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때 유머

[고전유머]2-7화 정향에게 홀린 양영대군

eorks 2007. 3. 14. 08:02
[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
제2부 화류춘몽, 그 웃음과 눈물

(제2-7화)정향에게 홀린 양영대군
    세종 임금을 방 문하여 묘향산(妙香山) 유람을 다녀오겠다면서 허락해 달라고 했다. 얘기를 들은 세종 임금은 웃으면서, "그 참 좋은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형님, 관서 지역은 색향(色鄕)이라 각별히 여색에 조심하셔야 합니다." 라고 말하며, 묘향산으로 떠나는 형을 전송했다. 세종 임금은 형 양녕대군을 보내 놓고 급히 평안 감사에게 따 로 사람을 보내 비밀히 명령을 내렸다. "잘생기고 참한 기생을 뽑아서 양녕대군의 잠자리를 받들게 하고, 그리고 그 기생을 대군 몰래 궁중으로 보네라." 이런 다음, 비밀을 철저히 지키라고 단단히 당부했다. 서울을 떠난 양녕대군은 지나는 길에 사람을 시켜 명령했다. "연도의 관장들은 명심할지어다. 내가 지나는 곳에는 기생은 물론 어떤 여인도 접근을 못하도록 하라. 이것은 내가 어명을 받 은 것이니라." 이렇게 관장들에게 엄명을 내려 놓으니, 숙소 마다 기생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평안 감사는 임금의 비밀 명령을 받았으므로 몰래 양 녕대군의 잠자리를 받들 기생을 물색하는데, 소문을 들으니 대 군이 여자의 접근을 엄격하게 막는다고 하므로 큰 고민에 빠졌 다. 그래서 평안 감사는 기생을 모아 놓고 사실을 이야기한 후 협조를 구하면서 다음과 같이 약속했다. "너희들 중에 누군가가 양녕대군과 동침을 하면 큰 상을 내 리겠다. 이에 마침 정향이란 어린 기생이 나서서 웃으면서 말했다. "감사 어른, 소녀가 대군의 잠자리를 모시겠습니다." "응, 어린 네가 그 어려운 일을 해내겠다고? 기특하구나. 이 일이 성공하면 네 소원대로 해주마." 그래서 감사는 정향에게 이 일이 임금의 명령임을 알리고 각 별히 비밀을 지켜 실패 없이 추진하라고 일렀다. 정향은 먼저 양녕대군이 머물 숙소인 객사에 젊은 통인 하나 를 심부름꾼으로 위장하여 미리 들여보내 놓고, 자신은 객사 옆 에 오두막집을 얻어 거처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후 양녕대군이 객사에 들어왔다. 들어오는 날부터 대군 은 어떠한 여인도 객사 근처에 오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리고. 평 안 감사에게는 객사 주변을 철저하게 감시하도록 지시하는 것이 었다. 이날 정향은 객사 뜰 옆에 있는 작은 문으로 고양이에게 생선 을 물려서 들여보내 놓고는. 소복을 입어 청산과부인 양 수수하 게 꾸미고 그 고양이를 쫒는 척하면서 객사 안으로 고양이를 따 라 들어갔다. 이를 보고 있던 통인이 재빨리 뛰어와 정향을 쫒아내면서, "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함부로 들어와? 빨리나가!" 하고 야단을 쳐 쫒아냈다. 그런 다음 통인은 다시 대군 앞에 엎 드려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사죄했다. "나으리, 저 어린것이 사정을 잘 몰라 큰 죄를 저질렀으니 용 서해 주십시요." 통인의 말을 들은 대군은 그 여인이 누구냐고 물었는데, 이에 통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 아이는 소인의 이종 사촌 동생입니다. 14세에 시집가서 곧 과부가 되어 6,7년을 저렇게 청산과부로 혼자 살고 있습니다. 사리 분별이 없어서, 객사 근처에 여인을 접근하지 못하도록 금 지하신 분부를 어겼사오니 용서해 주십시요." 이러면서 눈치를 살피니 대군이 관심을 갖는 것 같았다. 이날 밤, 대군은 그 여인의 아리따운 모습이 떠올라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그 가냘픈 몸매와 수심어린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그래서 양녕대군은 밤중에 통인을 불러 물었다. "얘야, 낮에 왔던 네 사촌 여동생 말이다. 그 아이 생각이 자 꾸 나서 잠을 이룰 수가 없구나, 그 여동생이 과부라니 좀 불러 올 수가 없겠느냐?" 이 말에 통인은 속으로 웃으면서도 일부로 난처한 듯한 표정 을 지으며 힘없이 아뢰었다. "예 나으리, 정 그러시면 소인이 한번 가보기는 하겠습니다 만, 고집이 워낙 세어 아마도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통인은 속으로 무한히 기뻐하면서, 나갔다가 한참 뒤에야 어 렵게 불러온 것같이 아뢰고 정향을 대군에게 데려다 주었다. 대군이 앞에 앉은 기생 정향을 청산과부로 여기고 바라보니, 애끓는 연정이 솟아올라 몸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가늘고 연약 한 여자의 허리를 안아 무릎에 앉히니, 수줍어하는 그 모습에 청 상과부의 몸을 가졌다는 만족감으로 하늘을 날 것 같았다. 