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
제1부 선비들의 멋, 그것이 유머였다. |
(제1-11화)남첩(男妾)을 많이 거느린 여인 |
조선 시대 성종 임금이 좀 한가하여 무슨 재미있는 일이 없을
까 생각하다가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여보라! 일관(日官)을 빨리 들라고 일러라,"
이 명령에 따라 일관이 임금 앞에 나아가 부복하니, 임금은
이렇게 질문했다.
"듣거라, 전국에 과인과 사주팔자가 꼭 같은 사람이 몇 명이
나 있을꼬? 내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니, 전국
에 지시하여 과인과 꼭 같은 사주를 지닌 사람을 모두 조사해 불
러 들이도록 하라."
"예, 전하. 곧 조사해 대령토록 하겠나이다."
이렇게 하여 전국에 명령을 내려 찿았는데, 마침 한 사람의
중년 과부만 있어서 불러 올라왔다.
성종 임금은 앞에 와 엎드려 있는 여인에게 물었다.
"듣거라. 네 사주팔자가 과인과 같다고 하니, 네가 어릴 때부
터 지금까지 살아온 동안의 일들을 소상히 아뢰어라."
"예, 전하. 빠짐없이 아뢰겠나이다. 소인은 옛날 어릴 때는
여종의 신분이었는데, 뒤에 돈을 내고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 평
민으로 면천되었나이다. 그리고 혼인을 하였으나 얼마 후에 남
편이 죽고 과부로 살아왔사옵니다."
"응, 그래. 그렇다면 내 몇 가지 알아볼 것이 있느니라."
이렇게 말하며 그 여인이 여종의 신분에서 면천된 때를 물어
추적하니, 임금인 자신이 등극하여 왕위에 오른 바로 그해의 그
날과 일치했다.
다음으로 여인의 남편이 죽고 과부가 된 시기를 물어서 맞추
어 보니, 앞서 사망한 자신의 중전 공혜왕후 한씨(恭惠王后韓氏)
가 세상을 떠난 바로 그날이었다.
이에 임금은 감탄을 하면서,
"이렇게 일치할 수가 있나? 그 참 신기한 일이로다."
라고 말하며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여인은 듣거라. 듣고 보니 제반 사정이 과인과 매우 비슷하
나, 다만 과인은 수백 명의 후궁을 거느리고 매일 밤 예쁜 여인
의 맨몸을 안고 속살을 맞대어 잠자리를 즐기거늘, 너는 과부의
몸으로 밤에 홀로 외로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일 테니, 그것
만이 서로 다른 것 같다. 사주팔자가 같은 사람으로서 내 연민의
정이 이는구나, 과인과 사주팔자가 같다는 인연도 있고 하니 그
고독을 달래 줄 수도 있겠는데....,"
이 말에 과부는 깔깔대고 웃으면서 아뢰는 것이었다.
"황송하옵나이다. 전하! 지엄하신 전하의 앞이라 바른대로 아
뢰겠나이다. 소인도 본시 성품이 풍정(風情)을 좋아해, 남편 살
아 있을 때도 하룻밤에 한 번 잠자리로서는 결코 만족하지 못
해 남편이 힘들어했사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임금을 한 번 힐끗 처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전하! 옛날 중국 무후(武后)가 많은 남첩(男妾)을 거느렸다
고 들었습니다. 소인도 과부가 된 이후로 수십 명의 남자를 사귀
어 밤마다 교대로 불러들여 상대하면서, 밤을 새워 즐기는 것으
로 낙을 삼아 살아가고 있사옵니다. 그러므로 결코 고독하거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전전반측하는 일이 없사오니 가엾게 여기지
마옵소서, 소인의 사주팔자가 전하와 일치하여 모든 부분에서
전하와 유사한 점이 많은 것 같사옵니다. 황공하옵나이다."
여인이 이와 같이 아뢰고 웃으니, 이에 듣고 있던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했고 임금도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랬구나, 남녀간에 정감을 나누며 재미를 보는 일에는
남자 중에 과인이 있고 여자 중에는 네가 있었구나, 진정 보기
드문 희한한 일이로다."
이러고 임금은 과부에게 많은 선물을 주어 내보냈다.
<조선 초기>
[옛 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 / 김현룡 지음]
......^^백두대간^^........白頭大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