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스님은 김삿갓이 누어있는 기회에 시를 배우려고 틈이 날 때마다 가르 쳐 달라고 졸라 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종이 한 장을 들어 보이며 지난번에는 창구멍을 막는 시 를 지으셨으니 이번에는 종이에 대한 시를 한 수 지어 달라고 했다.
김삿갓은 범어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 다음과 같이 지어 주었다.
넓적한 등전지는 본래 나무로 만든 물건 펼쳐 놓고 글을 쓰면 글씨가 가볍도다. 천권 책을 모두 읽고 차곡차곡 쌓으면 그 높이 하늘 아래 만리로 뻗으리라. 闊面藤霜本質情(활면등상본질정) 鋪來當硯點毫輕(포래당연점호경) 耽看蒼錄千編積(탐간창록천편적) 誕此靑天萬里橫(탄차청천만리횡)
화려한 족자에 쓰인 명성 모두가 후진이요 문방 족속 가운데 종이가 홀로 선생이라. 집집마다 창을 발라 방안을 밝게 하고 종이로 된 책으로 사람들의 길을 깨우치오. 華軸僉名皆後進(화축첨명개후진) 文房列座獨先生(문방열좌독선생) 家家資爾糊蒼白(가가자이호창백) 永使圖書照眼明(영사도서조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