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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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ㅡ22화]옛얘기로 하는 며느리의 고백
한 신부가 시집을 오니 시어머니가 워낙 고담(古談), 즉 옛날
이야기를 좋아했다. 시어머니는 날마다 여가만 있으면 며느리에
게 옛날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조르니, 며느리는 시집오기 전 어
른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몇 가지 들려드렸다. 그리고 나니 며
느리는 들려드릴 이야기가 더 이상 없었다.
며느리가 알고 있는 얘기를 모두 다 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할
이야깃거리가 없다고 해도, 시어머니는 막무가내로 계속 무슨
얘기든지 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며느리는,
"어머니! 그러시면 제가 근래에 겪은 일도 옛얘기가 될 수 있
는지요? 어른들에게서 들은 옛이야기는 하나도 남은 것이 없습
니다."
하고 여쭈었다. 그랬더니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겪은 일도 물론
고담이 될 수 있다고 하면서 들려 달라고 했다.
이에 며느리는 자신의 경험이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집오기 전 혼인날을 받아 놓은 어느 날 해가 질 무렵인데,
집에 길어다 놓은 물이 다 떨어지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녁밥
을 짓기 위해 우물에 물을 길러 갔습니다. 우물 속을 들여다보면
서 허리를 구부려 두레박을 넣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허리를 잡
아끄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서 돌아보니 이웃집에 사는 김씨 총
각이었고, 무어라고 말할 여유도 주지 않고 그대로 우물 옆에 있
는 삼밭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어머님, 정말 얘기를 계속해도
되겠습니까?"
여기까지 얘기한 며느리는 열심히 듣고 있는 시어머니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재미있는 얘기라면서 끝까
지 들려 달라고 했고, 그래서 며느리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삼밭 가운데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총각이, `좋아하는 너를
그냥 시집보내기가 아까워서 너를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
이니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라고 말하며, 제 한쪽 다리를 높
이 들어 총각의 한쪽 팔에 걸었습니다. 저는 넘어질 것 같아 몸
을 의지하며 머리를 그의 가슴에 파묻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어
떻게 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한쪽 손으로 제 엉덩이를 끌
어당기고 어떻게 몸을 흔들어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저는 저절
로 눈이 감기면서 말문이 막히고 사지에 힘이 탁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어머님! 저는 아직도 그게 무엇을 한 것인지 모
르고 있습니다. 저의 이런 얘기도 정말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고
담이 될 수 있는지 그것조차도 모르겠습니다."
점점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얘기를 다 들은 시어머니는, 며
느리가 처녀 때 정숙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고 꾸짖으며, 친정으
로 돌아가라면서 쫒아내 버렸다.
며느리가 친정으로 쫒겨 가면서 평소 가까이 지내던 옆집에
들러 작별 인사를 했다. 그 때 옆집 부인이 왜 쫒겨 가느냐고 묻
기에, 신부는 사실대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얘기를 들은 옆집
부인은 화를 내면서, 그만한 일로 쫒겨 갈 필요가 없다고 하며
이렇게 말해 주는 것이었다.
"새댁! 내 말 잘 들어, 새댁 시어미는 예전에 젊었을 때 북쪽
에 있는 절의 스님과 몰래 정을 통했어, 그것도 한두 번 실수로
그런 게 아니라 홀랑 빠져서 밤낮없이 쫒아다녔단 말이야, 그래
서 동내 사람들이 간통한 여자의 대표라고 하여 `조리돌림`을 시
켰거든, 커다란 북을 짊어지우고 크고 무거운 둥그런 부마(負磨)
맷돌을 머리에 이게 한 다음, 군인들이 사용하는 긴 화살을 비녀
대신 머리에 꿰어서, 이런 모습으로 온 마을을 돌아다니게 하는
조리돌림을 시켰었지, 그때 동내 사람들과 아이들이 죽 따라다
니면서 지고 있는 북을 치기도 하고 돌맹이를 던지기도 하여 큰
모욕을 당하게 했다우, 그렇게 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제 행실이 그런 주제에 어찌다가 총각에게 끌려가 실수한 며느
리를 어찌 쫒아낸단 말이야? 새댁! 지금 바로 시어미에게 가서
이 애기를 똑똑히 전해요, 그러면 아마도 꼼짝 못하고 새댁을 쫒
아내지 못할걸."
이 이야기를 들은 며느리는 친정으로 가지 않고 다시 시집으
로 들어갔다. 며느리를 본 시어머니가 막 소리치면서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에, 며느리는 한말씀만 드리고 가겠다고 하며 마루
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시어머니에게 조금 전 옆집에서 들은 이
야기를 그대로 공손하게 얘기하니, 시어머니는 화를 내면서 펄
쩍 뛰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세상에 그런 불명예스러운 얘기를 너에
게 했어? 그런데 당시 내가 짊어진 북은 커다란 북이 아니라 조
그맣고 네모난 작은 소고였어, 그리고 머리에 인 맷돌도 서서 돌
리는 크고 무거운 `큰 맷돌`이 아니라 한 손으로 돌리는 작은 맷
돌이었고, 또 머리에 꽂은 것도 군인들이 전쟁에서 쏘는 그런 큰
화살이 아니라 무당이 귀신 쫓는 데 쓰는 작은 쑥대 화살[蓮失]
이었단다. 그 여편네가 쓸데없이 아무것도 모르는 너한테 날 헐
뜯는 소리를 했구나, 너 친정으로 갈 것 없이 오늘부터 우리 집
안에만 틀어박혀 꼼짝 말고 일이나 해,"
이렇게 말한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나무라지도 않았고, 이후
로는 옛날얘기도 들려 달라고 하지 않더라.<조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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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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