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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꽃이 필 무렵이면 연진을 부르는 호야의 목소리가

eorks 2019. 11. 12. 00:04
野談 ♡ 野史 ♡ 說話

철쭉꽃이 필 무렵이면 연진을 부르는 호야의 목소리가
    『지리산 음양수와 선비샘 구례설화 / 설화』 지리산 음양수 지리산 남부능선과 주능선이 만나는 지점에 음양수 샘터 가 있다. 지리산 음양수는 근래에 들어서는 수량이 줄어들 고 물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예로부터 지리산에 오르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물이었다. 음양수가 인기를 끈 것은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갈증을 풀 어주는 시원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이 물을 마시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전설이 더 큰 영향 을 주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음양수 샘 주위에 아이를 갖기 를 원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기도를 드리곤 했다고 한다. 아주 옛날 지리산 대성골에 호야라는 젊은이가 살았다. 사냥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호야는 늙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장가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느 날 사냥을 나갔던 호야는 곰 두 마리와 맞닥뜨렸다. 그런데 두 마리 곰 가운 데 어린 곰이 늙은 곰을 막아서는 것이 아닌가. 얼핏 보기 에도 어미 곰과 아들 곰으로 보였다. 본능적으로 활시위를 당기던 호야는 집에 계실 부모님 생각에 차마 시위를 놓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호야는 고라니 한 마리를 잡아 그나마 빈손 은 면하게 되었다. 다음날 장터에 나가 고라니를 팔던 호야 의 눈에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와도 같은 아리따운 처녀가 들어왔다. 우연히 마주보게 된 두 사람은 서로가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천생연분이라는 것이 그런 것인지 그렇게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처녀의 이름은 연진이었다. 장터에서 조그마한 장사를 하 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다소 억척스러운 구석이 없지 않았지만 호야에게 연진은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가 되고 있었다. 장터 근처의 약아빠진 사내들만 보아왔던 연 진에게도 과묵하면서도 듬직한 호야는 믿고 의지할 만한 사내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고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시부모님께도 연진은 맞춤한 며느리였다. 장터에서 자라서 생활력도 강한데다가 시부모를 대하는 극진한 태도 역시 호야에게는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장가를 가지 않아 걱정 이 태산 같았던 호야의 부모 역시 한 시름 놓게 되었다. 아무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았던 호야 가정에도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도, 또 다른 봄이 가고 다시 겨울이 다가오는데도 아이 소식이 없었다. 그러니 호야 부모도 부모지만 연진의 걱정이 더욱 깊어만 갔다. 연진의 걱정이 깊어가는 만큼 연진 친정 부모의 시름도 깊 어갔다. 어느 날 연진의 어머니가 연진을 찾아와 지리산 산신령님께 백일기도를 드리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연로한 시부모 봉양하랴 연일 사냥에 바쁜 남편 뒷 바라지 하랴 정신이 없던 연진은 백일기도를 할 엄두를 내 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잠을 청하지 못하고 엎치락뒤치 락 하던 연진이 얼핏 잠이 들었는데 꿈에 곰이 나타나 신기 하게도 말을 하였다. 곰은 연진에게 세석평전에 음양수 샘 이 있다면서 그 물을 마시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일러 주었다. 꿈에서 깬 연진은 너무나도 생생한지라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연진의 꿈에 나타난 곰의 생김새를 자 세히 들어보니 예전에 호야가 살려주었던 곰이었다. 그래서 연진은 그 길로 곰이 알려준 음양수 샘으로 달려가 샘물을 배가 터져라 실컷 마셨다. 그런데 이 광경을 몰래 지켜보던 호랑이가 산신령에게 밀고를 하고 말았다. 호랑 이는 오래 전에 호야에게 화살을 맞아 크게 다친 바 있어 어떻게 해서든지 호야를 해치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곰이 연진에게 음양수 샘의 비밀을 알려준 것을 눈치 챘던 것이 다. 백일기도를 드려야만 음양수 샘의 비밀을 알려주던 산신 령이 크게 노하여 비밀을 누설한 곰을 토굴에 가두고 말았 다. 그리고 연진에게는 세석평전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술 법을 부려 돌밭에서 평생 철쭉을 가꾸도록 하는 가혹한 형 벌을 내리게 되었다. 연진은 철쭉을 가꾸는 한편으로 촛대 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 산신령을 향하여 속죄 를 빌다가 마침내 돌로 변해버렸다. 지금 촛대봉에 있는 바위가 바로 연진이 돌로 변한 모습이라고 한다. 연진이 죽은 후 세석평전에는 해마다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는데, 연진의 애처로운 모습처럼 핏빛 꽃을 피운다. 한편, 아내를 찾아 지리산 일대를 헤매던 호야는 마침내 칠선봉에서 세석평전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평소에는 거 침없이 드나들던 세석평전에 어찌된 일인지 한 발짝도 들 어갈 수가 없었다. 연진이 세석평전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 고 느낀 호야는 가파른 절벽 위 바위에서 아내를 목놓아 부르다 결국 구름 속으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지금도 세석평전에서는 해마다 철쭉꽃이 필 무렵이면 연 진을 부르는 호야의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메아리친다고 한다. 선비샘 세석평전에서 서쪽으로 주능선을 따르다 보면 벽소령 못 미쳐 선비샘이 나타난다. 지금은 예전과 전혀 달라진데다 서서 물을 받을 수 있게 되어있지만, 예전에는 반드시 고 개를 숙여야만 물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옛날 옛적에 상덕평 마을에 이씨 성을 가진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세 명 있었는데, 막내를 낳다가 아내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평생을 홀로 세 아들을 키우느 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난도 가난이었지만 허 리도 굽은 데다 얼굴 생김새조차 초라하게 생겨서 사람들 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다. 평생 화전을 일궈 먹고 살았던 이씨가 화상까지 입는 바람에 그나마도 초라한 얼굴이 흉 측하게 변해버렸다. 자식들조차 그런 아버지를 부끄러워 하여 장가간 후에는 아예 아버지를 찾지도 않을 정도였다. 이씨처럼 평생 천대받으며 살아온 사람도 드물 것이다. 결국 사람 대접 한 번 못 받고 살아온 이씨가 세상을 하직 할 무렵 그래도 자식이라고 아들 셋이 아버지 곁을 지켰다. 그런 아들들을 바라보며 이씨가 마지막 말을 하였다. 죽어서라도 사람 대접 한 번 받아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에 눈물짓던 세 아들은 어떻게 하면 아버지 유언을 지킬까 고민하다가 궁리 끝에 선비샘이라는 샘터 위에 아버지를 모셨다. 선비샘은 그 구조상 물을 긷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선비샘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샘에서 물을 뜨는 과정에서 이씨의 무덤에 절을 하는 꼴이 되었다. 생전에 갖은 고생과 천대 속에서 화전민으로 살아온 한 노인의 애틋한 소망이 죽어서나마 이루어진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씨 노인의 소망이 실현되고 있었는데, 지금은 노인의 무덤도 보이지 않고 샘도 파이프 로 연결하여 서서 받도록 바뀌어 선비샘의 슬픈 전설은 잊 혀진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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