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지지의 삼합과 육합(7)

eorks 2021. 12. 26. 00:11

풍수지리(風水地理)

지지의 삼합과 육합(7)
★ 밥을 하는 데에도 道는 있다. (作食之道)
처음에 양산의 통도사로 입산을 했는데, 극락호국선원이라고 하는 특별수련원에 소속이 되었다. 당시의 조실(祖室)스님이셨던 경봉(鏡峰) 노사님 아래로 자신의 본래 면목을 찾아보려는 운수납자(雲水衲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던 곳이다. 그곳에서 일단 노사님을 친견했다.
그래 집이 어데고?
예, 경북 청도입니다.
그런데 왜 중이 될라카노?
도를 닦으려고 그럽니다.
그래? 도를 어떻게 닦는기고?
.........
그래 인연이 있구나, 공양주를 좀 하거라.
당시가 열 일곱 살이었다. 사실은 도를 닦으려고 들어간 것이 아니라 김삿갓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닐 목적으로 입산을 한 것인데, 도인 스님이신 분 앞에서 그런 말을 하면 그냥 돌아가라고 하실런지도 몰라서 얼렁뚱땅 둘러붙인 것이다. 그런데 도를 어떻게 닦느냐는 물음에 말문이 막혀서 더 이상 답변을 못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그때 당시에 아마도 이미 인간 박주현이의 공부역량을 파악해 버리신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도를 통할 그릇은 틀렸고, 종구락 정도가 되어서 마음이 아픈 사람들과 함께 한숨이나 쉬어줄 정도 로 파악을 하셨을런지도 모르겠다. 주로 말 한마디로 모든것을 알아버리는데 이골이 나있던 노사님이셨으니까 능히 짐작을 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인연이 있다고 하시는 것은 아니었다. 그 곳에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출가에 뜻을 두고 왔었지만 인연이 없다면서 가라고 한 사람도 상당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던 쫒겨가지만 않으면 중이 될 것으로 생각한 상황에서 공양주라고 하는 중책이 떨어졌으니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그날로 전공은 밥을 하는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어려서 어머님이 자주 출타를 하는 이유로 해서 간단하게나마 밥이되는 원리는 알고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그것과는 전혀 상황이 다른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그냥 누구나처럼 쌀을 넣고 물을 부은 다음에 불을 때다가 끓으면 불 빼고 뜸들이면 밥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것도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밥을 조금 할적에는 통하는 이야기인데, 이미 한끼의 쌀이 50kg에서 100kg를 넘을 때에는 어림도 없는 상식이었다. 그런데 제대로 된 밥을 하기 위해서 온갖 연구를다 했다. 벗님이 낭월이의 강의록을 읽어보면서 그래도 약간은 치밀하다는 생각을 하셨다면 당시로써도 역시 그랬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실제로 온 신경은 오로지 밥다운 밥을 해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7~8개월간 연구와 실험을 거듭하면서 서서히 뭔가 감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무엇을 하던지간에, 아무리 빨라도 1년은 투자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발생하게 된다. 이제부터 밥도사(?)가 어떻게 한 끼의 밥을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참이다. 실제상황이라고 상상을 하고 함께 느껴보시면서 잠시 산사(山寺)의 한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보시기 바란다.

우선 맨처음 하는 일은 쌀을 씻어서 조랭이로 돌을 골라내는 작업이다. 이일을 하는데에도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조심해서 조리질을 하지 않으면 밥에 돌이 들어가게 된다. 요즘은 석발기라고 하는 것이 있어서 쌀을 일지않고 그냥 밥을 해도 되지만, 당시에는 조리질을 하고나면 한 주먹씩의 돌이 나오는 때도 있었다. 그런때에는 다시 일어야 한다.

이렇게 쌀을 씻어서 돌이 들어가지 않도록 깨끗하게 일어서 소쿠리에 담아 놓으면 일차적인 작업이 끝난다. 그리고 다음에는 나무를 준비하는데, 당시에는 아름드리 거목의 죽은 장작을 사용했었다. 그래서 나무하는 불목 처사
(절에서 땔 나무만 전담하는 남자를 그렇게 부른다. 스님은 아니고 월급을 받거나, 무보수로 수양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와 신경전이 벌이진다. 물론 언제나 누룽지의 위력을 발휘하지만, 가끔은 직접 장작을 구하기 위해서 도끼질을 해야 할 경우도 있다. 여기서부터 전쟁은 시작된다고 봐도 되겠다. 어쨌던 내가 맘에 드는 나무를 마련하지 않으면 왠지 불안해서 밥을 시작할 마음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나무를 마련했으면 준비완료이다.

다음은 솥에다가 물을 붙고 장작을 차곡차곡 쌓게 된다. 마치 성냥개피를 가지고 우물정자로 쌓는 것처럼 공기가 적당량 잘 들어가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높은 화력을 발생하도록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이렇게 장작의 속성을 이해하다 보니까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자가 가마에서 불과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솔가루를 맨 아래에 놓고서 불을 당기면 서서히 피어오르면서 불이 번진다. 아궁 이에 들어가는 나무의 양은 보통 장정의 짐으로 한짐이 더 들어간다. 그렇게 쌓을 적에는 불꽃이 어떻게 해서 골고루 퍼질 것인가도 고려가 되어야 한다.

