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세계문화유산 /벨기에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646)

eorks 2021. 3. 20. 07:33

세계문화유산 /벨기에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
[Major Mining Sites of Wallonia]
요약 : 왈로니아(Wallonia, 왈롱)에 있는 네 곳의 광산 유적은 길이 170km, 폭 3~15km에 이르며 벨기에를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다. 이곳은 가장 잘 보존된 19세기와 20세기의 석탄광산 유적이다. 이 유산은 고도의 통합 산업 단지로, 유럽의 산업혁명 최초시기에 있었던 이상주의 건축(utopian architecture)을 보여 주는 특별한 사례이다. 특히 그랑-오르뉘(Grand-Hornu) 탄광과 19세기 전반기에 브뤼노 르나르(Bruno Renard, 1781~1861)가 계획·건설한 노동자의 도시가 특별하다. 부아 뒤 뤼크(Bois-du-Luc)에는 1838년~1909년에 건축된 건물이 많고, 17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탄광이 있다. 벨기에 왈롱(Walloon) 지역에는 수백 개의 탄광이 있으나 그 기반시설 대부분은 소실되었다. 그러나 등재된 유적 중에서 네 곳은 수준 높은 완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

그랜드 호르뉴 광업유적

그랜드 호르뉴 광업유적

보이스 두럭 광업유적

보이스 두럭 광업유적 내부

보이스 두럭 광업유적 내부

보이스 두카지에르 광업유적

보이스 두카지에르 광업유적

보이스 두카지에르 광업유적

보이스 두카지에르 광업유적

블레그니 광산

    국가 : 벨기에(Belgium)
    좌표 : N50 26 7,E3 50 18
    등재연도 : 2012년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 :
    이곳의 문화유산은 네 곳의 탄광 유적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 모두는 길이 170km, 폭 15km에 이르는 띠 모양을 이루며, 벨기에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탄전 지대 안에 자리하고 있다. 한편, 띠를 이루고 있는 탄전 지대는 지질학적으로 구별되는 2개의 분지인 서쪽의 에노(Hainaut) 분지와 동쪽의 리에주(Liège) 분지로 분리되어 있다. 서쪽의 분지는 노르-파-드-칼레(Nord-Pas-de-Calais, 프랑스 광산 지역 중 하나)를 통해 프랑스 쪽에서 이어지고 있으며, 동쪽의 분지는 독일의 아헨(Aachen) 지방 근처로 이어지고 있다.

    문화유산을 이루는 네 곳의 탄광 유적지들은 에노 지방에 세 곳, 리에주 지방에 한 곳이 분포되어 있다. 또한 이들 탄광 유적지들은 각각 12개~26개의 건축적·도시적·산업적·기술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 그랑-오르뉘(le Grand-Hornu)의 탄광과 노동자 집단주거촌(la cité ouvrière)
    그랑-오르뉘 탄광 유적지는 산업과 도시 그리고 건축이 긴밀히 결합된 집합건축물로서, 그 중심부에 12개의 주요한 요소를 포함한다. 이 집합건축물의 건설은 채탄(採炭) 단지의 설립자인 앙리 드 고르주(Henri de Gorge, 1774~1832)와 건축가인 브뤼노 르나르에 의해 1810년대에 기획되었다. 이 집합건축물의 산업 중심부는 1816년~1832년 기간에 형성되었으며, 이 중심부를 둘러싸며 조성된 노동자 집단 주택들은 19세기 전반기 동안에 건설되었다. 그랑-오르뉘의 탄광 집합건축물은 유럽 산업화 시대 초기의 여러 이상주의 계획안 중의 하나이다.

    이곳 집합건축물의 중심부는 산업 활동용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은 대부분 집합건축물의 동서를 잇는 주축을 따라서 배치되어 있다. 이 건물들은 역사적인 탄광 개발과 석탄 채굴에 사용되다가, 1955년 이후 사용되지 않고 있다. 집합건축물 중심부의 서쪽 측면 가운데에는 주랑(柱廊)과 박공(牔栱)으로 이루어진 기념비적인 입구 건축물이 있다. 이 입구 건물의 양 옆에는 창고들과 안전등 보관소가 들어서 있다. 그리고 이들 건물이 끝나는 양쪽 모서리에는 작은 종루(鐘樓)가 있는 건물이 직각으로 이어진 벽을 이루며 중심부의 내부 지역으로 이어진다. 양쪽 모서리에 하나씩 위치한 두 건물이 내부를 향해 뻗으면서 만들고 있는 벽(벽 건물) 중에 북쪽 벽 건물은 마구간이며, 남쪽 벽 건물은 창고이다.

