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튀니지 /카르타고 고고 유적[ Archaeological Site of Carthage]
요약 : 카르타고는 기원전 9세기에 튀니스 만에 건국되었다. 기원전 6세기부터 지중해 대부분을 장악하는 위대한 무역 제국으로 발달한 카르타고는 눈부신 문명의 본거지였다. 이후 기나긴 포에니 전쟁 동안 카르타고는 로마의 영토를 점령하기도 했으나, 기원전 146년 마침내 로마에 의해 멸망했다. 로마인들은 이 폐허 위에 제2의 카르타고를 건설하였다.
카르타고 유적
카르타고 유적
카르타고 유적
카르타고 유적
카르타고 유적
카르타고 유적
카르타고 유적
카르타고 유적
카르타고 유적
카르타고 유적
카르타고 유적
튀니지 카르타고. 로마시대의 도시 폐허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는 카르타고 유적지
페니키아인들이 무역할 때 사용했던 창고 유적
카르타고 유적지 근처의 항구
포에니 전쟁
카르타고에 로마인들이 새롭게 세운 유적
로마인들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카르타고 유적
로마인들이 세운 카르타고 유적지
로마인들이 지은 안토니우스 목욕탕
아치형 통로를 볼 수 있는 안토니우스 목욕탕
카르타고 유적지와 바르도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모자이크 작품들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케르쿠안 유적지
페니키아인들의 흔적이 잘 보존된 케르쿠안 유적지
바닥이 모자이크로 이루어진 케르쿠안의 거리
바르도 박물관에 전시된 거대한 모자이크
튀니스의 테라스 유적
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방어용 돌
카르타고 언덕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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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튀니지(Tunisia) 위치 : 튀니스(District of Tunis) 좌표 : N36 51 10.008,E10 19 23.988 등재연도 : 1979년
카르타고 고고 유적 카르타고는 로마 제국의 가장 유명한 역사적 유적 가운데 하나이다. 고대 로마의 식민지 율리아 카르타고(Julia Carthago)는 로마의 화려함과 부를 상징했으며 구조적 건축술, 카르타고와 로마 도시계획의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도시는 카르타고 역사에서 중요한 증거이며 카르타고 도시의 흥미로운 본보기이다.
카르타고 국가의 이름은 오늘날의 튀니스 시에서 10㎞ 떨어진 연안에 있는 카르타고 시에서 따온 것이다. 카르타고는 9세기에 오늘날의 레바논인 티레(Tyre)에서 온 페니키아 상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1등급 항구 두 곳이 있었던 이곳은 오늘날의 표현으로 하면 가장 효율적인 연락 방법을 가지고 있었으니, 바로 바다였다. 카르타고 인들은 곧 수준 높은 조선 기술을 발전시켰으며, 건조한 배들을 이용하여 몇 세기에 걸쳐 바다를 지배했다. 가장 중요한 상품은 은, 납, 상아와 금, 침대와 침구, 소박하고 값싼 도자기, 보석, 유리 제품, 아프리카의 야생 동물, 과일, 견과류였다.
7세기경 시칠리아에 그리스의 무역 식민지가 건설되자, 카르타고의 위치가 불편해지면서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6세기에 카르타고는 리비아 부족들과 옛 페니키아 식민지들의 영토를 정복했고, 오늘날의 모로코에서 이집트 국경까지 뻗은 북아프리카 해안과 몰타, 발레아레스 제도(balearic islands), 사르데냐의 서쪽 절반을 통치했다.
카르타고는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그리스, 로마와 전쟁을 치렀다. 그리스에 대항한 전쟁은 200년 이상 지속되었으며 카르타고의 승리로 끝났다. 기원전 264년부터 세 번에 걸쳐 치러진 로마와의 전쟁(포에니 전쟁)이 끝난 기원전 146년, 카르타고는 거의 잿더미가 되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정착지는 그때부터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서기 1세기에 아우구스투스는 다시금 이 지역 사람들의 기술과 힘을 증명한 식민지 율리아 카르타고를 세웠다. 몇 년 이내에 도시는 번창했으며 그 장려한 경관과 부는 로마에서 두 번째 규모였다. 439년에는 반달 왕 게이세리쿠스(Geisericus, 재위 428~477)가 카르타고를 점령하여 수도로 삼았다. 637년 카르타고는 아랍인들에게 점령되면서 파괴되었고 이후로는 이전의 중요성을 되찾지 못했는데, 근처 튀니스로 세력이 집중화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카르타고는 오랜 기간 동안 로마 제국보다 강한 해군력을 보유한 항구 도시였기에, 카르타고 항구는 최고의 관광지라 할 만하다. 대부분의 현대 고고학자들은 카르타고 항구에서 몇 백 m밖에 떨어지지 않은 토페트 현장에서 카르타고인들이 아이를 제물로 바쳤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토페트(원래 이름이 아니며 중동에서 아이를 제물로 바치던 성소를 성경에서 이렇게 일컬은 것이다)는 바알하몬(Baal Hammon), 타니트(Tanit)에게 바쳐진 성지 옆에 일부분만이 남아 있다.
로마 통치 시기의 유적으로는 145년~165년에 지어진 안토니우스 목욕탕이 남아 있다. 이 목욕탕은 카르타고가 로마의 정복 이후에도 중요하고 부유한 도시였다는 것을 반영한다. 또한 주목할 만한 것은 카르타고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있는 성 루이 대성당이다. 대성당은 프랑스 왕 루이 9세가 1270년 서거한 자리에 1890년대에 건설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오직 문화적 목적으로만 쓰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카르타고 고고 유적 [Archaeological Site of Carthage] (유네스코 세계유산, 유네스코한국위원회(번역 감수)) ......^^백두대간^^........白頭大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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