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은 空虛스님에게 너무도 오랫동안 신세를 지기가 미안해서 이제 그만 佛影庵을 떠날 생각이었으나 공허스님이 쉽게 보내 주지 않을 것 같아 海金剛을 며칠간 다녀오겠노라고 넌지시 운을 떼 보았다.
공허스님도 김삿갓의 그런 심정을 진작부터 눈치 채고 있었던지 「불영암 은 언제든지 맘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니 편히 다녀오도록 하시오」하고 순순히 응낙을 한다.
김삿갓은 작별인사를 하면서도 불영암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결심이었 다.
공허스님도 그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지 합장배례를 하며 문득 다 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읊는다.
쓸쓸한 바람이여 산수가 차갑도다. 방랑객 떠남이여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 風蕭蕭兮山水寒(풍소소혜산수한) 浪客去兮不復還(랑객거혜불복환)
공허스님은 別離를 이미 각오한 모양이었고, 김삿갓은 그 시를 듣자 가슴이 뭉클해 와서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화답시 를 읊었다.
고요한 암자에 이 내 몸 의탁하여 기쁜 마음 즐거운 일 모두 님께 맡겼더니 외로운 봉우리에 안개 개고 초승달이 떠올라 늙은 나무 꽃이 필 때 늦봄이 오네. 靜處門扉着我身(정처문비착아신) 賞心喜事任淸眞(상심희사임청진) 孤峰罷霧擎初月(고봉파무경초월) 老樹開花作晩春(노수개화작만춘)
친구 만나 술을 드니 흥취가 무량했고 명산에서 시를 읊어 마냥 신기로웠소. 선경이 따로 있나 다른 데서 찾지 마오. 한가롭게 사는 분네 그가 바로 신선이라오. 酒逢好友惟無量(주봉호우유무량) 詩到名山輒有神(시도명산첩유신) 靈境不須求外物(영경불수구외물) 仙人自是小閑人(선인자시소한인)
공허스님은 두 손을 모아 합장배례하며 「萬有無常, 會者定離, 나무관세음 보살」할 뿐이었다. 김삿갓은 가슴이 메어져 와서 아무 말도 못했다. 그것이 그들의 영원한 이별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