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때 유머

다섯 아들의 철저한 감시

eorks 2019. 3. 15. 00:35
[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제1부 선비들의 멋, 그것은 유머였다.
[제1ㅡ26화]다섯 아들의 철저한 감시
한 선비가 집은 가난하면서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도 부부 금 실이 좋아 매일 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내와 잠자리를 했다.
그런데 방이 하나뿐이어서 다섯 아이들이 부모와 한방에서 생활 하니, 좁은 방 아이들이 잠든 옆에서 부부 잠자리란 아무리 조 용히 한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자연히 아이들에게 들키 는 날이 많았다.

부모의 잦은 잠자리를 지켜본 아이들이 다음과 같은 하소연 하면서 의논을 하는데, 먼저 제일 큰아이가 제의했다.

"얘들아, 엄마 아빠가 저렇게 금실이 좋아 매일 밤 잠자리를 하니 틀림없이 또 동생이 태어날 것 같다. 만약에 또다시 동생이 태어나면 결국 우리들이 업어서 키워야 하니, 등에 오줌도 싸고 힘이 들어 견디기 어렵다. 오늘부터 우리 다섯이 매일 밤 하나씩 당번을 정해 잠을 자지 말고 지켜서 엄마 아빠의 잠자리 행사를 못하게 막도록 하자."

이렇게 실로 가슴 아픈 결정을 하게 된 것이었다. 이후로 부 모가 기회를 보아 잠자리를 하려고 하면 자지 않고 있던 당번 아 이가 모든 아이들을 깨워 소란을 피우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니 부모는 아이들의 방해로 잠자리를 하지 못하게 되었고, 마침내 아이들이 당번을 정하여 지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곧 선비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저 아이들이 우리의 잠자리를 훼방놓으려고 당번을 정해 불침번을 서고 있으니, 제일 어린아이가 당번일 때를 노려 이 아이가 피곤해 잠든 사이에 기회를 보아 잠자리를 하도록 합 시다."

그래서 선비 부부는 제일 어린아니가 당번인 날, 이 아이가 고단해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는, 남편이 아내 뒤에 붙어 누워서 살그머니 연장을 삽입해 놀이를 시작했다. 이 때 기분이 오른 아 내가 몸을 조금 심하게 흔드니 그만 비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당 번 아이가 놀라 잠에서 깨어나 이렇게 소리친 것이다.

"엄마, 밤중에 날도 새기 전에 아빠를 업고 이딜 가?"

그래서 부부는 오랜만에 기회를 노렸지만 역시 작업을 완수 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그만 중단하고 말았다.

아침에 선비는 화가 나서 아이들을 소리쳐 불렀다.

"너희들 잘 들어, 너희 다섯 명이 함게 소를 몰고 산으로 가 서 종일 소에게 풀울 뜯어먹이고 해거름에 돌아와야 한다. 결코 빨리 돌아와서는 안 되느니라. 알았느냐?"

이렇게 호통을 쳐 아이들을 내쫓아 놓고는 느긋한 마음으로 옷을 벗고 오래 참았던 그 정감을 유감없이 풀기 시작했다.
선비 부부는 맨몸으로 나란히 누웠다. 먼저 남편이 부인 눈썹 을 만지면서,

"여보, 이게 무엇이지요?"

하고 물었다. 이에 아내는,
"그것은요, 내 팔자문(八字門)이지요."
하고는 대답했다. 이어서 선비가 그 아래에 있는 눈을 만지며,

"이것은 또 무엇이지요."
하고 물었다. 이에 아내는,

"예, 그것은 내 망부천(亡夫泉)이랍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런 식으로 질문과 대답을 거듭하면서 남편의 손은 점점 아 래로 부인의 몸을 더듬어 내려갔다.

코를 만지면서 물으면 "그것은 감신현(甘辛峴)이지요"라고 대답하고, 입을 물으면, "그것은 토향굴(吐香窟)이지요" 하고 대 답하고, 턱을 물으면 "그것은 사인암(舍人巖)이지요" 하고 대답 했다.

이어 남편은 유방을 만지면서 "이것은 무엇이냐?고 물으니 아내는 "그것은 쌍령(雙嶺)이지요" 하고 대답했다. 또 배를 물으 니 `유선곶(遊船串)'이라 대답하고, 더 내려가 볼록한 둔턱을 물 으니 그것은 `옥문산(玉門山)'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남편은 음모를 잡고 물으니 아내는 `감초전(甘草田)' 이라고 대답했으며, 마지막으로 옥문을 만지면서 물으니,
"그것은 `온정(溫井)'이란 것입니다" 하고 다정하게 대답했다.

이렇게 남편의 질문이 끝나고, 다음에는 아내의 질문이 시작 되었다. 남편의 음경을 잡고, "여보, 이것은 무엇이지요?" 하고 물으니 남편은, "응, 그것은 주상시(朱常侍)라는 것이지요.라고 대답했다.

이어 음낭을 잡고 "이것은요?" 하고 물으니 남편은, "그것은 홍동씨 형제(紅同氏兄弟)지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러다 보니 애정 문답 놀이에 그만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편 다섯 아이들은 집을 나가서 산으로 가지 않고 소를 풀이 많은 냇가에 매어놓고, 몰래 집안으로 숨어들어왔다. 그리고 엄마 아빠 애정 문답 놀이를 하고 있는 방 창문 아래에 서서 지금까지의 얘기들을 모두 다 엿들었다.

얼마 후 아빠가 바야흐로 엄마의 몸속 깊은 곳에 연장을 삽입 하려는 순간, 아이들은 일제히 신호를 하며 우르르 방으로 몰 려들어갔다.. 깜짝 놀란 부부는 이번에도 애정 작업이 서론으로 끝나고 본 작업은 이루지 못했다.

선비는 화를 내며 아이들을 붙잡아서,

"너희들 하루 종일 소에게 풀을 뜯어먹이고 오라 했는데 왜 이 아비의 말을 듣지 않고 이렇게 빨리 들어왔느냐? 매를 맞아 야겠다."
하고 는 야단치면서 아니들을 때리려고 했다.

"아버지, 그렇지 않습니다. 소에게 풀을 배부르게 뜯어먹였 습니디. 그리고 우리들은 목욕도 하고 산으로 들로 다니며 많이 놀다가 왔습니다."

"뭐라고? 그 짧은 시간에 어찌 그렇게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 다가 왔다고 하느냐? 못된 것들,"

"아 아버지, 정말입니다.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처음에 소 를 몰고 `팔자문'에서 나가 `망부천'에 가서 물을 먹이고, 이어 `감시현'과 `토향굴', 그리고 `사인암' 등으로 다니면서 풀을 뜯 어먹인 다음, 다시 `쌍령'을 넘어 `유선곶'을 건너서 `옥문산'에 올랐다가, 마지막으로 `감초전'에서 잘 자란 좋은 풀을 배부르게 뜯어먹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온정'의 따뜻한 물에서 목욕 까지 잘하고 왔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은 선비 부부가 애정 문답 놀이로 하던 말을 그 대로 엮어서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선비는 더욱 화를 내 고 몽둥이로 아이들을 쫒으며 야단쳤다.

"누가 너희들이 그렇게 돌아다니는 것을 본 놈이 있느냐?"

"아, 예 아버지! `주상시'와 `홍동씨 형제'가 저희들이 다니는 것을 본 증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아이들은 부친의 매를 피하여 달아났고, 이 후 선비 부부는 아이들의 감시로 아늑하고 정감어린 즐거운 애 정 놀이 시간을 갖지 못했다.<조선 초기>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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