼월이』    몸종 삼월이가 헛구역질 하자… 박 장군 댁에 먹구름이 몰 려왔다.     그 정정하던 안방마님이 빙판에 넘어져 꼼짝 못하고 드 러누운 것이다. 박 장군의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도 한풀 꺾여, 매일 사냥을 다니던 발길도 끊고 부인 병수발 에 매달렸다. 목관(牧官)으로 한평생 봉직하고 물러난 박 장군은 오십줄에 들어섰지만 아직도 쌀 한가마를 번쩍 들 어올리는데, 부인 병수발에 꼼짝도 못하니 죽을 지경이다.     살판난 사람이 하나 있다. 박 장군의 며느리다. 시집살 이하던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드러누웠으니 꺼릴 게 없다. 입 무거운 시아버지 박 장군은 며느리에게 잔소리할 위인 이 아니요, 남편은 함경도 변방에..

금을 사양한 홍씨와 이씨(讓金洪李)

野談 ♡ 野史 ♡ 說話금을 사양한 홍씨와 이씨(讓金洪李)『거짓말 세 마디』 옛날 한 고을에 과년한 딸을 둔 대감이 거짓말을 잘하는 사위를 얻고자 방을 붙였다. 누구나 거짓말 세 마디를 해서 대감이 모두 인정하면 사위로 삼겠다는 것이다. 어느 날 거 짓말 잘하는 총각이 찾아와 대감한테 거짓말을 했다. 첫마디는 “은진미륵 머리위의 대추나무에 대추가 풍성하게 열렸는데, 너무 높아 딸 방법이 없어서 장대로 은진미륵 코 를 쑤셔 재채기를 했습니다. 그 바람에 대추가 우수수 떨어 졌습니다.” 두 번째 거짓말은 여름에 더위를 이기기 위해 자기 마을에 서는 한 겨울에 찬바람을 봉지에 넣어 뒀다가 여름에 풀어 놓아 시원하게 지낸다는 것이다. 대감은 두 가지 모두를 거짓말임을 인정했다. 마지막으로 총각은 옷섶에서 종이를 ..

연못에 숯을 한 섬씩 가져다 부으면 안질이 낫는다고

野談 ♡ 野史 ♡ 說話연못에 숯을 한 섬씩 가져다 부으면 안질이 낫는다고『옥룡사와 백룡거사 광양설화 / 설화』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희양현(지금의 광양)에 날만 새 면 간밤에 돼지가 물려갔다느니 소가 죽었다느니 하는 이 야기들이 나돌았다. 어느 마을에는 괴질이 돌아 사람이 여럿 죽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또 다른 마을에서는 멀쩡 하던 아들이 부모를 살해했다는 끔찍한 이야기마저 흘러 나왔다. 새로운 현감이 부임한 전후로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 하여 민심이 흉흉하였고 조정에서도 감사를 나온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러니 현감이 골치가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날이면 날마다 현감이 측근들을 불러 모아 대책을 논의하 였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측근 가운데 한 명이 제안을 하였다.“사또, 도선..

살인을 부르는 엽전

野談 ♡ 野史 ♡ 說話살인을 부르는 엽전『살인을 부르는 엽전 보성설화 / 설화』 조선시대 때 보성군 벌교읍 어느 마을에 조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제법 농사를 짓 는 편이어서 살림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래도 소를 몇 마리 키워서 가끔 목돈을 손에 쥐는 재미로 살았다. 어느 날, 조씨가 소를 팔러 장터에 가려는데 큰아들이 따라 나섰다. 이제 큰아들 나이도 열여섯이니 세상 물정도 알 필 요가 있을 것 같아서 조씨는 아들을 데리고 소시장으로 갔 다. 여기저기 장터 구경도 시켜주고 흥정하는 것도 지켜보 게 하였는데, 조씨도 결국 소를 팔게 되었다. 조씨는 소 판 돈의 일부를 아들한테 줬다.“이제 너도 나이가 들었으니 이 돈으로 어찌 할 지 궁리를 해 보거라.” 그렇게 해서 각..

