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野史

사대독자의 살인누명(2)

eorks 2015. 3. 16. 00:14
韓國野史 이야기(夜談)

사대독자의 살인누명(2)
    그리하여 혼례 초부터 독수공방을 하게 된 신부는 불운하게도 삼일 째 되던 날. 비명에 죽고 말았다. 칼에 깊숙이 찔린 배의 상처에서 나는 피가 방바닥에 흥건하게 고였고 아래 속옷은 벗겨져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창옥의 처가식구들은 하늘이 무너진 듯 대성통 곡을 했고 많은 사람들은, "신랑이 한 짓이 아니고, 누가 그랬겠느냐?"며 신랑을 죄인으로 몰아 부쳤다. 그도 그럴 것이 물 한 모금 밥한 숟갈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은 채, 신랑이 제집으로 돌아갔으니 그런 말을 듣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 었다. 처가 식구들은 우선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고는 신랑을 살인범으로 단정하고, 형조에 고발을 하였다. 살인죄 누명을 쓴 채, 형틀에 매어있는 창옥은, "나는 절대 그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고 완강하게 부인했으나, 형 조판서는 눈알을 위아래로 부라리며 바른대로 말을 하라고 주리를 틀어댔다. 너무나 엄청난 고문에 못 이겨 길도사가 가르쳐 준대로 했을 뿐이라고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하지만 형조판서는 그것으로 는 물증이 될 수 없다며 목을 쳐서 저자거리에 매달도록 지시했다. 창옥은 내일 날만 밝아지면 목이 댕그랑하고 끊어질 것을 생각하니, 온몸이 오싹했다.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옥에 갇혀 있는데, 형장에서 목을 치는 망나니가 다가와, "이놈아! 가자. 내가 오늘은 너의 목을 베는 게 하루 일과다. 그러니 죽을 놈 같으면 일찌감치 죽어야 나도 일찍 손발 씻고 처자식 있는 집으로 돌아갈 게 아니냐." 하는 것이다. 그러자. 창옥이는 막연하게나마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갑자기 큰소리로 외쳐댔다. "아! 바로 이거다." 그 언젠가 길도사께서 가르쳐준 비방이라며, 아버지가 허리춤에 간 직하라고 했던 호신용 그림이란 것이 생각났다. 허리춤에 똘똘 뭉쳐 있는 그림을 꺼내 형리(刑吏)에게 주면서 형조판서에게 전달해주고 오도록 부탁했다. 그러자. 형리는, 그참! 별놈 다 보았네. 무슨 놈의 이런 좋지도 않은 종이뭉치를 주라고 하는 거야." 하며 형조판서에게 바쳐진 그 그림이 서서히 펼쳐지기 시작할 때 한참동안 그림을 보고 있던 판서는 큰소 리 영을 내렸다. "여봐라. 지금 당장 가서 신부집에 있는 머슴 황삼술(黃三戌)이란 놈 을 냉큼 잡아오도록 해라."고 명령했다. 형조판서가 펼쳐본 그림에는 누런 종이에 개 세 마리가 그려있기 때 문이었다. 누런 종이는 황씨(黃氏) 성을 말하고, 개 세 마리는 삼술 (三戌)이 되므로 이를 종합해 보면 황삼술(黃三戌)이 되었다. 그리하여, 머슴살이하는 머슴 중에서 황삼술을 잡아오도록 했던 것이 다. 형틀에 묶인 황삼술은 죽을 죄를 지었다며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사실은 소인 놈이 오래 전부터 죽은 이씨 집에서 머슴살이를 해오던 차에 아씨의 얼굴이 어찌나 예쁘고 품행이 단정한지 나도 모르게 홀 딱 반해 언제부터인가 짝사랑을 해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씨가 혼 례를 치러버렸습니다. 혼자서 울분을 참지 못해 아씨방으로 들어갔지 요. 사실은 신랑 놈이 괘씸해서 죽이려고 칼을 쥐어들고 들어갔는데, 아씨께서 혼자서 속옷바람으로 주무시고 계시기에 이불 속에 슬그머 니 손을 넣어 젖가슴을 살짝 만져 보았는데, 그 순간 염치도 없는 남근(男根)이 마치 참나무 장작과 같이 빳빳하게 일어서기에 숨소리 를 죽여가며 아씨 속옷을 배꼽 위로 슬슬 걷어올리고 염치없는 놈을 그곳에 대고 엉덩이에 힘을 주어 밀어 넣는 순간, 아! 소리와 함께 아씨가 그만 잠에서 깨어나더니 불을 켜더니 소인 놈의 뺨을 후려쳤 지요. 그래도. 소인 놈은 꿇어앉아 "아씨께서 한번만 제게 몸을 섞어 주신다면 죽어도 소원이 없겠습니 다" 라고 사정했지만, "죽이려면 죽이거라." 고 몸을 내밀기에 엉겁결에 칼로 젖가슴을 내 려쳤습니다." 라며 살인하게 된 과정을 울먹이며 말하는 것이었다. 그 후. 머슴의 목이 저자거리에 매달리고, 누명을 벗은 정창옥은 길 도사를 찾아가 의부(義父)가 되어 줄 것을 사정하여 부자간의 정을 맺으니 정창옥은 길도사를 친아버지처럼 섬겨 생명의 은인에 보답 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길도사는 맹인이었다고도 하는데, 길도사는 인간의 운명을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천리안을 가진데다 그에 상응한 횡액 (橫厄)을 면할 수 있는 비방에도 능통했던 사람이었다 한다.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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