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의 불심 풍기·희방사
신라 선덕여왕 때, 덕망 높은 두운대사는 지금의 경북 소백산
기슭 천연동굴에서 혼자 기거하며 도를 닦고 있었다. 그곳 동
굴에는 가끔 호랑이 한 마리가 찾아와 대사의 공부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가거나 어느 때는 스님과 벗하여 놀다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석양 무렵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찾아온 호랑이는 굴 입구에서 입을 딱 벌리
고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이상히 여긴 두운대사가 가까
이 다가가 호랑이 입 속을 들여다보니 금비녀가 목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두운대사는 비녀를 뽑아준 뒤 호통을 쳤다.
『네 이놈! 산에도 네가 먹을 짐승이 많은데 사람을 잡아먹다니,
천벌을 바등ㄹ 것이니 앞으로는 절대 사람을 해치지 말라.』
목에 걸린 금비녀를 뽑아내니 후련해서 살 것 같았는데, 스님의
호령이 워낙 추상 같으니 호랑이는 인사도 못한 채 잘못을 알았
다는 듯 슬며시 사라졌다.
그런 일이 있은 얼마 뒤 호랑이는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와서
놀다가곤 했다. 한번은 큰 맷돼지를 잡아 새끼들과 함께 스님이
계신 동굴로 먹이를 물고 왔다. 아마 호랑이 생각엔 그 멧돼지
고기를 스님에게 공양 올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두운대
사는 또 호통을 쳤다.
『이 녀석아! 불도를 닦는 나보고 육식을 하란 말이냐? 어서 썩
물러가거라.』
호랑이는 또 새끼들을 데리고 고개를 숙인 채 슬그머니 꽁무니
를 뺐다.
그 후 어느 봄날이었다. 혼자 찾아온 호랑이는 이번엔 두운대사
의 옷자락을 물고 끌어당기는 것이었다. 예사롭지 않게 생각한
스님은 호랑이를 따라 나섰다. 바삐 달리는 호랑이를 앞세워 당
도한 곳은 동굴에서 그리 멀지 않은 폭포 아래였는데, 그곳엔 아
리따운 처녀가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두운대사는 급히 처녀를 업고 동굴로 돌아왔다.
물을 끊여 몸을 따뜻하게 하고 약풀을 달여 먹이는 등 스님이
극진히 간병하니 처녀는 이튿날 간신히 눈을 떴다.
『이제 정신이 드는가 보군.』
『아니, 이곳은 어디이며 스님은 뉘신지요?』
『여기는 소백산 중턱이고 나는 이곳에서 불도를 닦고 있는 두
운이란 승려요. 한데 낭자는 어이하여 이 깊은 산중에서 변을
당했소?』
『소녀는 서라벌 유호장의 무남독녀 외딸이옵니다. 전날 밤 안
방에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는 제 침소로 돌아가려고 마
루로 올라서는 순간 무엇이 등을 덮치는 것 같았는데 그만 정신
을 잃었사옵니다.』
『음 저런! 아무튼 이렇게 소생한 것이 다행이오. 이 모두 부처
님의 가피입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목숨을 구해 주신 스님의 은혜 죽어도 잊지 못할 것이옵니다.
소녀, 집에 도착하는 즉시 아버님께 아뢰어 스님께 보답토록 할
것이옵니다.』
『원, 별소릴 다하는군. 지금 그 몸으로 서라벌까지 갈 수 없으
니 불편하더라도 이곳에서 며칠 더 유하여 원기를 회복한 후 떠
나도록 하오.』
소스님은 동굴 속에 싸리나무 울타리를 만들어 안쪽에 처녀를
거쳐케 하면서 정성껏 보살폈다.
그렇게 5일째 되던 날. 처녀의 얼굴에 생기가 돌자 스님은 처녀
앞에 남자옷 한 벌을 내 놓았다.
『스님, 웬 남자옷입니까?』
『곧 길을 떠날 터이니 어서 갈아입으시오. 수도승이 처녀와 먼
길을 가려면 불편한 점이 많을 뿐 아니라 길손은 남장을 하는
편이 훨씬 편하고 부담이 없을 것이오.』
두운 스님은 처녀를 남장시켜 서라벌 유호장 집으로 데리고 갔
다. 막 대문을 들어서려는데 늙은 하인이 보고는 깜짝 놀라 소
리친다.
『아이구! 이게 누구세요. 우리 아씨 아니세요?』
『예, 저예요.』
『마님! 아씨가 돌아오셨어요.』
『뭐, 뭐 뭐라고….』
유호장과 유호장 부인은 버선발로 뛰어나오며 딸을 반긴다.
어느 날 밤 소리없이 증발한 딸이 스님과 함께 남장을 하고 무
사히 돌아왔으니 의아하면서도 마치 죽은 자식이 다시 살아돌
아온 듯 기쁘기 짝이 없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유호장 부인은 스님은 안중에도 없는 듯 딸을 앞세워 안으로
들어갔다. 딸로부터 자초지종 사연을 들은 유호장 내외는 그
제서야 스님께 합장하고 큰절로 예를 올려 감사했다.
『스님! 스님의 크신 은혜 평생 동안 갚은들 어찌 다할 수 있겠
습니까. 말로 헤아릴 수 없는 스님의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코자 소인 가진 것은 많지 않으나 스님 토굴 옆에 공부하
시는데 불편이 없도록 암자를 하나 창건토록 하겠습니다.』
『불도를 닦는 소승 그런 과한 인사받기 몹시 송구합니다.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가피일 뿐입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두운 스님은 그저 할일을 했을 뿐이라는 듯 눈을 지그시 내려감
고 굵은 염주를 굴릴 뿐 어디 하나 기쁜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유호장은 그날 저녁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온 마을 사람들과 딸
의 귀가를 축하하며 기쁘을 나눴다.
그 후 유호장은 사재를 들여 멀리 소백산 중턱에 암자를 세웠다.
정상의 3분의 2 지점이나 되는 높은 곳에서 어려운 대작 불사가
완성되자 유호장 내외는 딸과 함께 새로 건립된 절을 찾아 두운
스님을 뵈었다.
『스님, 이곳은 저의 가문에 기쁜 소식을 전해 준 방위이므로 절
이름을 「희방사」라 하면 어떠하올는지요?』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그렇게 합시다.』
두운 스님은 절 이름을 희방사라 명했으니 때는 선덕여왕 12년
(643)이었다.
그 후 처녀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폭포 이름도 희방폭포라 불
리우게 됐다. 길이 28m로서 물줄기가 두어 번 중간에서 물보라
를 일으키며 떨어져 장엄을 이루는 이 폭포는 내륙지방에선 가
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더욱 유명하다. 소백산 최고봉인 연화봉
(1439m) 가는 길목 해발 830m 지점에 있다.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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