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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에 숯을 한 섬씩 가져다 부으면 안질이 낫는다고

eorks 2019. 11. 16. 00:05
野談 ♡ 野史 ♡ 說話

연못에 숯을 한 섬씩 가져다 부으면 안질이 낫는다고
    『옥룡사와 백룡거사 광양설화 / 설화』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희양현(지금의 광양)에 날만 새 면 간밤에 돼지가 물려갔다느니 소가 죽었다느니 하는 이 야기들이 나돌았다. 어느 마을에는 괴질이 돌아 사람이 여럿 죽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또 다른 마을에서는 멀쩡 하던 아들이 부모를 살해했다는 끔찍한 이야기마저 흘러 나왔다. 새로운 현감이 부임한 전후로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 하여 민심이 흉흉하였고 조정에서도 감사를 나온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러니 현감이 골치가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날이면 날마다 현감이 측근들을 불러 모아 대책을 논의하 였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측근 가운데 한 명이 제안을 하였다. “사또, 도선국사를 모셔오는 것이 어떨까요?” “도선국사? 그런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도선국 사를 어찌 모신단 말이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도선국사와 잘 통하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그래요? 그나저나 도선국사가 어디에 계시는지는 알고 있소?” “제가 듣기로는 여름에는 태백산 앞에서 움막을 치고 지내 고, 겨울에는 운봉산에 움막을 파서 지내신다고 알고 있습 니다.” “그래? 그렇다면 지금 당장 모셔오시오. 비용은 얼마라도 좋소.” 그리하여 도선국사를 모셔오기 위한 희양현감의 특사가 파견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불도를 전파하기 위해 남행을 생각하고 있던 도선국사는 희양현감의 거듭된 요청에 결국 희양현으로 내려왔다. 도선국사가 37세 되던 해인 864년 (신라 경문왕 4년)의 일이다. 신라 말기 승려이자 풍수의 대가로 잘 알려진 도선(道詵, 827~898, 속성은 금씨. 전남 영암 출생)국사. <도선비기(道詵秘記)>로 유명한 도선국사는 고려 태조 왕건의 탄생을 예언하였다 하여 널리 알려졌다. 신라 헌강 왕 1년(875년)에 도선은, “지금부터 2년 뒤에 반드시 고귀한 사람이 태어날 것이 다.”고 하였는데, 그 예언대로 송악에서 왕건이 태어났다고 한다. 이 예언 때문에 태조 이후의 고려 왕들은 그를 극진히 존경하였다. 도선국사는 참위설을 토대로 하여 일종의 비기도참서(秘 記圖讖書)를 남겼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성행한 [도선비 기(道詵秘記)]가 도선의 저작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름만 보아도 그의 영향을 받은 것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광양 옥룡면 추산리에 있는 옥룡사지에 있는 도선국사 탑 비. 하지만 모셔온 지 몇 달이 지나도록 도선국사는 산천경개 만 구경할 뿐 별 다른 도움을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처음 에는 그래도 무슨 수가 있겠지 하고 지켜보던 희양현감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도선국사를 찾아갔다. 그리고는 조심 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아니, 대사님. 무슨 대책을 강구하고 계시기는 계신 건가 요? 도대체가 대사님만 믿고 있는데 답답해서 여쭙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도선국사가 대답을 하였다. “멀리서 답을 찾을 것이 아니라 가까이서 찾아야 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돌아본 사찰 가운데 옥룡사만큼 터가 좋은 곳이 없 습니다. 그런데...” 도선국사가 잠시 말문을 닫자 답답하다는 듯 희양현감이 다그쳤다. “그런데, 그런데 뭐가 문젠가요?” 잠시 뜸을 들이던 도선국사가 느닷없이 연못 이야기를 꺼 냈다. “소승이 오랫동안 희양현을 둘러보니 용의 기운이 강하여 백호의 좋은 기운을 누르는 형국입니다. 예전에도 좋지 않 은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용의 혈을 지닌 옥룡사지에 사찰을 세워 그 기운을 눌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사찰 내부에 커다란 연못을 만드 는 바람에 용의 기운이 다시 살아났던 것입니다.” 도선국사의 이야기를 듣던 희양현감은 무릎을 탁 쳤다. 전임 현감이 옥룡사에 잘 보이려고 그랬는지 막대한 예산 을 지원하여 커다랗고 아름다운 연못을 만들어줬던 것이 다. 생각해 보니 그 이후로 좋지 않은 일들이 연거푸 일어 났다. 그러고 보면 전임 현감은 연못 만들어줬다고 좋은 소리만 듣고 떠나버리고, 후임인 자신은 그 일로 인하여 안 좋은 일들만 생기니 말들이 많고... “그렇다면 어찌 해야 할까요?” 