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이야기

101. 내 눈이 어느새 이렇게

eorks 2024. 12. 21. 08:38

101. 내 눈이 어느새 이렇게


    김삿갓이 묘향산을 떠나 熙川(희천)을 지나서 江界(강계)로 들어섰을 때에는
    아직 입동도 안 되었는데 아침저녁으로 얼음이 얼기 시작하였다.

    북쪽지방은 계절이 유난히 빠르다.

    “오동 잎 하나 떨어지면 모두 가을임을 안다.(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오동일
    엽낙천하진지추
)”고 했으니 이제 그도 겨울 준비를 해야 할 시기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삿갓이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을 형편이 아니니 헤진 옷이라도 기
    워 입으려고 바늘귀를 꿰려 했으나 눈이 가물가물 좀처럼 꿰여지지 않는 다.

    ‘내 눈이 어느새 이렇게 어두워졌는가.’ 생각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
    나 그뿐이랴. 글자도 잘 안보이고, 이를 잡으려고 해도 전 같지가 않다.


              볕을 향해 실을 궤도 바늘귀를 모르겠고
              등불 돋우고 책을 펴도 魯자와 魚자를 혼동하네.
              봄도 아닌 마른나무에 꽃이 핀 듯 보이고
              갠 날도 하늘에서 비가 오는 것 같구나.

              向日貫針絲變索(향일관침사변색)
              挑燈對案魯似魚(도등대안노사어)
              春日白樹花無數(춘일백수화무수)
              霽後靑天雨有餘(제후청천우유여)


              길에서 인사하는 소년 누구인지 모르겠고
              옷을 뒤져 보아도 움직여야 이 인 줄 아네.
              가련타 이 늙은이 낚싯대 드리워도
              물결이 보이지 않아 미끼만 빼앗기리.

              揖路少年云誰某(읍로소년운수모)
              探衣老寔知渠蝨(탐의로식지거슬)
              可憐南浦垂竿處(가련남포수간처)
              不見風波浪費蛆(불견풍파랑비저) 

    나의 인생이 어느새 그렇게도 늙어 버렸는가 싶고, 생각할수록 처량한 기분
    이 들어 ‘眼昏(안혼)’이라는 제목으로 읊은 즉흥시였다.


......^^백두대간^^........白頭大幹

'김삿갓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3. 강계미인 추월이  (4) 2024.12.23
102. 백 발 한  (2) 2024.12.22
100. 묘 향 산  (0) 2024.12.20
99. 부자도 가난뱅이도  (6) 2024.12.19
98. 죽향과의 이별  (0) 2024.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