이 때 정향이 눈물을 흘리면서 대군에게, "소첩은 일찍이 과부가 되어 절개를 지키면서 고달픈 삶을 살아오고 있었는데, 어르신께서 이렇게 소첩의 절개를 훼손하게 되면 소첩은 이제 목숨을 끊는 길밖에 없사옵니다. 장차 소첩을 어떻게 하시렵니까?" 이렇게 은근히 애를 태우게 하니, 대군은 앞날을 책임질 테니 과부의 수절만 고집하지 않으면 된다고 하면서 위로했다. 이에 정향이 못 이기는 채하고 몸을 맏기니, 대군은 마음이 급하여 정 향의 옷을 얼른 벗기고 이불 속에 눕혔다. 곧 대군이 급하게 서두는데, 정향은 잘 훈련되어 있으면서도 일부러 서툰 것같이 허리를 좌우로 틀고 아프다는 소리를 내면 서 어리광을 부렸다. 그러자 대군은 어려서 과부가 되어 너무 오래 경험하지 않아 그렇다고 위로하면서 조금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며, 다 리 사이를 잡고 조심조심 아프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었 다. 정향은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억지로 참고 대군이 하는 대 로 몸을 맡겼다. 이후로 대군은 며칠 동안 평양 객사에 머물며 정향과 뜨거운 정열을 불태우고 정이 매우 깊어졌다. 대군은 정향을 두고 떠나기가 싫었지만 세종 임금과의 약속 도 있고 하여 떠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향과 이별하는 날 밤, 정향의 치마 안쪽 폭에 칠언율시(七言律詩) 여덟 줄을 써 주었다. 다리 위에 말 세우고 이별 슬퍼 지체하니, 버드나무 높은 가지 미운 생각 이는구나. 여인은 인연이 엷다고 새 원망 품는데, 사나이는 정이 깊어 뒷날을 기약하네. 복숭아꽃 오얏꽃 만발하는 한식철에. 자고새 날아드니 해는 이미 지고 있네. 뜰 앞에 우뚝 솟은 한 그루의 정향수에. 억지로 춘심 품어 그 한 가지 꺾었도다. 대군이 이렇게 써주고 묘향산으로 떠나니, 곧 평안 감사는 세 종 임금이 명령한 대로 정향을 가마에 태워 대궐로 올려보냈다. 세종 임금이 정향을 보고 그 미모에 감탄하고 기뻐하면서 어떻 게 하여 대군에게 접근했느냐고 물었다. 정향이 곧 세종 임금에 게 그간의 일을 자세히 설명하니, 임금은 재미있다면서 매우 즐 거워했다. 그 사이 양녕대군은 정향 생각만 자꾸 나고 구경에는 흥미가 없어서, 묘향산만 대충 돌아보고 빨리 내려왔다. 대군은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정향을 다시 만나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객사에 짐 을 풀고 앞서의 통인을 다시 만나니, 뜻밖에도 통인이 상복을 입 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군은 놀라면서 물었다. "얘야, 그동안 누구의 복을 입었느냐? 웬 상복이냐?" "예 대군 나으리, 지난번 대군게서 거두셨던 제 사촌 여동생 이 갑자기 병이 나서 죽었습니다. 여동생이 죽음에 임박하여 울 면서 유언을 했는데, 저승에서나 다시 모시겠다고 말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통인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엉엉 우는 것이었 다. 양녕대군은 정향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억장이 무너지고 너 무나 실망하여 눈물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대군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통인에게 많은 재물을 주면서, "얘야, 이 재물의 반은 네가 가지고, 나머지 반으로 여동생의 제사를 정성껏 잘 올려 다오. 내 간절한 부탁이다." 하고는 정신 나간 사람같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대군의 이 말에 통인은 웃음이 나왔지만 꾹 참았다. 대군이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니, 세종 임금이 신하를 시켜 나가 맞이하게 했는데, 맞으러 나갔던 신하가 돌아와서 아 뢰기를, "대군께서 많이 피곤해하십니다. 매우 지쳐 보였습니다." 라고 보고했다. 세종 임금은 곧 양녕대군을 궁중으로 맞아들여 술자리를 베 풀고, 정향을 시켜 대군 앞에서 술잔을 올리게 했다. 이 때 정향을 본 대군이 눈을 닦고 자세히 보면서 의아해하 니, 세종 임금이 웃으면서 양녕대군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께서 그 아이의 이름을 한번 물어보세요." 이에 대군이 정향의 이름을 묻자 정향도 웃으며, "대감께서 어찌 소녀의 이름을 모르십니까? 평양 기생 정향 인사올립니다." 라고 아뢰고는 일어나 큰절을 올렸다. 양녕대군이 일어서서 절하는 정향을 자세히 살펴보니 치마 안쪽 폭에 자신이 써준 글씨가 드러나 보이기에, 비로소 정향이 평양 기생이었음을 알고 임금 잎에 엎드려 사죄했다. 세종 임금은 얼른 양녕대군을 일으켜 앉히면서 모두 자기가 시켰음을 이야기하고, 정향을 양녕대군의 첩으로 삼게 했다. <조선 초기>



......^^백두대간^^........白頭大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