불이 너무 안쪽으로 들어가면 뒤쪽의 밥이 타게되고, 또 앞쪽으로 당기면 이번에는 뒤쪽 부분의 밥은 설익고 앞쪽은 타게된다. 이것을 조절하는데에는 그 시간의 바람 방향도 참고가 된다. 바람이 아궁이 쪽으로 역류하면 약간 안쪽으로 나무를 넣어야 하고, 아궁이에서 굴뚝 쪽으로 불때에는 반대로 약간 앞쪽에다가 장작의 탑을 쌓는 것이다. 타는 도중에 약간 조정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불이 붙으면서 솥바닥에 골고루 퍼지면 그 기분은 참으로 삼삼한 것이다.

그렇게 피어오르는 장작불을 보면서 잠시 황홀경을 즐긴다. 이때의 그 황금색으로 이글거리는 불꽃은 그대로 연화세계의 금련(金蓮)으로 착각이 들곤 했다. 그렇게 불에 취해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면 솥 안에서 물이 끓어오른다. 불이 거의 절정으로 피어 오를 즈음이 된다. 이때는 물이 골고루 끓는지를 확인하면서 불의 방향을 조절하는데, 처음에는 불을 많이 건드리게 되지만 나중에는 그냥 자동으로 뚜껑을 열면 골고루 끓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된다. 이 불의 절정과 물의 끓음이 일치하지 않으면 올바른 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이 정도가 되면 불에 대해서는 도가 트인(?) 셈이다. 완전히 끓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씻어서 건져놓은 쌀을 들어 붓는다. 이 작업을 하는 방법은 전문가에 따라서 쌀을 흩뿌리는 방식을 취하는 경우도 있는데, 낭월이는 그 방식이 맘에 들지 않았다. 먼저 들어간 쌀과 나중에 들어간 쌀이 받는 열량이 다르다는 것이 못내 찜찜해서였다.

그렇게 쌀을 털어 넣고서는 커다란 나무 주걱으로 슬슬 젓기 시작한다. 이제는 물과 싸울 시간이 된 것이다. 빙빙 돌려가면서 젓는 이유는 아래는 빨리 뜨거워지고 위쪽은 늦게 뜨거워지는 헨디캡을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물과 불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느껴질때는 수화기제(水火旣濟)의 소식이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십여분 정도 저으면 죽을 끌일때처럼 보글보글 하는 낌새가 나타난다. 이때에도 그 공기방울이 골고루 퍼지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때가 가장 중요하다. 얼른 뚜껑을 덮고서 이제부터는 감으로 기술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략 한 5분 정도 계속 지켜보고 있으면 김이 한번 푸썩 나게된다. 그러면서 쌔액- 하는 소리가 나려고 한다. 평소에 동작이 느린 낭월이도 이때에는 매우 민첩해진다. 여기에서 초를 다퉈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궁이의 불타는 시간이 조금만 더 길어지면 밥은 타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쇠스랑으로 장작을 마구 긁어 내야한다. 물론 타고 남은 숫덩이도 남기지 않는다. 모조리 긁어 내버리고 나면 이제는 작업 끝이다. 그러면 솥 안에서는 자체의 열로 인해서 밥이 뜸이 든다. 일단 이렇게 되면 안도의 숨을 쉴 수가 있는 것이다.

만약에 여기에서 불이 조금 지나쳤다 싶으면 아궁이의 불을 끌어낸 자리에다가 왕소금을 한주먹 갖다가 뿌린다. 그러면 소금이 터지느라고 따다닥 거리는데 그 소리도 또한 일품이다. 소금을 뿌리면 열기가 빨리 식는다는 것을 선배로부터 배운 것이었는데, 여기에서도 水(소금)剋火(열기)의 소식이 숨쉬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렇다. 당시에야 오행에 대한 공부는 없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렇게 20분 정도 뜸들이는 시간이 경과하고 나면 온 절도량이 구수한 향기로 진동을 하게 된다. 그 냄새는 그때 이후로는 맡아보지 못한 냄새이다.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구수하면서도 향기로운 쌀 익는 냄새가 진동을 하면 참선(參禪)
(자기가 끌고 다니는 몸뚱아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찾기 위해서 앉아서 버티고 있는 것을 참선한다고 한다.)에 열중하던 스님들이 슬슬 시장기를 느끼기 시작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바로 이 시간의 기쁨을 위해서 공양주(供養主)(음식을 담당하는 사람의 이름인데, 특히 밥을 하는 사람에게 붙여주는 명칭이다.)는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것이다. 적어도 낭월이는 그랬다.

