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집 여종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여종의 남편놈은 날마다 와서
자지 않거늘 주인집의 소년이 뜻대로 간통했는데, 오히려 이를 숨기
는 자는 여종과 그의 양친들이었다. 어느날 밤에 소년이 그의 처와
함께 자다가 처가 깊이 잠든 틈을 타서, 가만히 행랑으로 나갈 때,
그 처가 잠이 깨어 비로소 알고 살금살금 뒤를 밟아서 창틈으로 엿본
즉, 여종이 거절하면서 가로되,
『서방이 왜 하필 흰 떡같은 아가씨를 버리고 구구히 이렇게 하찮은
저에게 오셔서 못살게 구십니까?』
『아가씨가 흰 떡 같다면 너는 산나물과 같으니 음식으로 따지면 떡
을 먹은 후에 나물은 가히 먹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
하며 드디어 입을 맞추며 운우(雲雨)가 방농(方濃)하니 그처가 돌아
가서 여전히 누워자고 있었다.
소년이 생각하기를 처가 행랑의 일을 보지 못하였으렸다 하고 이틑
날 부처가 함께 시아버니를 모시고 있을 때, 소년이 졸지에 기침이 연
발하여 입을 다물고 벽을 향하여 가로되,
『요즈음 내가 이 병이 있으니 괴상하도다, 괴상하도다.』
한즉 그녀가 읍해 가로되,
『그것이야 다른 까닭인가요. 나날이 많은 산나물을 잡수신 연고이
지요.』
하니 소년의 아비가 듣고 가로되,
『어디서 산나물이 났기에 너만 혼자 먹느냐?』
하거늘 소년이 부끄러워 입을 닫고 곧 밖으로 나가더라.
모로쇠전(毛老金傳)
거시기라는 마을에 모로쇠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볼 수는 없으나 땅
에 떨어진 개털도 찾을 수 있고, 들을 수도 없지만 개미가 씨름하는
소리까지 느낄 수가 있다. 코가 막혔으나 쓰고 단맛을 맡을 수가 있고,
말을 못하는 벙어리라도 구변이 떨어지는 폭포수와 같더라.
다리를 절지만 아들·딸 구남매를 두었고 집은 낡아빠져 초라하지만
항상 백설아마(白雪鵝馬)를 타고 다녔다. 말색이 숯섬에 먹칠한 것
같은 데다가 언제나 자루도 날도 없는 낫을 띠도 매지 않은 허리에다
차고 2월 三七일에 산에 들어가 풀을 베니 양지쪽에는 눈이 아홉자나
쌓였고, 응달에는 풀이 무성하여 키 넘을 정도였다. 드디어 낫을 들어
풀을 베려 하니 삼족사(三足蛇)가 나타나 머리·몸통·꼬리도 없이 보일
락 말락 하더니 갑자기 덤벼들어 들고 있던 낫을 물었으니 별안간 낫
이 퉁퉁 부어 오르더니 이내 뒤움박만하게 부풀어 올랐다.
모로쇠는 어쩔 줄을 몰라 마을로 달려 내려오다가 도중에서 여승을
만났는데, 자세히 보니 유두분면(油頭紛面) 곱게 단장하고, 검은 장
삼을 걸치고 모로쇠 앞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모로쇠는 급히 여승 앞
에 나아가 낫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고쳐 줄 것을 의논하니, 여승은
몸을 뒤로 제껴 한쪽 손을 허리에 얹고 다른 한 손으로 수염을 쓰다듬
으면서 하는 말이.『그건 어렵지 않으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보아라.
말발굽이 닫지 않은 역원이 부엌 아궁이와 불지핀 일이 없는 굴뚝의
꺼멍과 교수관의 먹다 남은 식은 적과 행수기생의 더럽힌 일이 없는
음모와 글 읽을 때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선비와 허리춤에 이를 잡을
때 입을 삐죽이지 않는 노승과 이 다섯 가지를 한데 넣어서 찧은 약을
낫에 바르면 지체없이 낫느니라.』라고 하였다.
모로쇠는 그때서야 안심하고 마을로 내려오니 길가에 종이도 바르지
않은 대설기가 있는데 술을 열 말쯤이나 담아 두고 등자잔으로 마구
떠마시니 얼마 아니가서 취하여 버렸다. 또한 위로 쳐다 보니 감나무
에 석류가 주렁주렁 열려 두 손으로 땅을 집고 방귀를 크게 한 번 뀌
니 석류가 순식간에 다 떨어졌다. 주워 보니 전부 썩어 먹을 수가 없
으나 모로쇠는 죄다 주워서 벗 없는 마을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포식
을 했으니 장차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고, 살려 해도 살 수도 없으니
그 결과는 어찌 되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더라.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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