    이곳들로부터 집합 건축물군 안쪽의 건물들로 진입할 수 있다. 안쪽 지역 건물들은 건축물군 전체에서 보자면 중앙에 있는 넓은 안마당 둘레로 타원형의 반지 모양을 이루며 세워져 있고, 이 반지 모양의 건물에는 이제는 일부분이 폐허로 남은 기계 제작소들과 목공 작업소 그리고 행정사무실 등이 들어서 있다. 이 건물에 난 아치형 통로들이 내부 광장을 경계 짓고, 넓은 안마당(내부 광장)의 한가운데에는 이 탄광 단지의 설립자인 앙리 드 고르주의 동상이 서 있다. 산업 활동용 건물들이 이루고 있는 횡축의 동쪽 끝부분에는 이곳의 설립자와 더불어 다른 여러 최고관리자의 시신이 안치된 지하묘지가 있다.

    이 탄광 단지(집합건축물) 안에 있는 산업 활동용 건물군을 중심으로 외곽 부분에는 탄광 노동자들의 집단주택들이 에워싸고 있다. 탄광 노동자용 집단주택들은 사다리꼴 모양의 도로를 따라 종심(縱深)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노동자용 집단주택들의 대부분은 산업 활동용 건물들과 동시대에 지어졌고, 일부는 약간 더 나중에 세워졌다. 노동자용 집단주택들은 일렬로 늘어서 있는데, 이 주택들은 처음부터, 도로가 나누어 놓은 대지 위에 건축할 계산으로, 모두가 동일한 옆모습을 하도록 하고, 각 주택건물 뒤쪽으로 정원을 갖춘 형태를 지향하는 유형화된 설계에 따라 건축된 것이다. 남쪽의 노동자용 집단주택들은 산업 활동용 건물군에 직접 연결되어 있는데, 최고관리자가 머무는 관사가 이곳의 남쪽에 부속 건물로 딸려 있다.

    50년 이상 닫혀 있던 이곳 탄광과 그 건물들은 오늘날, 왈롱 지역의 석탄 산업 유적들이 지닌 건축적·사회적 측면을 잘 보여 준다. 이곳은 유럽 대륙에서 진행되었던 산업혁명의 최초 시기(1810~1820)에 일종의 ‘이상도시(la cité idéale)’로서 계획되었던 것이다.

    1991년, 이곳의 산업 활동용 건물들은 현대식 건물을 하나 더 갖게 되었는데, 이 새로운 건물에는 벨기에 내의 프랑스어권 지역공동체에 속한 현대 예술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 부아 뒤 뤼크(Bois-du-Luc)의 탄광과 노동자 집단주거촌
    부아 뒤 뤼크 탄광과 집단주거촌은 산업적·기술적·사회적 역할이 명확히 정해진 다섯 구역으로 분할되어 있으며, 이들 구역 모두는 탄광 산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모두 22개의 개별 건물 또는 집합 건물로 이루어진 이곳 시설의 대부분은 1838년~1909년 사이에 건설된 것이다. 이곳의 탄광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며, 그 시작은 17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쪽 구역의 중심부는 생떼마뉘엘(Saint-Emmanuel) 갱(坑)과 이에 딸린 다른 두 갱, 그리고 신고전주의풍의 부속 건물들(갱내 감독관실, 안전등 보관소, 샤워실 등)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갱에는 아직도 권양탑(捲揚塔, 수직갱에서 쇠밧줄을 당기고 내리는 장비인 권양기가 설치된 탑), 승강기 철장, 1842년에 만들어진 광석추출기 등의 여러 가지 기술적 요소들을 간직하고 있다. 산업 활동 구역인 이곳은 또한 최고책임자의 최초 관사와 이보다 최근에 만들어진 변전소 시설을 포함하고 있다. 탄광이 문을 닫던 때인 1973년, 이 주변에 있던 코크스 제조소, 광석 분류 및 세척소, 기관차 차고와 같은 많은 산업용 건물은 철거되었다.

