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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을 부르는 엽전

eorks 2019. 11. 15. 00:06
野談 ♡ 野史 ♡ 說話

살인을 부르는 엽전
    『살인을 부르는 엽전 보성설화 / 설화』 조선시대 때 보성군 벌교읍 어느 마을에 조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제법 농사를 짓 는 편이어서 살림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래도 소를 몇 마리 키워서 가끔 목돈을 손에 쥐는 재미로 살았다. 어느 날, 조씨가 소를 팔러 장터에 가려는데 큰아들이 따라 나섰다. 이제 큰아들 나이도 열여섯이니 세상 물정도 알 필 요가 있을 것 같아서 조씨는 아들을 데리고 소시장으로 갔 다. 여기저기 장터 구경도 시켜주고 흥정하는 것도 지켜보 게 하였는데, 조씨도 결국 소를 팔게 되었다. 조씨는 소 판 돈의 일부를 아들한테 줬다. “이제 너도 나이가 들었으니 이 돈으로 어찌 할 지 궁리를 해 보거라.” 그렇게 해서 각자 소 판 돈을 옆구리에 차고 돌아왔다. 그런데 벌교로 넘어오는 재를 지나는 길에 아들 뒤를 따라 가던 아버지한테 갑자기 괴이한 생각이 들었다. ‘저 놈을 죽여버리면 저 돈이 다 내 것인데...’ 그래서 앞서가는 아들에게 다가가는데 갑자기 뇌성벽력이 쳤다. 정신을 차린 조씨가 흠칫 놀라 한참을 멍하니 서 있 었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어요?” 뒤를 돌아보던 아들이 묻자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아버지 는 아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그러더니 전대를 풀어 아들을 주며 말했다. “애야, 이 돈도 네가 가지고 가도록 해라. 나이가 드니 엽전 뭉치조차 무겁구나.” 돈 때문에 잠시 제 정신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조씨는 돈을 아들에게 다 넘길 생각이었던 것이다. “아니 이까짓 돈뭉치가 뭐가 무겁다고 그러세요? 아버지도 참.” 엽전 뭉치가 무겁다는 아버지를 아들이 쳐다보며 피식 웃 고는 아버지 전대마저 허리춤에 찼다. 그렇게 한참을 앞서 가던 아들의 눈빛이 갑자기 묘해졌다. 그러더니 불현듯 이 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버지를 죽여버리면 이 돈을 내가 다 차지할 수 있을 텐 데…’ 그래서 살짝 뒤를 돌아본다는 것이 그만 아버지하고 눈이 딱 마주쳤다. 그러자 아들 역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밤이 깊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무래도 찜찜 했는지 조씨가 아들에게 일렀다. “애야. 저 건너 가서 술 한 말 받아 와라.” 집에 도착하자마자 술 심부름을 시키자 아들이 되물었다. “술요? 갑자기 술은 뭐 하시려고요?” “우리 동네 사람들 좀 불러야 쓰겄다.” “아니, 이 밤중에 갑자기 왜 그러세요?” “소를 팔았으니 한 턱 내야할 것 아니냐?” 아무리 소를 팔았다 한들 이 밤중에 막걸리를 사서 집안 어르신들을 부른단 말인가. 보성 장에 다녀오느라 힘든데 도착하자마 또 심부름을 시키니 귀찮을 법 하였지만 아들 은 집에 오기 전 흉측한 생각을 했던 까닭에 두말 하지 않 고 심부름을 다녀왔다. 그렇게 해서 막걸리 한 말을 받아다가 동네 사람들을 죄다 불렀다. 옛날에는 집성촌이 대부분이어서 한 동네에 문중 사람들이 사는 경우가 많았다. 밤중에 사람을 부르자 다들 의아해 하면서 조씨 집으로 모였다. 소를 팔아서 한 턱 낸다 하니 비록 늦은 밤이기는 하지만 다들 기분 좋게 마시는데 아무래도 조씨 표정이 심상치 않 았다. 무슨 일 있느냐 물어도 대답이 없던 조씨가 술이 한 잔 들어가 얼굴이 불콰해지자 속생각을 털어놓았다. “아니, 세상에 소를 팔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아들놈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뭡니까? 내가 나이가 들어서 망령이 난 것이지.” 그러더니 느닷없이 잠자고 있던 아들 둘까지 부르더니 문 중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하였다. “아들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 놈이니 더 이상 살아서 뭐 하겠소. 나는 이미 죽은 몸이니, 집하고 논은 큰아들 니 가 가지고, 산하고 밭은 작은 아들 니가 가지고, 재 너머 전답은 문중에서 알아서 관리하시오.” 그러자 영문을 모르는 큰아들이 깜짝 놀라 만류하며 물었 다. “아이고, 아버지.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것이 아니고 아까 돌아올 때 니가 돈을 갖고 오는데 니 를 죽이고 싶더라.” 그러자 아들도 그때서야 털어놓았다. “사실 저도 아버지가 돈을 가지고 오실 때 그런 생각이 듭 디다.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그 말을 듣고 있던 마을 어르신 가운데 한 명이 말했다. “아 그러면 필경 돈에가 뭔 조화가 붙은 것 아녀?” 그래서 소 판 돈을 전부 가지고 와서 불빛에다 비쳐보니까 엽전 가운데 하나에 검붉은 자국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 니 피 묻은 돈이 틀림없었다. 그러자 아까 그 어르신이 다 시 이야기하였다. “봐. 분명 이 엽전이 조화를 부린 것이여. 이 피 묻은 돈이 살인을 부르는 돈이 틀림없다니까?” “아니 어르신, 그럼 어찌해야 할까요?” “멀리 내다버려야지. 누구도 이 엽전을 보지도 못하게 동 구 밖에다 깊이 묻어버리는 것이 좋겠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길로 피 묻은 엽전을 가지고 동구 밖 멀리 가서 깊숙이 묻어버렸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어느 해, 마을 어귀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마을의 모습도 많이 달라 졌다. 집도 많이 들어선 데다 길도 대부분 넓혀져서 마을의 면모가 몰라보게 달라진 것이다. 동구 밖에서 아이들이 구슬치기를 하고 놀았다. 구슬치기 를 하던 아이 가운데 한 명이 땅을 파다가 신기하게 생긴 것을 발견하였다. “어? 이게 뭐지?” 그러자 곁에서 지켜보던 다른 아이가 잽싸게 빼앗더니 소리쳤다. “이거 엽전 아냐? 옛날 돈 같은데?” 돈이라는 말을 하자 엽전을 처음 발견한 아이가 빼앗으려 하였다. 그러자 엽전을 손에 쥔 아이가 깔깔깔 웃으며 멀 찌감치 달아나버렸다. 엽전을 호주머니에 넣고 신이 나서 돌아오던 아이의 눈에 동네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그러자 아주머니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이 묘하게 변하였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 이 이야기는 순천대학교 총장을 지낸 故 최덕원 선생 님께서 채록한 설화에서 기본 뼈대를 취하였음을 밝힙니 다.)


......^^백두대간^^........白頭大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