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록유산 /말레이시아 /세자라 멜라유(말레이 연대기)
[Sejarah Melayu(The Malay Annals)]
말레이 연대기라고도 불리는 『세자라 멜라유(Sejarah Melayu)』는 15세기~16세기 초까지 말레이 술탄(Malay Sultan)국의 역사에 관해 현재까지 전해지는 고유한 저술 작품이다. 이 연대기는 고유한 정부와 행정 그리고 정치 체계를 지녔던 위대한 말레이 해상 제국의 기원과 발전, 그리고 종말에 관한 역사적 서사를 담아낸 역사문학(歷史文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연대기는 힌두-말레이(Hindu-Malay) 문화부터 이슬람-말레이(Islamic–Malay) 문화에 이르기까지, 말레이 군도 사람들이 겪은 주요한 변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말레이 사람들은 이 이야기에 대해 보편적인 매력을 느낀다. 중계무역항으로서의 믈라카(Melaka)에는 인도·중국·아라비아·포르투갈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상인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국제적인 장소였고 이러한 이유로 믈라카는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은 말레이 왕국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 변화에 기여하였다. 따라서 본 연대기는 사회학·인류학·경제학·정치학·국제관계학·언어학·문학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에게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
국가 : 말레이시아(Malaysia)
소장 및 관리기관 : 말레이시아 언어문학연구소(Dewan Bahasa dan Pustaka)
등재연도 : 2001년
세계적 중요성·고유성·대체 불가능성 :
『세자라 멜라유(말레이 연대기)』는 근대국가에 이르기까지 수세기에 걸쳐 중요한 문화적 변화를 겪은 말레이 문명의 발전, 그 역사 및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왔다. 15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믈라카는 두 가지의 지배적 영향을 받았는데 그 하나는 말레이-힌두 문화이고 나머지는 말레이-이슬람 문화이다. 하지만 역사 과정에서 중국·인도·포르투갈과 같은 다른 나라의 인종은 물론이고 참족(Cham, 타이)과 같은 소수인종과도 동화하면서 말레이 문화는 더욱 풍부해졌다.
믈라카는 행정·상업·종교의 중심지로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오늘날까지 이러한 인종적 동화 및 통합은 말레이사아라는 한 나라의 강력한 토대가 되었다.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인도네시아·태국과 같은 이 지역의 다른 여러 나라들은 물론, 다른 지역의 여러 국가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믈라카는 정치와 행정 분야에서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군주는 절대 권력에 해당하는 주권의(다울랏(daulat)) 개념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관철하였다. 『말레이 연대기』는 또한 확립된 위계 체계 안에서 지배자와 관리가 지켜야 할 책임자로서의 위치에 대해서도 명확히 하고 있다. 궁정에서 치러지는 여러 관례 의식의 관행을 공식화하였고, 이러한 관행은 오늘날까지 여러 국가들의 궁정에서 치러지는 공식적인 예식 및 의전 행사의 기초가 되었다.
믈라카는 말레이 군도(Malay Archipelagos)에서 주도적인 해상 강국으로 성장하였다. 국제적으로는 하나의 주권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그 권한에 맞는 제국으로 성장하였다. 믈라카 국력의 토대는 믈라카에서 중국인 무역상들로 인해 촉진된 경제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중국인 상인들은 믈라카에서 무역 거래를 허가받았으며, 무역사절단이 중국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또한 믈라카와 중국의 인척관계도 형성되었다. 중국과의 이러한 관계는 두 가지 중요한 결과를 낳았다.
첫째, 믈라카의 존재가 공인되었다.
둘째, 중국과의 무역은 번영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해상 무역의 제어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믈라카는 서구와의 교역에서 중국을 돕는 역할을 했으며, 이와 같은 정치적·경제적 여건으로 인하여 믈라카와 중국은 서로 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이 지역 외곽에서의 무역활동과는 별도로 믈라카는 특히 팔렘방(Palembang), 자바(Java), 술라웨시(Sulawesi), 마자파히트(Majapahit)와 같은 남쪽 왕국(인도네시아 도서왕국)의 항구들과 교역하였다.
요컨대 믈라카는 다른 나라들과 강력한 국교를 유지함으로써 지역 내외로부터 무역 상인들과 투자자들을 유치할 수 있는 경쟁 환경을 제공하면서 경제 활동을 장려할 수 있었다.
믈라카는 고유의 법과 규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사회 전체의 전반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주민들은 총 84종의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했지만, 점차 말레이어가 공통어로 자리 잡아 갔다. 문화와 문학의 언어로서 말레이어는 왕궁의 안팎에서 사용되었다.
믈라카 왕국은 또한 이 지역에서 이슬람교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었다. 아랍인, 인도인, 자바인, 선교사, 무역상인 등과 같은 외국인들이 믈라카 항에 거주하게 되면서 외국 상품을 구매하는 말레이의 소비자는 캄베이(Cambay, 인도), 호라산(Khorassan, 이란), 카슈미르(Kashmir, 인도), 메카(Mecca,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도시 이름들을 매우 익숙하게 듣고 있다.
이렇게 말레이 군도 전반에 걸친 이슬람의 확산은 이 지역 공동체와 인도·중국·아라비아는 물론 말레이 군도의 다른 지역 출신 이민자들 사이에서도 상업적인 상호작용을 유발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자라 멜라유(말레이 연대기) [Sejarah Melayu(The Malay Annals)]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세계기록유산(영/불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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