    이 유산의 서쪽 구역에는 사각형의 널따란 광장이 있으며 한 쪽은 산업 활동 영역으로 열린 U자 모양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일군의 공구 제작소들과 탄광 사무실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오늘날 이곳에는 생태 박물관과 광산 박물관이 하나씩 들어서 있다. 노동자 집단주거촌 쪽으로는 2개의 탑에 기대 서 있는 커다란 금속제 내리닫이 문이 있는데, 이 문은 산업 활동 구역과 탄광의 제작소들을 다른 구역과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이곳 유산의 남쪽 구역과 남동쪽 구역은 생떼마뉘엘 갱의 드넓은 야적지로 이어져 채탄 작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곳 유산에서 노동자 집단주거촌은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에 제안된 북부 중심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노동자 집단주거촌인 카레(Carrés, ‘보스케빌(Bosquetville)’이라고도 부른다)는 십자형으로 대칭을 이루도록 계획된 도로와 외곽순환도로를 따라 1838년에 건설되었다. 이 계획은 네 곳의 건물군을 정해 놓았는데, 이 건물군 중 둘은 사각형 모양으로, 나머지 둘은 사다리꼴 모양으로 되어 있다. 건물들의 옆면은 모두 규칙적이고 동일한 형식이며, 길을 따라 2개의 층을 이루고 있다. 이곳의 도로 전체가 탄광의 지하 갱도 구성을 떠올리도록 한다. 중앙의 교차로는 건물들로 인해 더욱 강조되어 보인다. 교차로 중 하나는 탄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맞이할 카페와 연회장이 있는 곳으로 이어진다. 건물 사이의 빈 공간들은 노동자들의 정원을 만드는 데 쓰였다. 1975년 그리고 1994년에 또 한 번, 카레의 노동자 집단주거촌 전체에 대해 위생환경과 생활편리성을 높이기 위한 개축 공사가 이루어졌다. 19세기 들어, 노동자 집단주거촌의 동북부 쪽으로 아주 긴 도로인 부아-뒤-뤼크 가(街)가 이어지게 되었고, 이곳에 131채의 집들이 추가로 건축되었다. 노동자 집단주거촌은 북쪽에 노동자 가족을 위한 학교를 하나 포함하고 있다.

    부아 뒤 뤼크 유산의 동북부 구역은 핵심적으로 부아 갱(la fosse du Bois)과 그에 딸린 건물들, 생파트리스 야적장(le terril Saint-Patrice), 그리고 카레 집단주거촌과 연계하여 조성된 캥콩스 공원(le parc des Quinconces, 1866)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공원에는 광부들의 수호성자인 생트 바르브(sainte Barbe)를 기리는 성당과 작은 야외음악당 건물(le kiosque)이 하나 있다.

    이 유산의 북부 구역에는 탄광의 주요지로 통하는 도로를 따라 채탄산업에 필요한 일련의 업무용 사회목적용 부속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이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은 1861년에 건설된 양생원(養生院, hospice)이다. 이 시설에 있는 병원과 생트 바르브 성당은 20세기 벽두에 추가된 것들이다. 이 양생원에는, 또한, 최고책임자(사장)의 제2관사, 기술자용 숙소, 연구소, 여관, 노무자 숙소 그리고 학교가 포함되어 있다.

    부아 뒤 뤼크 탄광 유산은 왈롱 지역의 고전주의 시대(17세기~18세기) 동안 이루어진, 이 지역에서의 산업적·도시적 그리고 사회적 발전 양상을 잘 보여 준다. 이 유산은 또한 탄광 역사에 고유한 수많은 유물을 간직하고 있다.

