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太乙數란?(1)

eorks 2019. 9. 23. 00:02

풍수지리(風水地理)

太乙數란?(1)
중국민족의 기원은 고고학적으로 규명해 볼 때 B.C. 170만년전의 원모인(元毛人)이 시초라하며 이후 남전인(藍田人) 북경인(北京人) 정촌인(丁村人) 상동인(上洞人) 등으로 이어지면서 B.C. 4~3만년전까지 내려온다.
신석기 시대로 바뀌면서 지역에 따라 다른 문화적 계통을 형성하는데 B.C. 7천~6천년경 하남성(河南省) 자산(磁山)의 배리강(裴李崗)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고대문화의 흔적이 나타나고 반파(半坡)지역의 유적은 B.C. 5~3천년전 무렵 황하강(黃河江) 상류를 중심으로 채도(彩陶)문화를 형성했던 앙소문화(仰韶文化)와 B.C. 4500~2300년경으로 추정되는 대문구(大汶口)문화나 황하강 중류의 흑도문화(黑陶文化)가 있었고 또 하(夏)왕조와 연계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용산문화(龍山文化)가 있으며 이어 안양(安養)의 소둔촌(小屯村)에서 발굴된 은허(殷虛)의 갑골문(甲骨文)을 통해 은나라 왕조의 세대(世代)와 이름까지 소상히 밝혀졌다.

문헌적 고찰에 따르면 중국의 상고사(上古史)는 삼황
((三皇-복희씨(伏羲氏),여와씨(女媧氏),신농씨(神農氏)), 오제((五帝)-황제(黃帝),전욱(顓頊),제곡(帝嚳), 요(堯), 순(舜))라는 신화적 역사로 채워지는데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의 오제본기(五帝本紀)에서 오제(五帝)에 대한 기록을 남김으로서 이를 실존의 역사인물로 포함시켰다고 본다.

그러나 현재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서 오제(五帝)에 대한 존재여부가 확인된 것은 아니고 실증적으로 확인된 것은 은나라 왕조부터라고 본다. 치수(治水)의 치적(治積)을 통해 민생을 구제(救濟) 구휼(救恤)했고 또 구주(九州)라는 중국의 드넓은 권역(圈域)을 개척했던 우(禹)임금의 하(夏)나라 왕조는 전설로 구전(口傳)되어 내려오는 것을 바탕으로 추정적 발굴단계에 있으나 현재로서 확실한 중국의 상고사는 은나라 왕조부터 실증된다고 본다.

이는 서양철학적 실증논리에 입각한 역사관이고 역사가들의 심증으로 하왕조를 부정하는 이는 하나도 없다.
사실 중국사에서 고증철학이 발호되기 시작한 시기는 청나라때부터인데 청나라때의 역사가들 중에 은나라 30대 제왕 탕리(湯履)-태을(太乙)에서부터 30번째의 끝임금 주신(紂辛)에 이르기까지 제왕(帝王) 세대(世代)의 년차나 이름 등을 사마천이 사기에 임의로 조작해서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었는데 은허(殷虛)의 반경(盤庚)등지에서 발굴된 갑골(甲骨)과 각종석기(石器) 종정(鍾鼎)이나 기물(器物)등에 새겨진 갑골문(甲骨文)이나 도형(陶形)등에서 은대의 제왕년표(帝王年表)가 사기(史記)의 기록과 글자하나 심지어 숫자하나까지도 틀림이 없는 점에 학자들은 크게 놀랬다.

그야말로 갑골문(甲骨文)이란 타임캡슐은 5천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역사적 사실을 우리 눈앞에 진열해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갑골문(甲骨文)의 많은 기록들은 사실은 제사(祭祠)나 점복(占卜)의 결과를 상형문자로 기록한 것들인데 그 당시에 이미 단순한 수의 개념을 뛰어넘어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와 12지(十二支)등을 사용함으로서 대수(代數)의 공식(公式)을 터득(攄得)하고 있었다는 점은 가히 경탄(驚嘆)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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