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後漢)에서는 제4대 화제(和帝) 이후로 역대 황제가 모두 어린 나이 에 즉위했다. 그래서 황태후가 섭정이 되고, 그 일족인 외척이 권력을 손아귀에 넣었 다. 그 외척에 대항하여 이를 타도하는 역할을 주로 한 것이 환관의 세력 이었다. 그리하여 후한 말기에는 외척과 환관이 번갈아 권력을 장악하고 사복을 채우는 썩어 빠진 정치 상황 이 일반이었다. 외척이나 환관에 의한 정치의 사물화(私物化)에 강한 불만을 품은 것은 지방의 호족이나 양반 출신의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은 중앙과 지방의 강직한 관료를 중심으로 당파를 결성하여 외척이 나 환관의 정권당에 대항했다. 이리하여 서로 세력을 다투는 격심한 삼파전이 전개되었다. 환관당은 이윽고 외척 세력을 궤멸시키고, 지식인당에 대해서도 철 저한 탄압을 가했다. 그 결과 정치를 맡아 보아야만 할 지식인 관료 층이 완전히 황실을 저버 리게 되어 후한 왕조는 자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로 보아, 가공할 파벌 싸움은 양식 있는 사람들 의 무 엇을 하고자 하는 의식을 제거시켜 집단 전체를 활력을 잃은 상태로 만 들었다. 더욱이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나무랄 데 없는 군자들인데, 일단 당 파를 결성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개인적으로는 도저히 엄두도 나지 않는 짓거리를 당파의 이름으로 아주 손쉽게 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