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
제1부 선비들의 멋, 그것이 유머였다. |
맹씨 성을 가진 한 재상이 밤마다 부인이 잠든 틈을 타서 살
그머니 여종의 방으로 가 즐겼다.
이것을 알고 있던 부인이, 하루는 거짓으로 자는 체하며 코를
골고 있으니 남편은 부인이 잠든 줄 알고 살짝 문을 열고 빠져나
갔다. 부인이 곧 일어나 뒤를 밟아 따라가니, 남편은 여종이 자
고 있는 방문을 열고 가만히 들어가는 것이었다.
부인이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재상은 자고 있는 여종의 이불
속에 들어가 몸을 더듬고 만졌다. 이 때 곤하게 자던 잠을 깬 여
종이 짜증스러운 듯이 말했다.
"대감은 절병 떡같이 하얗고 아름다운 부인을 두고서 이 못
생기고 누추한 종을 왜 찿아와서 이렇게 귀찮게 하십니까?"
이 불평에 재상은 웃으면서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 너를 절병덕 먹을 때에 곁들이는 갓김치로 생각하고 왔
단다. 귀찮게 여기지 말고 맛있게 먹게 해줘."
뒤따라갔던 부인은 이 말에 아음이 상해 방문을 열고 뛰어들
어가고 싶었지만, 꾹 참고 계속 방문 앞에 서서 들여다보고 있었
다. 곧 일이 시작되는데 남편은 자기에게서 하던 것보다 훨씬 더
정감이 고조되는 것 같았고, 여종 또한 나이가 조금 들어 아주
신맛 단맛을 다 느끼며 즐기는 것 같았다. 부인은 화가 났지만
그대로 방으로 돌아와 자는 체했다.
일을 끝낸 재상은 여종 방에서 나와 마루 앞 섬돌 위에 않아
잠시 고조되었던 감정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이 때 차가운 돌 기
운이 아랫배로 스미면서 설사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재상은
곧장 부인이 자는 안방으로 뛰어들어오며 배가 아프다고 소리쳤
다. 그러나 부인은 여전히 모른 체하고 코를 골았다.
재상은 변소에 가서 설사를 하고 한참 않아 있다가 방으로 돌
아오자, 계속 자는 체하며 살피고 있던 부인이 남편을 향해 퉁명
스럽게 내뱉었다.
"대감은 늙어 기운이 쇠약해 그렇게 자주 설사가 나고 복통
이 심한데, 왜 그 맛도 없는 갓김치를 매일 밤 드십니까?"
이 말을 들은 대감은 부인이 모르는 줄 알았는데 다 알고 있
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면서,
"부인, 부인은 정말 영리한 사람이구려, 그 갓김치를 어떻게
알고 있네그려,"
하고는 민망한 듯 크게 웃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한번은 비오는 날 밤이었다. 부인이 잠든 것
같아서 재상은 또 소리 없이 살그머니 방을 빠져나왔다. 여종 방
으로 가려는데 비가 심하게 내리니, 재상은 곧 부엌으로 들어가
바가지를 들고 나와 쓰고서 여종의 방으로 갔다.
남편이 방을 빠져나갈 때부터 뒤를 밟던 부인이 이런 모습을
보고는 역시 남편이 들어간 여종의 방문 앞에 서서 가만히 방안
의 소리를 엿들었다. 그랬더니 여전히 남편은 왕성하게 여종과
잠자리를 하는데, 능숙한 여종의 조종이 재상의 마음을 흡족하
게 해주는 것 같아 슬그머니 질투가 났다.
"내 이 영감을 한번 크게 혼을 내주어야지."
부인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안방으로 돌아와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다가, 남편이 들어오는 기척이 나자 다
듬잇방망이를 들고 안방 문 안쪽 벽에 기대어 숨어 있었다. 그리
고 재상이 기침을 하며 방문을 여는 순간, 들고 있던 방망이로
재상이 머리 위에 쓰고 있는 바가지를 내려쳤다.
머리 위에 바가지가 깨지면서 큰소리가 나니, 재상은 깜짝 놀
라 문밖에 털썩 주저않아 한동안 멍하니 정신을 잃고 있었다. 한
참 만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살펴보니 주위에 깨진 바가지 조
각이 널려 있기에, 재상은 이렇게 짐작 했다.
`옳거니, 오늘도 부인이 자지 않고 내 뒤를 밟아 따라왔었구
나, 허면 이 바가지 조각은? 그렇지, 부인이 바가지를 무엇으
로 내려친 게 분명하지....,'
이와 같이 추리한 재상은 털털 털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이 모습은 몰래 살피고 있던 부인은 웃음이 나왔지만 억지로 참
으며 모르는 체하고 누워서 자는 것처럼 이불을 쓰고 있었다. 재
상은 누워 있는 부인 곁에 않아 부인을 흔들어 일어나라고 하면
서 말했다.
"부인, 우리 집이 곧 부자가 될 것 같아요,"
"아니 대감, 자다 말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슨 좋은
꿈이라도 꾸셨습니까? 부자가 된다면 참 좋은 일이지요."
재상은 천천히 수염을 한 번 쓰다듬고는,
옛날부터 전해 오는 말에 천둥이 치면서 떨어지는 벼락도
암놈 벼락과 숫놈 벼락이 있다고 하는데, `암벼락(雌霹靂)'을 맞
으면 부자가 된다는 말이 있어요. 내가 지금 변소에 다녀오다가
방문 앞에서 바로 `암벼락'을 맞았거든,"
라고 말하면서 부인을 쳐다보고 웃었다. 재상은 여자인 부인이
벼락치듯 자신을 내리쳤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대감, 변소에 갔다 오신 것이 아니고 또 그 갓김치를 잡수신
게지요,"
노부부는 마주보며 한바탕 크게 웃었다. 곧 재상은 젖은 옷을
벗어던지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부인을 끌어안았다.<조선 초기>
[옛 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 / 김현룡 지음]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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