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세계문화유산 /모로코 /마자간 포르투갈 요새(엘자디다)(533)

eorks 2020. 11. 26. 19:20

세계문화유산 /모로코 /마자간 포르투갈 요새(엘자디다)
[Portuguese City of Mazagan, El Jadida]
요약 : 마자간(Mazagan) 옛 포르투갈 요새는 카사블랑카(Casablanca)에서 남서쪽으로 90㎞ 떨어진 곳으로 지금의 엘자디다(El Jadida) 시에 있다. 16세기 초에 대서양 연안에 식민지의 요새로 건설되었다가 1769년에 모로코인들이 차지하였다. 이 요새는 성채와 성곽이 있으며,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군대 건축 디자인(military design)의 초기 사례에 속한다. 현재 남아 있는 포르투갈 건물은 저수 시설과 포르투갈의 후기 고딕 건축 양식인 마누엘 양식(Manueline style)으로 지은 성모 승천 교회(Church of the Assumption)가 있다. 마자간 옛 포르투갈 요새는 인도로 가던 포르투갈 탐험가들이 서아프리카에서 머물던 초기 정착지 중 하나이다. 유럽 문화와 모로코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탁월한 사례로, 건축·기술·도시계획에 잘 나타나 있다.

엘 자디다 요새

엘 자디다 요새

엘 자디다 요새

엘 자디다 요새

엘 자디다 모스크

엘 자디다 모스크

엘 자디다 모스크

엘 자디다 저수시설

엘 자디다 저수시설

엘 자디다 저수시설

    국가 : 모로코(Morocco)
    위치 : 엘자디다 주(Province El Jadida), 두칼라압다 지방(Doukkala-Abda)
    좌표 : N33 15 24.012,W8 30 6.984
    등재연도 : 2004년
    마자간 포르투갈 요새(엘자디다) :
    마자간 포르투갈 요새는 인도로 가던 포르투갈 탐험가들이 서아프리카에서 머물던 초기 정착지 중 하나이다. 건축·기술·도시 설계에 잘 나타나 있듯이 유럽 문화와 모로코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을 알 수 있다. 이 유산은 르네상스의 이상이 포르투갈 건축 기술에 통합되어 나타난 것이다.

    마자간은 카사블랑카 남동쪽에서 약 90㎞ 떨어진 대서양 연안에 위치해 있으며 매우 아름다운 천연 만(灣)을 향해 있다. 엘자디다의 현대적인 도시 부분은 마자간 요새에서 내륙 방향으로 개발되었다. 오늘날 이 도시는 생산물이 풍부하고 포르투갈 지배 기간과 관련된 유산도 풍부한 지역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측면과 관광의 측면에서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다.

    11세기부터 아라비아와 외국 문서에 마자간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포르투갈어로는 ‘마자가오(Mazagao)’라고 한다. 마자간은 1486년 이후 포르투갈의 보호령이었는데, 1502년에 포르투갈인들이 처음 정착하였다. 이 지역에 있었던 유일한 건축물은 엘브루야(el-Brija)라는 탑이었다. 1514년에 포르투갈인들은 프란치스코 형제회와 디오고 데 아루다의 설계로 성채를 건설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들은 모로코에 있는 다른 메디나의 요새에서도 일한 적 있었다. 1541년 아가디르(Agadir)가 함락된 후 성채는 요새로 다시 확장하여 건설했다.

    이때 포르투갈 출신의 조아우 히베이루, 에스파냐 출신의 후안 카스티요, 이탈리아 출신의 베네데토 다 라벤나로 이루어진 팀에게 설계를 맡겼다. 1541년부터 1548년까지 브라질의 세우타(Ceuta)와 티모르(Timor)의 모가도르(Mogador)에서 총독을 지냈던 루이스 데 로레이로(Louis de Loureiro)가 요새의 총독이었다. 마자간은 종교 간 대립이 심했던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종교적 상징물을 건축하였고 급속한 도시 개발 과정을 거쳤다. 16세기 말경에는 요새 안에 4개의 교회와 여러 개의 작은 예배당이 생겼다.

