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때 유머

[고전유머]2-8화 가장 큰 눈물을 흘린 채수(蔡壽)

eorks 2007. 3. 15. 00:12
[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
제2부 화류춘몽, 그 웃음과 눈물

(제2-8화)가장 큰 눈물을 흘린 채수(蔡壽)
    조선 시대에는 한 임금이 사망하면 그 임금이 재위했던 시대 의 역사를 책으로 엮어 깊은 산속에 집을 짓고 보관했는데, 이 역사책이 『조선왕조실록』이다. 그리고 이 책을 보관한 창고를 `사고(史庫)'라고 했으며, 해마다 여기에 관리를 파견하여 보관 되어 있는 『조선왕조실록』을 꺼내어 볕을 쏘이게 했다. 그리고 이 역사책 볕 쏘이는 일을 맡아 파견되어 가는 관리를 `포쇄별 감(포쇄別監)'이라 일컬었다. 해학을 좋아하던 채수가 포쇄별감이 되어 전주(全州)로 내려 갔다. 당시, 임금의 명을 받고 지방으로 파견되어 가는 관리들이 객사에 기생을 불러 동침하면서 추문을 일으키고 있었으므로, 채수는 이를 매우 좋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 채수는 전주로 떠나면서 미리 연도의 고을에 공문을 보내 다음과 같이 알려놓았다. "각 고을 관장들은 내가 지나가면서 들어가 묵는 숙소에 절 대로 기생을 들이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렇게 엄명해 놓고 내려갔기 때문에, 채수가 전주에 도착하 가까지 중간 숙소에서 기생이 접근하는 일은 일절 없었다. 그렇게 전주에 도착해서도 기생의 접근을 엄하게 막았는데, 여러 날 비가 내려서 사고의 문을 열지 못해 채수가 객사에서 무 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전주 부윤이 이를 보고 안타깝게 여 겼다. 그래서 부윤이 아랫사람인 판관에게 이르기를, "젋은 분이 기생을 거절하고 여러 날 무료하게 지내고 있으 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판관이 무슨 방법을 한번 강구해 보도록 하오." 하고 웃으면서 슬쩍 말을 던졌다. 이에 판관이 기생의 우두머리 인 수기와 이 일을 의논하니, 수기는 곧 다음과 같은 계책을 꾸 며서 판관에게 보고했다. "나이 어리고 얼굴이 예쁜 기생을 가려서 하얀 소복을 입혀 청상과부처럼 수수하게 꾸미고, 채 공이 유숙하는 객사 가까운 집에서 방앗공이로 절구에 방아를 찧게 합니다. 그리고 채 공이 물으면 기생이 아니라 서울 재상집 여종으로, 친가에 다니러 왔 다가 친상을 당한 여인이라고 대답하도록, 채 공을 받드는 젊은 아전과 꾸며 놓습니다. 그러면 채 공이 반드시 유혹을 느껴 기생 을 여종으로 알고 몰래 부를 것입니다. 두고 보소서." 이 계책에 따라, 어리고 예쁘게 생긴 기생이 하얀 옷을 입고 객사에서 마주 바라보이는 집에서 방앗공이로 절구질을 하고 있 었다. 이 모습을 바라본 채수는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자기를 받들고 있는 아전을 불러 농담을 하면서 물었다. "이 사람아, 저기 소복 입고 정구질하는 여인이 기생인가?" "아, 아니올시다. 저 여인은 기생이 아니오라 서울 재상집 여 종으로, 시골집에 다니러 왔다가 부친상을 당해 3개월째 머물고 있습니다. 얼마 후에 부친 사망 1백 일이 되는데, 그때 제사를 모시고는 서울로 올라갈 것입니다." 아전의 말을 들은 채수는 이날 밤 그 여인이 눈앞에 어른거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이튼날 채수는 다시 아전에게, "이 사람아, 관부에 알리지 말고 저 여종을 가만히 좀 불러올 수 없겠는가? 간밤에 내 저 여인이 눈에 어른거려 잠을 설쳤 다네. 아무도 모르게 하고 내 부탁 좀 들어주게나." "어르신, 그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만 소인이 한번 노력해 보 겠습니다. 그러나 실패할 수도 있으니 크게 믿지는 마십시요." 