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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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ㅡ6화]땀이 팥죽같이 흐르네
산골의 한 선비가 독서만 하면서 가난하게 살았다. 선비의 부
인은 이미 사망했고 아들마저 일찍 죽어 젊은 과부 며느리가 어
려운 살림을 꾸려 가고 있었는데, 가난하지만 며느리는 시아버
지를 극진히 섬기고, 시아버지 또한 며느리를 매우 아끼면서 살
고 있었다.
찬바람이 부는 겨울 동짓날에 며느리가 팥죽을 끓이고 있었
는데, 시아버지는 그 팥죽 한 사발을 언제쯤 가져오나 고대하면
서 사랑방 문틈으로 자주 내다보곤 했다.
"얘가 지금쯤 팥죽을 다 끓였을 텐데....,"
그러나 며느리는 팥죽은 가져오지 않고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러 나가는 것이었다.그 사이 시아버지가 배도 고프고 하여 부
엌으로 나가 보니, 마침 솥에 팥죽이 끓여져 있고 아주 맛있어
보였다.
"옳거니! 며느리가 물을 길어 오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테니,
그 전에 내가 한 사발 떠서 먹어야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얼른 팥죽 한 그릇을 떠가지고 집 모퉁
이로 돌아갔다.
그런데 먹으려고 보니 너무 뜨거워서 식혀야 하겠기에 숟가
락으로 팥죽을 저어 식히고 있었다.
이 때 며느리가 물을 길어 돌아왔다.
"아버님 어디 계신가? 어디로 나가셨나....,"
며느리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시아버지를 찿아보았으나 보이
지 않으니 얼른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옳지, 배가 고프니 아버님 안 계실 때 내가 먼저 팥죽을 한
그릇 떠먹어야지,'
며느리도 얼른 팥죽을 한 그릇 떠서 들고 역시 한적한 곳인
집 모퉁이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팥죽을 저어 식히고 있던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오
는 소리를 듣고 당황하여, 얼른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는 팥죽
그릇을 머리에 엎어쓴 다음 다시 그 위에 모자를 눌러썼다.
이렇게 되니 시아버지의 얼굴에는 온통 팥죽이 줄줄 흘러내
리게 되었다.
이 순간 숨어서 팥죽을 먹으려고 집 모퉁이로 돌아왔던 며느
리는 갑자기 시아버지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어쩔 줄 모르
다가 얼른 죽 그릇을 시아버지 앞으로 내밀면서,
"아버님, 여기 계셨구먼요. 팥죽 드십시요."
하고 말했다.
시아버지는 얼굴에 팥죽을 줄줄 흘리며 계면쩍어하면서,
"아가, 내 팥죽은 한 숟갈도 안 먹었는데 왜 이렇게 땀이 팥
죽같이 흘러내리느냐, 그 참 이상하구나."
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렇게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서로 쳐다보고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조선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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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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