밥을 퍼야 할 시간이다. 몇 개의 양푼이를 준비한 후에 솥 뚜껑을 연다. 그때 마지막으로 한바탕의 김이 공양간에 퍼진다. 이때의 기분은 완전히 황홀한 상태라고 해야 하겠다. 그 희열감은 완벽한 작품이 되었다는 안도감과 섞여서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주걱을 밥 솥에 한번 지그시 찔러본다. 그러면 그 밥의 상태가 즉시로 감이 온다. 마치 노련한 한의사가 환자의 손목을 한번 지그시 만져보는 것 만으로 모든 상황 을 짐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 의사는 이미 손목을 만져보기도 전에 대충의 상황을 짐작하게 된다. 손목을 만져보는 것은 최종적으로 확인을 하는 것 뿐이다. 그 주걱을 찔러보는 순간 그러한 생각을 했었다.

그 후에 밥을 퍼다가 스님들이 공양드실 큰방 앞에 대령하는 것은 기술이라고 할것도 없으므로 생략을 하겠거니와, 이렇게 되면 그날은 성공을 한 것이다. 만약에 실패작을 했을 경우에는 물론 기분이 도무지 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두되도 아니고, 한가마나 되는 쌀을 가지고서 실패를 하면 참으로 의욕이 나지않는 것이다. 물론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기도 많이 한다. 그렇다고 해서 밥을 굶길 수는 없으므로 응급처지를 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한번 처리하는 기술을 배워보시기 바란다. 써먹을 기회는 없겠지만 한번 알아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먼저 망상을 피우면서 밥을 하면 밥이 잘될 턱이 없다. 쌀이 햅쌀인지, 묵은 쌀인지, 통일쌀인지, 일반미인지를 냉정하게 확인해야 하고, 또 통통하게 불은 쌀인지, 방금 씻은 쌀인지도 구분을 해야 한다. 이들의 경우에는 각기 물을 먹는 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겨울의 쌀과 여름의 쌀도 다르다 그리고 방아를 찧은지가 방금인지 오래 되어는지도 고려를 해야 한다. 이것도 쌀의 품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찹쌀을 섞을 경우와 콩을 섞을 경우에 따라서도 물의 양은 달라진다. 이러한 것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데, 망상을 하게되면 정확해질 확율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어쨌던 마음이 항상 여여(如如)
(그 마음이 한결같아서 누가 욕을 하던, 칭찬을 하던 움직이지 않는 도인의 경지를 말한다.)할 수는 없고, 가끔은 밥이 된밥으로 나올 수도 있다. 이렇게 된밥이라는 판단도 신속하게 해야 한다. 늦으면 역시 기회를 놓치고 만다. 일단 생쌀이 나올 가능성이 있는지를 파악해야 하는데, 생쌀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이 되면 잽싸게 뚜껑을 열고 뜨거운 물을 골고루 뿌린다. 그리고서 뚜껑을 닫고서 불을 2~3분 정도 지체시킨다. 물론 바닥은 타게 된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김이 한소꿈 푸썩하고 나면 성공이다. 약간의 탄냄새는 물론 2차적인 작업을 통해서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에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

불을 빼고서 비상시에 사용하는 광목천을 물에 적신다. 다시 뚜껑을 열고 밥 위에 천을 편 다음에 방금 아궁이에서 퍼낸 숯불 덩어리를 솥 안으로 집어 넣는다. 그리고 뚜껑을 덮어버린다. 그러면 수증기로 인해서 숱불은 이내 질식을 하게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해서 밥 속에 배어있던 불냄새를 흡수 해버린다. 이것은 정수기에 활성탄을 넣어서 냄새를 제거하는 것과 완전히 동일한 원리이다.

선방 스님들이 밥타는 냄새를 맡고서 일단 실망을 하게 되는데, 막상 밥을 먹어보니까 불냄새가 나지 않으면 의아해한다. 이해가 되지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양주 출신 스님들은 안다. 공양주가 무슨 조치를 취했는지를... 참으로 경험은 무서운 안목 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공양을 다 하고 나서 공양간을 지나가면서 한마디 한다. 행자님, 오늘 숯을 퍼담느라고 바쁘셨더구먼. 하하하~!

이렇게 말씀을 하면 그냥 마주 보면서 빙긋이 웃는다. 이것이야 말로 아는 사람만이 아는 것이고, 그야말로 목격도존(目擊道存)
(목격도존이란, 서로 눈빛이 부딧치는 곳에서 상대방의 도가 얼마나 되는 지를 판단해버리는 경지를 말한다.)이 되는 것이다. 그냥 보면 아는 그런것 말이다. 공양주를 해본 사람끼리 통하는 그 감정은 공양주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된밥이나 설익은 밥은 이렇게라도 응급처치가 가능한데 이미 진밥은 뚜껑을 열고 물을 퍼내봐도 퍼낼 물은 없기 때문에, 대책이 없다. 이러한 지경이 되면 공자님의 과유불급(過由不及)이라는 말을 절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넘치는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말씀이 어쩌면 그렇게도 꽉 끼게 들어맞는지 참으로 성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상이 밥을 하는 것에서 느끼는 낭월이의 소감이다. 그렇게 구수한 냄새를 맡으면서 희열에 젖어들던 기분은 공양주를 인계하면서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 후로 극락선원에 들렀더니 마침 부산의 신도님들이 오셨다가는 낭월이를 발견하고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씀이 어머, 밥 잘하는 스님 오셨네~!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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