이렇게 능청을 떤 아전은 이 이야기를 부윤에게 모두 고하고, 밤중에 가만히 소복 여인을 데리고 와서 방에 넣어 주었다. 이날 밤, 채수는 함부로 몸을 허락할 수 없다는 여인을 어르 고 달래어, 끌어안아 무릎 위에 앉히고 옷을 벗겼다. 여인은 기 생으로서 훈련된 모든 잠자리 기능을 숨기고, 아무것도 모르는 숫처녀의 첫 경험인 것처럼 하면서 몸을 맡긴 채 가만히 있었다. 이후로 기생은 매일 밤 객사로 들어와 채수와 함게 동침하고 새벽에 나가는 일을 계속하면서 채수를 즐겁게 해주었고, 채수 는 이 일을 아무도 모르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하루는 부윤이 채수를 위해 위로 잔치를 베풀었는데, 많은 기 생들이 호화찬란하게 꾸미고 잔치에 참여했다. 이 때 채수는 여 러 기생들 속에 자기와 매일 밤 잠자리를 같이하던 소복 여인이 끼어 있는 것을 보고는, 비로소 자신이 부윤에게 속은 줄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채수는 숨기지 않고 그 기생을 불러 밤낮으로 함게 있었고, 기생도 이제 여러 가지 기능을 발휘해 그의 몸과 마음을 휘어잡으니, 두 사람 사이에는 정이 매우 깊어졌다. 채수가 역사책에 볕을 쏘이는 포쇄의 일을 끝내고 서울로 돌 아가게 되어 우정(郵亭)에서 그 기생과 작별하는데, 채수는 눈물 이 비오듯 쏟아져, 아무리 몰래 닦고 그치려 해도 좀처럼 그쳐지 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기생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닌 것 처럼 보이게 하려고, 고개를 들어 위를 처다보면서 손가락으로 누각의 지붕을 가리키며 옆에 있는 종에게 물었다. "얘야, 이 누각은 언제 지어진 것이지? 제법 오래되었겠지?" "예, 대감마님, 제법 오래 전에 지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응! 그렇다면 그 당시 부윤은 누구였던고? 아아, 인생이 참 으로 허무하구나! 이 누각은 지금까지 잘 남아 있는데 그 부윤 은 벌써 저승에 가 있겠지. 정말 무상한 게 세월이고 허무한 게 인생이구나! 진정 슬퍼서 눈물이 나는구나." 이와 같이 말하며 땅을 내려다보고는 눈물을 한없이 뚝뚝 떨 어뜨리니, 흐르는 눈물에 옷자락이 모두 젖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기생도 울음을 참지 못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었다. 그 러나 다른 사람들은 입을 막고 웃음을 참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그 뒤, 이 이야기는 전주 고을에 널리 퍼져 사람들이, "이전에도 기생과 이별하면서 눈물을 흘린 관리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포쇄별감 채 대감의 눈물은 그 줄기가 월등히 굵어 아 직까지 그렇게 굵은 눈물을 흘린 사람이 없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한바탕 웃곤 했다. 『어우야담』을 지은 유몽인(柳夢寅)이 일찍이 늙은 기생 노응 향(露凝香)을 만나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기생을 보고 웃으면서 가까이하는 남자는 꾀어서 제압하기 가 어렵지만, 기생에게 냉담하게 대하는 근엄한 남자는 꾀어 제 압하기가 매우 쉽다. 기생들은 이 점을 노려 남자를 유혹하게 된 다." 이 말은 기생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말인데, 정말 일리 가 있는 것 같았다.<조선 중기> [옛 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 / 김현룡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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