    마자간은 모로코에서 포르투갈의 최후 근거지였다. 포르투갈은 250년 이상 모로코를 점령했으나 1769년에 막을 내리게 된다. 술탄 모하메드 3세(Sidi Mohamed Ben ‘Abdallah, 재위 1757~1790)와 평화 조약을 체결한 후 포르투갈인들은 소지품도 챙기지 못한 채 해상 관문을 통해 떠나야 했다. 도망치면서 주 출입구에 지뢰를 설치했는데 모로코인들이 강제로 열려다가 폭발하여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이 폭발로 인해 총독의 보루와 주요 성곽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도시는 거의 반세기 동안 재건되지 않아 알마두마(al-Mahdouma, 폐허)라고 불렀다. 19세기 중반에 술탄 물레이 압델라만(Sultan Moulay ‘Abderrahman)이 이 지역 관리에게 요새의 손상된 부분을 복구하고 이슬람 사원을 건축하여 예전의 포르투갈 도시 부분을 재건하도록 명령하였다. 당시에 복구된 요새는 복구되지 않은 나머지 부분과는 다소 양식이 달라졌다. 마자간이라는 이름은 사용이 금지되고 ‘새롭다’는 뜻의 ‘엘자디다’로 부르게 되었다.
    ,BR> 엘자디다에서 모스크가 도시의 상징이 되었지만, 이전 시대에 있었던 모든 증거와 장소가 파괴된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이슬람교도·유대인·모로코인을 비롯한 다른 여러 민족들이 성 안에 함께 거주하였다. 모스크 앞에 포르투갈 지배 시대의 교회가 남아 있고, 유대교 회당인 시너고그(synagogue)도 도시 안에 있었다. 19세기 후반기에는 유럽에서 새로운 상인·선교사·외교관들이 들어오면서 종교와 민족이 더욱 다양해졌고, 프랑스의 유명한 해변 휴양지인 도빌(Deauville)을 따라 프랑스어로 ‘모로코의 도빌’(Le Deauville marocain)로 알려지게 되었다.

    마자간 요새의 디자인은 르네상스 시대에 나타난 근대적인 대포의 발전에 맞춘 것이었다. 현재 요새에는 동쪽에 천사(Angel)의 보루, 북쪽에 성 세바스찬(St Sebastian)의 보루, 서쪽에 성 안토니우스(St Antoine)의 보루, 남쪽에 성령(Holy Ghost)의 보루 등 4개의 보루가 남아 있다. 주 출입구에 있던 5번째 총독의 보루(Governor's Bastion)는 1769년 포르투갈인들이 파괴하여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

    요새에는 북동쪽에 있는 성곽과 함께 작은 항구를 이루고 있던 해상 관문, 북서쪽 성곽의 황소 관문, 처음에는 도개교를 통해 육지와 연결되었던 남쪽 성곽 중앙의 2개의 아치가 있는 중앙 관문 등 3개의 관문이 있었다. 프랑스 보호령 시절에 해자를 흙으로 메우고 주도로인 루아 다 카레이라(Rua da Carreira)와 해상 관문 방면으로 새로운 출입구가 생겼다. 이 도로 주변에 성모 승천 교회와 저수 시설 같은 가장 잘 보존된 역사적 건물들이 있다.

    포르투갈인들이 만든 종교 상징물 2개가 현재 요새 안에 보존되어 있다. 첫 번째는 성모 승천 교회로 16세기에 세워진 교구 성당이다. 이 성당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설계했으며, 신도석·성가대석·성구 보관실·사각 종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번째 건물은 성 세바스찬의 보루에 있는 성 세바스찬 예배당이다.

    성모 승천 교회 앞에는 19세기 모스크가 있다. 이 모스크는 시 입구 쪽으로 트여 있는 테레이로 광장(Praça Terreiro)과 경계를 이룬다. 모스크의 첨탑은 원래 저수 시설의 일부였던 옛 레바테 탑(Torre de Rebate)을 조금 변형한 것이어서 역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상징물 중 하나인 저수 시설은 후안 카스티요가 설계를 했다. 저수 시설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이며, 3개의 홀이 북쪽·동쪽·남쪽에 있다.

    그리고 서쪽의 카에다 탑(Torre da Cadea), 북쪽의 레바테 탑, 동쪽의 황새 탑, 남쪽의 고대 아랍식 탑인 엘브루야 등 4개의 원형 탑이 있다. 또한, 일부가 땅 아래로 들어가 있는 중앙 홀이 있는데, 중앙 홀의 석조 기둥은 마누엘 양식이며 아치형 천정은 벽돌로 만들었다. 물은 성채에서 수로를 통해 저수 시설에 모였다. 저수 시설의 테라스에는 선장 주택(Residence of the Captain)과 소규모 병원 및 ‘작은 자비의 교회’(Church of the Misericordia)가 있었는데 현재는 종탑 잔해만 남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자간 포르투갈 요새(엘자디다) [Portuguese City of Mazagan, El Jadida] (유네스코 세계유산, 세계유산센터(영/불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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