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귀가 없는 스님 양양·낙산사
중국 태화 연간(827∼835) 당나라 명주의 개국사 낙성법회에는
중국은 물론 신라의 고승대덕 수만 명이 참석했다. 이날 법회가
끝날 무렵 맨 말석에 앉아 있던 한 스님이 범일 스님 곁으로 다
가왔다.
『대사님께선 혹시 해동에서 오시지 않으셨는지요?』
『예, 신라 땅에서 왔습니다.』
『그럼 부탁 말씀을 드려도 될는지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
『소승은 신라와 접경지대인 명주계익령현(지금의 평양) 덕기
방에서 살고 있습니다. 부탁이란 스님께서 귀국하시면 저를 꼭
좀 찾아주십사 하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그게 뭐 그리 대단한 부탁이라고….』
『감사합니다. 그곳에 오시면 좋은 불연이 있어 말세 중생의
복전이 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꼭 들르겠습니다.』
범일 스님은 그 스님이 비록 왼쪽 귀가 없을망정 자비스런 보
살의 모습인 데다 이국땅에서 고향 승려를 만나니 한층 더 기
뻤다.
「귀국하면 꼭 찾아가 봐야지.」
범일 스님은 재회를 굳게 다짐했다.
범일 스님은 여러 조사와 스승을 찾아 공부하다가 임관(중국
제안선사)에게서 법을 얻고 회장 7년(847) 신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귀국 후 굴산사를 창건하고 중생교화에 여념이 없었던
범일 스님은 당나라에서 만난 왼쪽 귀가 없는 스님과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난 후 대중 12년(858) 2월 보름날 밤. 범일
스님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중국에서 만난 왼쪽 귀가 없는 스
님이 창문 앞에 와서 말하는 것이었다.
『스님, 저를 잊으셨습니까?』
『아, 중국에서 만난 스님이시군요. 찾아보비지 못해 정말 죄
송하옵니다.』
『절을 창건하시고 중생을 제도하시느라 지난날 중국 개국사
에서 다짐한 소승과의 약속을 잊으신 것 같아 이렇게 다시 찾
아왔습니다. 덕기방에서 꼭 뵈울 수 있는 인연을 지어 주십시
오.』
『스님, 죄송하옵니다. 불사에 쫓기다 보니 그만』
『불사도 중요하시겠지만 승려와 승려의 약속이 어떤 인과인
지 스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죄송할 뿐입니다. 빠른 시일내에 찾아뵙도록 하지요.』
『그럼 조속한 시일내에 뵙길 바라면서 소승 이만 물러가옵니
다.』
범일 스님은 꿈을 깨고도 마치 현실인 양 어리둥절했다. 그리
고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허물을 참회하면서 그날로
시자와 함께 덕기방으로 향했다.
일행이 낙산 밑 어느 마을에 이르러 마을 사람들에게 덕기방의
위치를 묻기 위해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한 여인이 일행 앞을 지나가니 그들은 여인에게 물었다.
『부인, 말 좀 물읍시다.』
『지나던 여인은 걸음을 멈추고 합장한 채 공손히 스님들 앞에
섰다. 』
『여기서 덕기방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덕기방이라는 고장은 없는데요. 그런데 참 이상한 마을 이름
도 다 있네요?』
『이상하다니요?』
『우리 딸아이의 이름이 덕기인데 스님들이 찾고 계신 고장 이
름과 꼭 같으니 말입니다.』
범일 스님은 참으로 기이한 일도 있구나 싶어 여인에게 이 고
장의 지리, 풍속, 생활환경과 이름이 같다는 딸아이에 대해 자
세히 물었다.
『저의 딸은 올해 여덟 살이옵니다. 그 애는 이상하게도 동네
아이들과는 전혀 어울려 놀지를 않고 항상 남촌에 있는 시냇가
에서 혼자 놀다 돌아오곤 해요. 시냇가에서 무얼하고 놀았느냐
고 물으면 늘 이상한 이야기만 늘어놓아요.』
『이상한 얘기라니요?』
『예,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요. 혼자 시냇가에 가서 무슨 재미
로 뭘하고 노느냐고 물으면 금색동자하고 논다고 대답해요.
그 금색동자는 몸이 황금으로 된 남자이래요.』
『허-.』
범일 스님은 신기한 이야기를 듣고 뭔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
고 여인은 말을 계속했다.
『우리 딸아이는 매일 그 금색동자와 놀면서 글을 배운다고 합
니다.』
『부인, 부인의 딸을 좀 만나게 해주십시오.』
범일 스님은 뭔가 감지한 듯 걸음을 재촉했다.
부인의 딸은 아주 귀엽게 생겼다. 범일 스님이 다시 자세히 물
어보니 소녀는 자기와 함께 노는 아이는 금빛 나는 남자아이라
고 답했다. 범일 스님은 기뻐하며 그녀를 앞세워 남촌 시냇가
로 갔다. 시냇가에 가서 돌다리 밑을 찾아보니 물 속에 황금빛
나는 부처님이 계셨다. 일행이 부처님을 물 속에서 모셔 내어
보니 황옥속의 돌부처였다. 자세히 살펴보던 범일 스님은 크게
놀랐다.
그 돌부처님은 왼쪽 귀가 떨어져 나갔을 뿐만 아니라 중국 당나
라 개국사 낙성식에서 만난 스님 얼굴과 꼭 닮은 것이 아닌가.
일행은 부처님께 수없이 절을 하고, 어디로 모셔야 할지 몰라
걱정을 하고 있는데 물 속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정취보살이다. 낙산사로 가면 내가 안치될 수 있는 자리
가 마련되어 있느니라. 오늘에야 인연을 만나 거처할 장소로 가
는구나.』
이 소리에 일행은 또 한번 놀라면서 정취보살의 원력에 감격하
고 찬미했다.
범일 스님이 돌부처님을 모시고 낙산사에 이르니 관세음보살님
옆에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 빈 대좌에 안치시키니 미리 만들어
놓은 듯 한 치 어긋남없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보살상이 안치되자 법당 안에는 오색 서기가 어리면서 성스러운
향기가 가득하였다. 의상대사가 관음굴에서 들은 관음보살의 말
씀대로 정취보살이 오신 것이다.
범일 스님은 신라 문성왕대(839∼856) 활약하신 스님으로 일명
품목이라고도 한다. 태화 연간(827∼835)에 입당(入唐)하여 명
주 개국사 등에서 선법을 수련하였고 문성왕 9년(847)에 귀국했
다. 스님은 그 당시로서는 처음으로 교외별전 현극지지(敎外別
傳玄極之旨)의 선취(禪趣)를 신라 땅에 전했다.
후에 굴산사의 개조가 되어 굴산조사라는 명칭을 얻었고 도굴산
에 근거를 두고 활약했다 하여 스님의 문하를 통털어 도굴산문이
라고 했다.
《삼국유사》 권3에는 「고본에는 범일의 사적이 앞에 적혀 있
고 의상과 원효 두 법사의 사적이 뒤에 적혀 있으나 살펴보면 의
상, 원효 스님의 일은 당고종 때 있었고 범일 조사의 일은 회창
후에 있었으니 연대가 떨어지기 120년이나 된다.」 고 밝혀져
있다.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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