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說話

98.미추왕 죽엽군 설화

eorks 2010. 4. 16. 07:14

韓國의 說話
미추왕 죽엽군 설화
    신라 미추왕의 영혼이 신라를 돕고,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金庾信)
    의 영혼을 달래어 나라를 수호하였다는 설화. ≪삼국유사≫ 기이편
    (紀異篇) 제1에 수록되어 있다. 호국설화의 전형적인 작품으로, 줄
    거리는 다음과 같다.
    
     신라 유리왕 때의 일이다. 이서국(伊西國) 사람들이 서울 금성을 
    공격해 왔다. 신라는 방어하였으나 힘이 달렸다. 이 때 문득 대나무 
    잎을 귀에 꽂은 군사들이 나타나 전세를 돌려놓았는데, 적이 퇴각한 
    뒤에 보니 미추왕릉 앞에 대나무 잎이 잔뜩 쌓여 있어 그제야 선왕
    의 음공(陰功)임을 알았다. 그래서 미추왕릉을 죽현릉(竹現陵)이라 
    불렀다. 
    혜공왕 15년 4월 어느 날, 김유신의 무덤에서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죽현릉 쪽으로 불어 가고 있었다. 얼마 뒤 무덤이 진동하며 
    호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은 삼국을 통일하고 죽어서도 나라
    를 지키려는 마음이 변함없는데, 지난 경술년 신의 자손이 죄 없이 
    죽음을 당하였으니 이는 군신이 저의 공렬(功烈:드높고 큰 공적)을 
    잊음이라 다시는 나라를 위하여 애쓰지 않겠습니다.” 이에 미추왕이 
    대의가 더욱 중함을 들어 설득하였더니 김유신은 다시 회오리바람이 
    되어 무덤으로 돌아갔다. 
    혜공왕이 이 소식을 듣고 김경신(金敬臣)을 김유신의 무덤에 보내어 
    대신 사과하고 공덕보전(功德寶田)을 취선사(鷲仙寺)에 내려 김공의 
    명복을 빌게 하였다. 
    그 뒤로는 사람들이 나라를 지킨 미추왕의 음덕을 사모하여 삼산(三
    山)과 함께 제사 지내고, 서열을 오릉(五陵)의 위에 두고 대묘(大廟)
    라 불렀다고 한다. 
    이 설화는 ≪삼국사기≫의 김유신조에도 나오나 여기서만큼 자세하
    지는 않다. 신라에서는 많은 호국신·호국룡을 모시고 있었는데 이 
    설화도 그러한 풍토에서 나온 것이다.
    김유신이 찾아가 읍소할 상대 왕릉으로 미추왕은 아무래도 부자연
    스럽다고 말하고 (태종무열왕이나 문무왕이면 이해가 가지만) 모태
    (募泰) 원종(原宗)이라 이름한 법흥왕릉의 투영이 아닐까 하는 의문
    을 제기한 연구도 있다. 
    김유신가와 왕실과의 군신 관계는 원종왕과의 사이에서 맺어졌으며, 
    법흥왕의 원종과 미추왕의 상사음으로 인한 혼동의 증거로 
    ≪삼국유사≫의 미추왕·김유신의 관계가 설화화된 것으로 추단되고 
    있다.
    
    
    [참고문헌] : 三國史記, 三國遺事, 三國遺事所載 未鄒王攷
                        (文暻鉉, 三國遺事硏究, 嶺南大學校出版部,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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