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이 묘향산을 떠나 熙川(희천)을 지나서 江界(강계)로 들어섰을 때에는 아직 입동도 안 되었는데 아침저녁으로 얼음이 얼기 시작하였다.
북쪽지방은 계절이 유난히 빠르다.
“오동 잎 하나 떨어지면 모두 가을임을 안다.(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오동일 엽낙천하진지추)”고 했으니 이제 그도 겨울 준비를 해야 할 시기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삿갓이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을 형편이 아니니 헤진 옷이라도 기 워 입으려고 바늘귀를 꿰려 했으나 눈이 가물가물 좀처럼 꿰여지지 않는 다.
‘내 눈이 어느새 이렇게 어두워졌는가.’ 생각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 나 그뿐이랴. 글자도 잘 안보이고, 이를 잡으려고 해도 전 같지가 않다.
볕을 향해 실을 궤도 바늘귀를 모르겠고 등불 돋우고 책을 펴도 魯자와 魚자를 혼동하네. 봄도 아닌 마른나무에 꽃이 핀 듯 보이고 갠 날도 하늘에서 비가 오는 것 같구나. 向日貫針絲變索(향일관침사변색) 挑燈對案魯似魚(도등대안노사어) 春日白樹花無數(춘일백수화무수) 霽後靑天雨有餘(제후청천우유여)
길에서 인사하는 소년 누구인지 모르겠고 옷을 뒤져 보아도 움직여야 이 인 줄 아네. 가련타 이 늙은이 낚싯대 드리워도 물결이 보이지 않아 미끼만 빼앗기리. 揖路少年云誰某(읍로소년운수모) 探衣老寔知渠蝨(탐의로식지거슬) 可憐南浦垂竿處(가련남포수간처) 不見風波浪費蛆(불견풍파랑비저)
나의 인생이 어느새 그렇게도 늙어 버렸는가 싶고, 생각할수록 처량한 기분 이 들어 ‘眼昏(안혼)’이라는 제목으로 읊은 즉흥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