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이 妙香山(묘향산)을 찾아 寧邊(영변) 고을에 왔지만 먼저 찾은 곳은 藥山(약산)이었다. 영변의 鎭山(진산)인 약산은 참으로 명산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의 神市開天(신시개천) 자리가 바로 이곳이라고도 하고,
단군이 탄생했다는 단군굴이 있다고도 전하는 산이다.
옛 기록에 "준엄한 멧부리들이 사방으로 둘러 서 있는 모양이 마치 무쇠 솥 과 같다."하여
藥山城(약산성)을 鐵瓮城(철옹성)이라 한 데서 難攻不落(난공불락)의 城砦 (성채)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고 전한다.
약산성을 두루 살펴본 김삿갓은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삼대 명 산의 하나라는 묘향산으로 향했다.
묘향산하면 西山大師 休靜(서산대사휴정)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평안도 安州(안주)에서 태어나 묘향산 속에서 자랐고, 修道(수도)와 得 道(득도)를 모두 묘향산에서 했다.
그러기에 세상 사람들은 그를 서산대사라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대사는 일 직이 묘향산을 이렇게 평한 일이 있었다.
"금강산은 배어나되 장엄하지 못하고(秀而不莊), 한라산은 장엄하되 배어 나지 못하다(莊而不秀),
그러나 묘향산은 배어내게 아름다우면서도 웅장하다(秀而亦莊). 영변에서 묘향산을 가려면 첩첩태산을 130리나 걸어 넘어야 했다.
길은 가도 가도 험준하였다. 산속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시 걸어 넘으려니 숨이 턱에 차오르지만 그래도 가슴은 설렜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절로 나오는 즉흥시 한 수를 읊었다.
내 평생소원이 무엇이었던고. 묘향산을 한 번 구경하는 것이었노라 산은 첩첩, 모든 멧부리가 한없이 높고 가파르니 길은 층층, 열 거름에 아홉 번은 쉬어야 하네. 平生所願者何求(평생소원자하구) 每擬妙香山一遊(매의묘향산일유) 山疊疊千峰萬仞(산첩첩천봉만인) 路層層十步九休(로층층십보구휴)
묘향산은 산세가 험준하고 가는 곳마다 사찰이 많아 어느 골짜기나 비경 아 닌 곳이 없었다.
그 규모가 웅대하기로 금강산의 長安寺(장안사)나 楡岾寺(유점사)가 유가 아니었다는 普賢 寺를 찾아 가다가 산봉우리에 올라 풍진 세상을 굽어보면 서,
일직이 서산대사가 임진왜란을 끝내고 돌아오다가 읊었다는 禪詩 한 수를 머리에 떠올렸다.
만국의 도성은 개미집이요 천 가문 호걸은 하루살이로다 달빛 밝은 창가에 허심히 누었으니 무한한 솔바람 끊임없이 불어오네. 萬國都城如蟻垤(만국도성여의질) 千家豪傑若醯鷄(천가호걸약혜계) 一密明月淸虛枕(일밀명월청허침) 無限松風韻不齊(무한송풍운부제)
禪味(선미)가 철철 넘쳐흐르는 道通(도통)한 시였다. 서산대사가 전쟁을 끝 내고 돌아온 것이 69세, 그 후 8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곧 圓寂庵(원 적암)에 머물렀다.
그의 임종은 참으로 선사다웠다.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거울을 드려다 보다가 빙그레 웃으며 한마디 했다.
팔십 년 전에는 네가 나였는데 팔십 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 八十年前渠是我(팔십년전거시아) 八十年後我是渠(팔십년후아시거)
그러고 나서 운명하기 직전에 최후로 다음과 같은 臨終偈(임종게)를 읊었다.
삶이란 한 조각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구름이 스러짐이다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이와 같도다.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대사는 마지막 임종게를 읊고 나서 많은 제자들이 지켜보는 앞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조용히 잠들듯이 세상을 하직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