마음이 급해진 희양현감이 대책을 묻자 도선국사의 대답 은 간단하였다. “연못을 없애면 되지요.” 다음날부터 희양현감은 인부들을 동원하여 옥룡사 연못을 흙으로 메우는 일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연못이 거의 메워 질 때마다 번번이 불의의 사고가 나 인부 가운데 몇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발생하였다. “대사, 도무지 연못을 메우기가 힘드니 어찌된 일인가요? 연못 하나 메우려다 고을 사람 다 죽게 생겼습니다.” 현감이 하소연하자 결국 연못 메우는 일에 도선국사가 직 접 나서게 되었다. 한참을 옥룡사 경내에 있는 연못 앞에서 가부좌를 틀고 불공을 드리던 도선국사가 갑자기 눈을 번 쩍 뜨더니 벌떡 일어섰다. 그러더니 지팡이로 연못가를 사 정없이 내려치며 일갈하였다. “떠나랏!” 그러자 연못물이 마치 끓는 것처럼 부글부글 대더니 놀랍 게도 아홉 마리의 용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더니 차례로 하늘로 올라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하얀 용 한 마리만 끝까지 굉음을 내며 연못을 떠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희양현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 러운 표정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이에 도선국사가 다시 한 번 지팡이를 휘두르자 그 기운으 로 백룡의 왼쪽 눈이 멀게 되었다. 한쪽 눈을 다친 백룡이 멈칫 하는 사이 도선국사가 다시 지팡이로 연못물을 치자 이번에는 정말로 연못물이 펄펄 끓는 것이 아닌가. 결국 참다못한 백룡이 길게 울음을 토해 내더니 순식간에 하늘 로 올라 모습을 감췄다. 용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뒤에도 연못을 메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너무나도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이 혹 시 모를 백룡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일하기를 꺼려하였기 때문이다. 며칠 뒤 옥룡사 주변 마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안질이 돌 아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토끼눈을 하고 다녔다. 사람들은 도선국사가 백룡의 눈을 다치게 하여 그 용의 저주 때문에 안질이 돈다고까지 입방아를 찧었다. 현감이 또 다시 도선국사를 찾았다. “아니, 대사님. 멀쩡한 용을 건들어서 고을 백성들이 안질 때문에 못살겠다고 아우성인데 이를 어찌한단 말입니까?” 물에서 건져주자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는 말처럼 현감은 막무가내였다. 하지만 평생을 참선으로 수양한 도선국사인 지라 이내 마음을 다스리며 현감에게 일렀다. “연못에 숯을 한 섬씩 가져다 부으면 안질이 낫는다고 소 문을 퍼뜨리십시오.” 도선국사가 일러준 대로 현감이 소문을 퍼뜨렸다. 사람들 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렇게 해보았는데 신기하게도 안 질이 감쪽같이 나았다. 그러자 너도 나도 숯을 가져다 연 못에 붓는 바람에 순식간에 연못이 메워지고 말았다. 이렇 게 연못을 완전히 메운 이후로는 희양현에 더 이상 흉한 일 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남도에 정착하려던 도선국사는 내친 김에 옥룡사에 기거하면서 승평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 불도를 전파하였다. 그렇게 35년 동안 옥룡사에 머물던 도선국사가 어느 날 제 자들을 불러모았다. 제자들마다 제각각 덕담을 해주던 도 선국사가 마지막 당부를 하였다. “내 지난 35년 동안 옥룡사의 모든 기운을 안정시켜 놓았 으니 천 년을 번창할 것이다. 그러나 승속을 막론하고 백 (白)씨 성을 가진 사람은 절에 들이지 말도록 해라.” 그리고는 ‘인연으로 와서 인연이 다하여 떠나는 것이니 슬 퍼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앉은 채로 편안하게 입적하였 다. 효공왕 2년(898년), 그의 나이 72세 되던 때이다. 선암사에 보관되어 있는 도선국사 진영. 그 후 옥룡사에는 도선국사의 유언대로 승속을 막론하고 백씨 성을 가진 사람은 물론 이름에 백(白)자가 들어가는 사람조차 들어가지 못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천 년 가까이 지난 1878년 옥룡사는 화 재로 소실된 후 폐찰되고 만다. 알고 보니 백룡(白龍)이라 는 거사가 이름을 속이고 들어와서 살다가 고의였는지 실 수였는지 절을 불태웠다는 것이다. 전남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302번지 옥룡사지 전경. 조선 후기에 화재로 타 버려 폐사되었다. 조사결과 건물터와 명 문비조각 90여 점을 찾았고, 도선국사의 것으로 생각되는 유골과 관을 발견하였다. 당시 고승들의 장례 풍습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백두대간^^........白頭大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