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이야기

돼지 잡는 노학자

eorks 2013. 11. 5. 04:47
고전(古典) 이야기 ~수련과 성찰~

돼지 잡는 노학자
전한(前漢) 제4대의 효경제(孝景帝)는 즉위하자 곧 천하에 어 진 선비들을 불러 모았는데, 우선 시인으로 이름 높은 원고생 (轅固生)을 불러 박사(博士)로 삼았다. 원고생은 산동 출신으 로, 그 당시 90의 노령이었지만 효경제의 부름에 감격하여, `젊 은이들에게 지지 않으리라`하고 흰머리를 날리며 효경제 앞에 나왔다.
그런데 원고생의 직언에 못 견디는 얼치기 학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 사람을 떨려 나가게 하려고 온갖 비난을 다했다.
"그 늙은이는 이미 쓸모가 없는 자입니다. 시골에 두고 증손 자들이나 돌도게 하는 것이 좋은 줄로 아옵니다."
라고 말하는 신하도 있었다.
그러나 효경제는 이런 중상을 곧이듣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 산동 출신의 공손홍(公孫弘)이란 소장학자를 불러들였다. 공손 홍은 `저런, 늙은이가 뭘 하겠다고......` 하는 눈초리로 원고생 을 보았으나 원고생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지금 학문의 길이 문란하여 속담이 유행하고 있소. 이대로 두면 유서 깊은 학문의 전통은 사설 때문에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오. 그대는 다행히 젊은 호학(好學)의 선비라 들었소. 아무 쪼록 바른 학문을 연구하여 세상에 널리 퍼뜨려 주시오. 결코 자기가 믿는 학설을 굽혀(曲)서 세상의 속물들에게 아부하지 않도록........"
이것이 `곡학아세(曲學阿世)`의 말이 생긴 시초가 되었다.
`저런 늙은이가......` 하고 있던 공손홍도 절조를 굽히지 않 는 원고생의 훌륭한 인격과 풍부한 학식에 감격하여 크게 뉘우 치고, 곧 자기의 무례를 사과한 다음 그의 제자가 되었다.
원고생이 나서 자란 산동에서는 시를 배우는 자는 모두 원고 생을 모범으로 삼았고, 당시의 이름 있는 시인은 거의 모두 그 의 제자였다고 한다. 이러한 원고생의 강직함을 말해 주는 이 야기가 있다.
효경제의 모친인 두태후(竇太后)는 노자를 몹시 좋아했는데, 한 번은 박사 원고생을 불러 물었다.
"그대는 노자를 어떻게 생각하는고?"
원고생은 평소의 신념을 굽혀 칭찬할 수 없다 생각하고,
"노자 같은 사람은 하인배나 다름없는 사나이올시다. 그가 하는 말은 모두 남을 속이는 말에 지나지 않으며, 적어도 천하 국가를 논하는 선비가 문제시할 가치도 없는 것이옵니다."
라고 두려움 없이 대답했다.
태후는 얼굴빛이 확 변했다.
"이런 오만한 자가 어디 있는가. 내가 존경하는 노자를 가짜 로 돌리다니! 이 자를 옥에 가두라."
두태후의 명령에 옥에 갇힌 원고생은 날마다 돼지 잡는 일을 하게 되었다. 태후는 90이 넘은 노인이 돼지 잡는 일을 제대로 못하려니 생각하고, 못하는 때에는 또 다른 형벌을 주리라 생 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고생은 예리한 칼로 돼지를 잡는데, 한 칼에 돼지의 심장을 찔러 어렵지 않게 잡았다. 이 소식을 들 은 태후는 하는 수 없이 그를 용서하여 다시 박사의 자리에 돌 아오게 하였다.
이 두려움 없고, 권력에 눌리지 않고, 직언하는 태도에 감탄 한 효경제는 원고생을 삼공(三公)의 하나인 청하왕태부(淸河王太傅)라는 벼슬에 승진시켜 점점 더 그를 신임하였다고 한다. <사기> `유림전(儒林傳)`에 그 전하는 얘기다.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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