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이야기

81. 「창호」

eorks 2024. 12. 1. 07:28

81. 「창호」


    범어스님의 지극한 간호로 김삿갓의 발목은 많이 나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범어스님은 문종이와 풀을 가지고 와서 뚫어진 창구멍을
    말끔히 발라놓고는 창을 활짝 열고 밖을 바라보았다.

    밖에는 바람이 몹시 불어 나무 가지가 흔들리는데 때마침 산머리에는 달이
    솟아오르고 골짜기에서는 물소리마저 요란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범어는 즉흥시를 한 수 지어 김삿갓에게 내밀며 시평을 청
    했다.


              바람이 부니 나무 가지가 흔들리고
              달이 솟아오르니 물결이 높아지네.

              風動樹枝動(풍동수지동)
              月昇水波昇(월승수파승)


    범어스님은 원래 시에는 능하지 못한 편이었다. 이 시 또한 아무리 보아도
    좋은 시라고 할 수는 없었다.

    시상이 너무 단조로운데다가 표현조차 반복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반복적
    표현이 덮어놓고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반복의 효과는 고사하고 우선 시
    혼이 결여되어 있지 않은가.

    그러나 김삿갓은 남의 시에 손을 대고 싶지 않아 얼른 이렇게 말머리를 돌
    렸다.

    “스님께서 창구멍을 막아 주셔서 바람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게 되었습니
    다.

    그러나 창구멍이 막혀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는 대신에 전에는 달빛이 비치
    지 못하던 곳에 달빛이 새로 비칠 곳이 생겼으니 저는 거기에 대한 시를 한
    구절 읊어보겠습니다.” 하고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바람은 다니던 옛길을 잃었고
              달은 새로 비칠 곳을 얻었도다.

              風失古行路(풍실고행로)
              月得新照處(월득신조처)


    범어의 시가 단순한 나열식이라면 김삿갓의 시는 변화하는 현상을 생동적
    으로 묘사한 시였다.

    범어는 김삿갓의 시를 읽어보고 또다시 감탄을 마지않는다.

    같은 사람인데 같은 현상을 보고 떠오르는 시상과 그에 대한 묘사가 이렇게
    도 다를 수가 있는가.

    “선생의 착안에는 오직 경탄이 있을 뿐이외다. 창구멍 하나 막은 데서 일어
    나는 변화에 대하여 선생의 시상은 어쩌면 그렇게도 기상천외 하십니까."

    범어는 김삿갓의 천재적인 시재를 한껏 찬양하면서 속으로 자신의 무딘 시
    상을 나물라고 있었다.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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