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아예 반기를 들까'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죄가 없는 이상 별일 없을 것' 으로 믿고 순순히 고조를 배알하기로 했다.
그러나 불안이 싹 가신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활한 가신(家臣)이 한 신에게 속 삭이듯 말했다.
"종리매의 목을 가져가시면 폐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옵니다."
한신이 이 이야기를 하자 종리매는 크게 노했다.
"고조가 초나라를 치지 않는 것은 자네 곁에 내가 있기 때문일세. 그런데도 자 네가 내 목을 가지고 고조에게 가겠다면 당장 내 손으 로 잘라 주지. 하지만 그 땐 자네도 망한다는 걸 잊지 말게."
종리매가 자결하자 한신은 그 목을 가지고 고조를 배알했다. 그러나 역적으로 포박당하자 그는 분개하여 이렇게 말했다.
"교활한 토끼를 사냥하고 나면 (쓸모가 없어져) 좋은 사냥개는 삶아 먹히고[狡 兎 死良狗烹(교토사양구팽)], 하늘 높이 나는 새를 다 잡 으면 좋은 활은 곳간에 처박히며[高鳥盡良弓藏(고조진양궁장)], 적 국을 쳐부수고 나면 지혜 있는 신하 는 버림을 받는다[敵國破謀臣亡 (적국파모신망)]고 하더니 한나라를 세우기 위 해 분골쇄신(粉骨碎 身)한 내가, 이번에는 고종에게 죽게 되었구나."
고조는 한신을 죽이지 않았다. 그러나 회음후(淮陰侯)로 좌천시킨 뒤 주거를 도 읍인 장안(長安)으로 제한했다. 한신은 나중에 위험을 느끼자 자결을 함.
[주]《십팔사략(十八史略)》에는 고조(高鳥)가 비조(飛鳥)로, 양구(良狗)가 주구 (走狗)로 나와 있으나 뜻은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