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감영에 이르러 아침 저녁으로 비장들이 감사에게 문안할 때도
역시 한데 끼어 들어왔으나, 감사는 별로 물을 것이 없으므로 갑자기
싫어졌다. 하루는 자원비장을 불러 말하였다.
『그대는 본시 자원비장으로서 아무 일도 맡아 보는 것이 없고, 소임
도 없으니, 어찌 괴로움을 참아가면서 문안드리러 올 것이 있는가?
지금 대동감관(大同監官)이 비어 있고 매년 먹는 바가 거의 五○금
(金)에 이르므로 특히 차정하니, 이후부터 그대를 부르기 전에는 들
어오지 않아도 좋으리라.』
자원비장이 그 명을 받들고 나온 후로 동원(東園) 뒤에 있는 적은 방
에 들어박혀 있으면서 언감생심 출입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럭저럭
감사의 임기가 다 끝나가서 서너 달밖에 남지 않았을 즈음 이방(吏房)
을 시켜 하기(下記-금전출납부)를 가져오게 하여 본즉, 가하(加下-예
산초과)가 三만금인데 환하(還下-국고에서 도로 내어주는 것)없으므
로 심중으로 몹시 고민하였으나,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하루는 한가
히 앉아 이궁리 저궁리 하다가 갑자기 자원비장이 생각났다.
<그때 쫓아 버리고 三년토록 한 본도 부른 일이 없고 또 아중(衙中)의
상하가 모두 업신여긴 터라 곤궁하였을 것은 당연하리라. 이러한 적악
(積惡)의 소치로 그렇게 되었은즉 짊어진 가하가 비록 三, 四만이라
할지라도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비로소 자원비장을 불렀다. 자원비장이 명을 받고 들어온즉, 감사는
위로하였다.
『한번 보낸 후 三년이나 되도록 공무에 사로잡혀 한번도 불러보지
못하였구나. 그대의 소득이 불과 五○금인데 그대의 고생은 말할 수
없을 것인즉, 나의 허물이 적지 않구나. 그대는 그 사정 잘 짐작하고
용서하라.』
비장은 두 손을 모아 잡고,
『황송하옵니다.』
이어,
『뵈온즉 사또의 얼굴빛이 초췌하시니, 무슨 걱정이라도 있사옵니까?』
감사는 양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하였다
.
『가히 三만냥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밤낮 이렇게 고민하는 중이로세.』
『그러하오면 어찌 비장들과 상의하지 아니하옵니까?』
『비장들이 각기 자기 일에 바쁘니 어느 여가에 감사의 가하일을 돌
보겠는가?』
『사또께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나이까? 비장의 소임은 사또를
도와 마땅히 꾀하여야 하므로 옛말에도 잊지 않사옵니까? 그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는 죽는다고, 그렇지 않을지면 허수아비 비장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옵니까? 소인에게 한 꾀가 있어 사또의 걱정을 나눌까 하
나이다.』
감사는 대단히 기뻐하면서 곧 물었다.
『어떤 꾀인고?』
『사또께서 만일 칙고전(勅庫錢-국고금) 三만 냥을 주시오면 좋은
꾀가 있을까 하나이다.』
감사는 그 말을 따라 출급(出給)하였으나 마음속으로,
<자원비장이 본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니 중한 칙고를 헐어 주었다
가 만약 뜻밖의 불칙한 일이 생기면 그 어찌 화상첨유(火上添油)가
되고 말지 않겠는가?>
생각하였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자원비장은 전주(全州) 어음을
하여 가지고 여러 비장과 이별한 후 담양(潭陽)을 가시 대를 샀다. 그
리고는 배에 싣고 평양으로 오니 그 동안이 거의 한 달이나 걸렸다.
감사는 눈이 빠지도록 오늘이나 내일이나 기다리니 하루는 자원비장
이 들어와 감사에 뵈었다. 감사는 반가와 못 견디면서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 그리 늦었는가? 내 간장이 다 끊어져 버릴 뻔하였구나.』
『이제 사또께서는 아무 걱정 마옵소서. 그리고 내일은 특히 분부를
내리시어 연광정(연光亭)에 잔치를 베푸시고 각 읍 수령을 부르시어
이러이러 하시면 꾀는 그 속에 있나이다.』
사또는 대단히 기뻐하고 다음날 곧 각 읍 수령을 연광정에 청하고 잔
치를 하였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가고 취흥이 도도하여졌을 때 감사는
갑자기 말하였다
.
『평양은 본시 가아면 고을이요 또한 올해는 풍년이 들었으니 민간에
영을 내려 집집마다 죽룡(竹龍)에 불을 켜고 태평성대를 축하하되,
그대들은 본읍에서 반령한 후 그에 따라 각영(各營)에서는 본보기를
삼아라.』
여러 수령들은 그 명을 받들고 각기 돌아갔다. 영이 한번 내리자 성내
성밖 할 것 없이 백성들은 모두가 기뻐하며 칭송하였으나, 평안도는
대나무가 가는 데가 모두 적고 굽어서 등롱감이 되지 않았다. 대를 구
하느라고 너도 나도 돌아다녔으나, 뜻같이 구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푸른 대를 실은 배를 본 사람들은 모두 <하늘이 내리신 대다>하고 서
로 다투어 대를 사가지고 가는데 값의 대소를 묻지 않고 다만,
『천행으로 대를 구했다.』
라고들 하므로 어언간에 三만냥 본전에다가 거의 一○만냥이 되었다.
사또는 그런 줄은 모르고 칙고전을 준 후에 돈에 대한 아무 소식이
없으므로 근심 위에 의심이 더 하였다. 하루는 자원비장이 들어오더
니 대를 사가지고 온 것과 三배의 이익을 얻은 것 등을 자세히 얘기하
고 칙고전과 가하금을 갚은 증서와 七만냥 어음을 내어 놓았다. 감사
는 크게 기뻐하면서,
『그대의 신기(神機) 묘산(妙算)은 옛사람도 미칠 바가 못되는구나.』
하면서 칭찬하여 마지않았다. 자원비장은 또한 말하였다.
『남은 돈 七만냥은 본댁으로 보낼까 하나이다.』
한즉 감사는 펄쩍 뛰었다.
『이 무슨 말인고? 그대의 꾀로 내 빚을 갚았으니, 그 은혜도 갚기 어
렵거늘 거기에다 남은 돈이라니 말도 아닐세. 다시 여러 말 말고 자네
나 쓰게.』
자원비장은 재삼 굳이 사양하고 마침내는 똑같이 나누기로 하였다.
이어,
『소인은 먼저 돈을 가지고 가겠사오며, 남은 일은 서울 가서 말씀드
리겠나이다.』
하니, 감사도 승낙하고 자원비장을 먼저 상경케 하였다. 감사가 서울
에 돌아와 본즉, 七만냥 돈은 모두 자기집에 와 있고 몇 날 며칠을 두
고 자원비장 오기를 기다렸으나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부터 감
사는 사람을 만나면 의례히 물어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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