    • 부아 뒤 카지에(le Bois du Cazier)의 탄광
    부아 뒤 카지에 탄광 유산은 원래는 19세기 중반에 시작된 탄광 산업의 소산물이지만, 현재 이곳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19세기 말에 그리고 특히 20세기 전반부에 만들어진 것이다. 유산은 26개의 구분된 요소들로 형성되어 있다. 1956년의 이곳에서 262명의 피해자를 낳았던 화재 사고는 유럽에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탄광 대참사였고, 지금도 이곳 탄광의 역사 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이 유산의 남쪽에 위치한 사각형 모양의 산업 활동 구역은 생-사를르 갱과 포라키 갱(les puits Saint-Charles et Foraky)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출입구는 유산의 북쪽 끝에 위치해 있다. 여기엔 출입문 통제소, 철제 그릴 출입문 그리고 수위실이 있는데, 1956년의 대참사 때 이 앞에서 기다리던 탄광노동자 가족들의 모습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아직도 새겨져 있다. 이 입구를 지나면 곧바로 피해자 추모비가 있는 곳이 보인다.

    동쪽에는 탄광 활동에 관련된 일련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데, 벽돌로 된 거대한 박공벽(지붕을 떠받치는 측면의 삼각형 벽)을 시작으로 창고들과 사무실, 개인물품 보관실(천장에 줄을 걸고 그 줄의 한쪽 끝엔 노동자들의 옷과 물품을 매달아 올린 뒤, 줄의 나머지 끝에 자물쇠를 채워 아래쪽에 고정시켰다. 옷과 물건들이 매달린 이런 특이한 형태 때문에 ‘la salle des pendus (매달린 것들의 방)’이라 불렸다)과 공동 샤워실, 안전등 보관소, 마지막으로는 대형 제작소가 연이어 있다.

    입구부터 시작해서 산업시설의 중심 방향으로 목공제작소와 마구간, 이민자들을 위한 용도로 마련된 간이건물, 기관차 차고가 있다. 여기를 넘어서면, 시야로 2개의 거대한 박공벽이 들어오는데, 이곳에는 탄광용 기계장비들이 들어선 넓은 홀들이 세워져 있다. 1930년대에 건설된 이 홀들은 창고로 쓰이는 곳들과 비슷하게 생겼으며, 산업 활동 공간들을 분리시켜 주고 있다. 중앙의 홀엔 발전기, 송풍기, 공기압축기가 들어서 있다. 이 홀은 커다란 계단을 통해 이어진다. 서쪽 홀은 생사를르 갱의 기계들과 기술부속실, 그리고 광석추출기가 들어서 있다. 갱은 2개의 금속제 권양탑을 갖추고 있는데, 이 탑들은 석탄하치장 건물을 다른 건물들과 구분시킨다.

    산업활동 지역 남쪽으로는 안전 처리된 석탄집하장들과 1956년 대참사가 있었던 포라키 갱의 채굴 설비들이 보인다. 오늘날 이곳은 대참사 추모소, 종각, 이탈리아인 기념비, 갱의 유물들을 위한 전시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예전에 산업용으로 지어졌던 이곳의 건물들은 오늘날에 와서는 산업 일반 특히 유리 산업에 관련된 전시 및 문화 시설로 탈바꿈되었고, 또한 이곳에서는 안전, 노동, 이민 등을 주제로 한 전시 문화 활동들도 이루어지고 있다.

    산업용 건물들 외에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 중에는 동북쪽과 중앙에 있는 2개의 야적지인 제1번과 제2번 야적지가 있다. 이 야적지들은 산업용 건물들과 더불어 이곳에 석탄산업 특유의 경관을 형성한다.

    이곳 유산의 중앙부에는 부아 뒤 카지에의 공동묘지가 포함되어 있다. 남쪽 구역에는 부아 뒤 카지에의 드넓은 제3번 야적지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야적지엔 원래의 바닥에서 약 70m나 더 높은 곳까지 광물을 쌓아올려 조성한 언덕이 있다. 오늘날엔 작은 길을 통해 이 언덕의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정상에는 주변 경관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이 완전히 폐쇄된 것은 1967년의 일이다. 이곳 유산은 주로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이곳에 존재했던 탄광 노동의 기술적·사회적 측면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곳은 특히 탄광 대참사들과 더 넓게는 광부들이 노동 속에 겪어야 했던 고난과 위험을 기억하기 위한 장소이다. 이곳의 탄광 유산은 많은 수의 기술적 산업적 요소를 간직하고 있으며, 이 요소들은 우리에게 20세기 전반기 동안 가능했던 석탄 산업 시스템의 전반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 블레니-민(Blegny-Mine)의 탄광
    이곳은 18세기부터 있던 탄광이다. 그러나 이곳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재건된 역사가 있으며, 그 중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되었던 탄광의 재건이 두드러진다. 유산에는 13개의 요소가 포함된다. 이 중 몇몇은 오래된 것으로, 20세기 중반의 전형적인 탄광 산업의 구조물들 중간에 섞여 있다. 석탄 채굴 활동은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유지되고 있었다. 이곳에 있던 지상의 장비들은 지금도 보전되고 있다. 이곳은 단기간에 탄광 박물관으로 탈바꿈되었는데, 이렇게 탈바꿈된 부분에는 별로 깊지 않은 지하에 위치한 몇몇 갱도까지 포함되어 있으며, 방문객들은 이 갱도들을 직접 관람할 수 있다.

