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116769264B60C26A22)
韓國의 說話
해명 태자 설화
이 설화는 이미 이 시대가 영웅의 시대가 아님을 보여 준다. 아버지나 죽은 아들 모두 납득할 만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 본질은신화가 보여 주었던 자아와 세계의 동질성이 무너졌다 는 사실이다. 이야기 주인공인 아들이 아버지가 부당하게 군림하는 세계의 횡포 때문에 희생당하고 말았다는 전설의 비극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해명 태자 설화>는 신화의 시대가 끝나고 전설 및 민담 의 시대로 전환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유리왕 27년(서기8년) 봄 정월에 왕태자 해명은 옛도읍에 있었는데, 힘이 세고 무용(武勇)을 좋아하였으므로, 황룡국의 왕이 그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 강한 활을 선물로 주었다. 해명은 그 사신 앞에서 활을 당겨 부러 뜨리며, “내가 힘이 세기 때문이 아니라 활이 강하지 못한 탓이다.”라고 말하였다. 황룡국왕이 이 말을 듣고 부끄럽게 여겼다. 왕은 이것을 듣고 성을 내며 황룡국왕에게, “해명이 불효하니 (그를) 죽여 줄 것을 청합니다.”라고 말하였다. 3월 에 황룡국왕이 사신을 보내 태자와 만나기를 청하였으므로, 태자가 가려고 하자 어떤 사람이 “지금 이웃 나라가 이유 없이 만나기를 청 하니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라고 간하였다. 태자는 “하늘이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는데 황룡국왕인들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 하고는 마침내 갔다. 황룡국왕이 처음 그를 죽이려 하였으나 그를 보고는 감히 해치지 못하고 예를 갖추어 보냈다. 유리왕 28년(서기 9년) 봄 3월에 왕은 사람을 보내 해명에게 말하였 다. "내가 천도(遷都)한 것은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튼튼하게 하려는 것이다. 너는 나를 따르지 않고 힘센 것을 믿고 이웃 나라와 원한을 맺었으니, 자식된 도리가 이럴 수 있느냐?" 그리고 칼을 주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였다. 태자가 곧 자살하려고 하자 어느 사람이 말리며 말하였다. "대왕의 맏아들이 이미 죽어 태자께서 마땅히 뒤를 이어야 하는데, 이제 (왕의) 사자가 한 번 온 것으로 자살한다면, 그것이 속임수가 아님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태자는 말하였다. "지난번 황룡국2) 왕이 강한 활을 보냈을 때, 나는 그것이 우리 나라를 가볍게 본 것이 아닌가 하여 활을 당겨 부러뜨려서 보복한 것인데, 뜻밖에 부왕으로부터 책망을 들었다. 지금 부왕께서 나를 불효하다고 하여 칼을 주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니 아버지의 명령을 어떻게 피 할 수 있겠는가?" 마침내 여진(礪津)의 동쪽 벌판으로 가서 창을 땅에 꼽고 말을 타고 달려 찔려 죽었다. 그 때 나이가 21세였다. 태자의 예로써 동쪽 들[東 原]에 장사지내고 사당을 세우고 그 곳을 불러 창원(槍原)이라고 하 였다.
[참고문헌] : 三國史記.
[출 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t1.daumcdn.net/cfile/cafe/171F28234C07CF6F01) ......^^백두대간^^........白頭大幹![](https://t1.daumcdn.net/cfile/cafe/182A0F494FE8FBA526)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