貞節婦人의 정문(旌門)

野談 ♡ 野史 ♡ 說話貞節婦人의 정문(旌門)『어떤 땡추가 상중(喪中)인 안방마님을 겁탈하려고』 옛날에 있었던 어떤 가정의 비화(?話) 한 토막을 들어보자. 무과에 급제해 부산으로 발령받아 내려가던 조익(趙翼/ 1579∼1655)이 밀양에 이르러 날이 저물어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술을 한잔하자 갑자기 지난 일들 이 떠올랐다. “십여 년 전 서당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 중 박주현의 고 향이 이곳 밀양이었지……. 그때 참 친하게 지냈는데…….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는데…….”밀양에선 뼈대 있는 집안이라 그 집을 찾는 데에 별 어려 움이 없었다. 그래서 대궐 같은 박주현의 집 솟을대문을 두드렸다. 하인들의 안내를 받아 사랑방에 좌정하자 소복 을 입은 젊은 부인이 나와 인사를 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

구슬을 쥐고 태어난 아이

野談 ♡ 野史 ♡ 說話구슬을 쥐고 태어난 아이『구슬을 쥐고 태어난 아이 곡성설화 / 설화』 조선시대 초 전라도 창평군에 우성해(禹性海)라는 양반이 살고 있었다.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도 많았지만 음주가무 와는 거리를 둔 채 치산(治産)을 잘 해 젊은 나이에 우성해 는 거부가 되었다. 아무런 부러움도 없을 것 같은 그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10대 후반에 은(殷)씨 처녀와 혼인을 하여 몇 년 만에 겨우 얻은 딸 하나만 보고 살았는데 그 딸이 시집을 안 가려 하 기 때문이다. 우성해의 딸은 적적해하실 부모님을 생각하 여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시집을 가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 스물이 다 되어서야 우성해의 딸은 낙안의 주 (朱)씨에게 시집을 갔다. 시집을 안 가고 노처녀로 지내는 것이 오히려 더 불효라는 생각을 ..

철쭉꽃이 필 무렵이면 연진을 부르는 호야의 목소리가

野談 ♡ 野史 ♡ 說話철쭉꽃이 필 무렵이면 연진을 부르는 호야의 목소리가『지리산 음양수와 선비샘 구례설화 / 설화』지리산 음양수 지리산 남부능선과 주능선이 만나는 지점에 음양수 샘터 가 있다. 지리산 음양수는 근래에 들어서는 수량이 줄어들 고 물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예로부터 지리산에 오르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물이었다. 음양수가 인기를 끈 것은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갈증을 풀 어주는 시원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이 물을 마시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전설이 더 큰 영향 을 주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음양수 샘 주위에 아이를 갖기 를 원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기도를 드리곤 했다고 한다. 아주 옛날 지리산 대성골에 호야라는 젊은이가 살았다. 사냥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호야는..

암행어사 박문수와 용소

野談 ♡ 野史 ♡ 說話암행어사 박문수와 용소『암행어사 박문수와 용소 구례설화 / 설화』 구례군 토지면 문수마을은 계곡물이 맑기로 유명하다. 여름철 비가 많이 내리면 유리알처럼 투명한 계곡물이 포 말을 이루며 흘러내리는 모습에 절로 더위를 잊게 한다. 그래서 여름철에 문수 계곡 일대는 피서객들로 인산인해 를 이룬다.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조선시대 때 일이다. 살기 좋은 문수마을에 언젠가부터 흉년이 들기 시작하였다. 먹고 살 기도 팍팍한데 연이어 흉한 일들이 일어났다. 먹고 살기가 팍팍하니 인심이 사나워지고, 그러다 보니 마을 사람들끼 리 다툼도 잦게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어떤 날은 뉘집 소 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느니, 또 어떤 날은 뉘집 닭이 떼 죽음을 당했다는 등 흉흉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