    이곳의 남서부 구역은 마리 갱(le puits Marie)과 금속제 권양탑, 그리고 이곳을 둘러싸고 있는 기술적 용도의 건물들로 조성되어 있다. 이곳의 유적들은 블레니-민의 가장 오래된 요소들로서, 19세기 말로 연대가 거슬러 올라가는 것들이다. 탄광 박물관으로 변신한 이곳은 특히, 1927년 처음 설치되었고 이후 1970년에 두 번째 장비들이 추가된 송풍기들, 안전등 보관소, 네 세대(20세기 초, 1923년, 1950년대, 1970년대)에 걸쳐 있는 공기 압축기들, 1924년 설치된 광석 추출기 등을 보존하고 있으며, 이러한 요소들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이 구역에는 또한 세척용 저수조와 광물을 미세 분쇄한 후 침전시키는 데 사용하는 침전용 저수조를 포함하고 있다.

    남쪽 구역은 제1번 갱과 그 부속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갱은 지상 45m의 시멘트로 된 탑을 통해 위로 솟아 있고, 이곳에는 광석추출기와 2개의 승강기 철장, 통제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장비들은 지금도 작동할 수 있는 상태이고, 지하 갱도를 방문하는 과정을 포함한 박물관 및 관광 프로그램에서 사용되고 있다.

    제1번 갱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은 일군의 연속된 시설들로서, 여기에는 석탄 하치장, 대장간과 기계수리 작업소들이 포함된다. 이곳은 또한 1946년 만들어진 광물 분류세척용 기계-건물 설비를 포함하고 있다. 이 장비이자 건물인 기계-건물 설비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것으로, 이런 유형의 설비로서는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이곳에는 또한 서로 분리된 여러 곳의 기술적 작업 용도의 공간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세탁소, 수작업 분류소, 목공 작업소, 목재 적재소 등이 그것이다.

    유산의 동쪽 구역은, 탄광 진입로를 따라올 때 도달하게 되는 탄광 입구부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는 또한 탄광 업무를 관장하는 사무실들과 1924년에 설치된 행정 업무 지원소가 있다. 유산의 중앙과 북쪽 구역은 이중으로 된 석탄 야적장과 그곳에서 광석 찌꺼기를 걸러서 밖으로 배출시키는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2개의 석탄더미는 각각 원래의 지표로부터 37m와 55m 위로 솟아 있다. 블레니-민은 20세기를 관통하며 서유럽의 탄광산업에서 이루어진 산업적 그리고 광산 기술적 측면의 발전 양상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곳은 이 지역에서 가장 최근까지 활동했던 석탄 채굴 집하장 중의 하나이다. 블레니-민 유산은 이곳에 갖추어져 있었던 탄광 기술적 요소들을 거의 완전하게 보존하고 있으며, 이런 요소들 중에는 특히, 이곳이 아주 짧은 기간 안에 탄광 박물관으로 변신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보존이 가능했던, 원래 탄광의 일부 갱도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곳에 있는 이러한 요소들 전체는 다양한 광산 기술적인 요소들에 대하여 탄광의 지상 시설 뿐 아니라 지하 시설과 관련하여서도 풍부한 설명력과 의미를 지닌 하나의 통합 자원을 형성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 [Major Mining Sites of Wallonia] (유네스코 세계유산, 세계유산센터(영/불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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