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때 유머

주지(注之)에게 혼이 난 호랑이

eorks 2019. 3. 4. 00:13
[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제1부 선비들의 멋, 그것은 유머였다.
[제1ㅡ15화]주지(注之)에게 혼이 난 호랑이
산골의 한 선비가 집안이 넉넉하여 많은 종을 거느리고 살았 는데, 이 선비는 날마다 밤중에 종을 데리고 집안을 한 바퀴 돌 면서 혹시 도둑놈이 들지 않았나 하고 살폈다.

하루는 주인이 밤중에 순시를 돌면서 종에게,

"어두울 때 가장 무서운 것은 `호랑이와 주지'니라. 이 두 가 지가 나타나지 않나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하고 주의를 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때 호랑이가 담장 밖에 있다가 듣고 생각하기를,

`호랑이는 곧 나인데 그렇다면 `주지'는 무엇이기에 그렇게 무서운 것이라고 주의를 시키는 것일까? 알 수가 없네.'
하고 의문을 품었다. 호랑이가 아무리 궁리를 해도 자신의 실력 으로는 도무지 `주지'를 알 길이 없어서 잔뜩 긴장했다.

`주지'는 광대(廣大)들이 사람을 놀라게 하려고 무서운 모습 으로 변장하고 밤중에 남의 집에 불쑥 나타나 사람들을 놀래 주 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을 호랑이가 알 리 없었다.

어쨌든 호랑이는 이 선비의 집안으로 들어가 마구간에 가서 말을 잡아먹고는 거기에 서서, 혹시 주지가 나타나지 않나 하고 상황을 살폈다. 이 때 마침 말을 훔쳐 가려고 도둑놈이 들어왔는 데, 마구간으로 가서는 말을 잡아먹고 서 있는 호랑이를 말로 알 고 멍에를 씌워 올라탔다.

이에 호랑이는 잔뜩 긴장하면서,

`아니, 이게 바로 그 무섭다고 하던 주지가 아닌가?'

라고 생각하여, 겁을 먹고 뛰쳐나와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를 달렸는지 날이 훤히 새는데, 도둑이 보니까 타고 있는 것이 말이 아니고 호랑이가 아닌가? 도둑은 무서워서 기절할 뻔하다가 뛰어내려 길가의 속이 빈 큰 나무 구멍 속으로 들어가 숨었다.

이 때 마침, 곰이 지나가다 보니 호랑이가 멍에를 쓰고 달려 오기에 하도 이상하여 호랑이에게 물었다.

"이 새벽에 산군(山君) 어른게서 멍에를 쓰시고 이게 무슨 꼴 입니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얘 말 마라, `주지'라는 짐승이 나를 올라타 죽을 뻔하다가, 다행히 길가에 나무 굴이 있어서 `주지'는 거기로 들어가고 나는 간신히 탈출해 왔어, 너도 주지를 조심해,"

"아니 산군 어른! 산속에는 산군인 호랑이와 곰인 내가 가장 무서운 동물인데, 또 다른 동물인 `주지'라는 것이 어디 있단 말 입니까? 내가 가서 그놈을 찿아 물어 죽이겠습니다."

이렇게 장담한 곰은 도둑이 들어가 숨어 있다는 나무 구멍 앞 에 가서 밖을 향해 버티고 않았다. 이에 도둑이 안에서 보니, 곰 의 음낭(陰囊)이 축 처져 있기에,

`옳거니, 너 이놈 미련한 곰아! 나한테 고생 좀 해봐라.'
하고는 바지끈으로 쳐져 있는 음낭을 묶어 힘껏 잡아당겼다.

곰이 아파서 죽는다고 소리치니 그 소리에 산이 무너지는 듯 했다. 곰의 비명 소리를 듣고 호랑이가 달려와 보고는,

"바로 그놈이 `주지'일세, 곰아! 내 말 안 듣고 미련한 행동을 하더니 영락없이 잡아먹히게 되었구나. 가엾어라."
라고 말하고는 멀리 산속으로 달아났다.

그 때 마침, 산에 나물 캐러 왔던 부인 몇 사람이 하도 계곡 물이 맑아서 옷을 모두 벗고 맨몸으로 냇물에 들어가 멱을 감으 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이 때 갑자기 호랑이가 멍에를 쓰고 달려오니, 부인들이 놀라 옷을 입지도 못하고 맨몸으로 우르르 숲 속으로 달려가,

"별수 없다. 우리들이 서로 나란히 붙어 서서 엉덩이를 호랑 이 쪽으로 내밀어 큰 동물로 보이게 하면 호랑이가 감히 달려들 지 못할 거야."
라고 의논했다. 그리고는 맨몸으로 나란히 서서 어깨동무를 한 채 허리를 굽혀 엉덩이를 호랑이 쪽으로 쑥 내밀고는 가만히 서 있었다.

호랑이는 옷을 벗은 부인들이 구부리고 서 있는 뒷모습, 즉 엉덩이 사이에 있는 옥문을 보고는 생전 처음 보는 짐승의 입이 라고 생각했다.

`그 참 희한하네, 내 지금까지 많은 짐승을 잡아먹으면서 보 았지만, 모두 입이 옆으로 찢어져 있었는데, 지금 이것은 여러 입이 모두 세로로 찢어져 있으니 도대체 이게 무슨 짐승이란 말 이냐? 그렇지! 이게 바로 그 무서운 `주지'로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좀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피니 또한 입가에 털이 많이 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정말 `주지'로다. 이놈이 조금 전에 그 곰을 잡아먹고 벌 써 여기까지 왔구나, 저것 봐라. 곰을 잡아먹을 때 입가에 묻은 털이 아직까지 붙어 있지 않은가? 무서운 놈.....,"

호랑이는 겁을 먹고 있는 힘을 다해 산속 깊은 곳으로 달아나 버렸다. <조선 초기>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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