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어느 절에서 무차대수륙재(無遮大水陸齋)를 지낼 때, 남녀가 모
여들어 구경꾼들이 무려 수천 명이나 되었다. 재가 파한 후에 나이 적
은 사미승(沙彌僧) 아이가 도장(道場)을 소제하다가 여인들이 모여 않
아 놀던 곳에서 우연히 여자의 음모 한 오리를 주어 스스로 이르되,
"오늘 기이한 노화를 얻었도다."
하며 그 털을 들고 기뻐 뛰거늘 여러 스님들이 그것을 빼앗으려고 함
께 모여 법석이로되, 사미승 아이가 굳게 잡고 놓지 않으며,
"내가 눈이 묵사발이 되고 내 팔이 끊어질지라도 이 물건만은 가히 빼
앗길 수 없다,"
하고 뇌까리니 여러 스님들이,
" 이와 같은 보물은 어느 개인의 사유물일 수는 없고, 마땅히 여럿이
공론하여 결정할 문제니라."
하고 종을 쳐서 산중 여러 스님이 가사장삼을 입고 큰 방에 열좌(列坐)
하여 사미아이를 불러,
"이 물건이 도장 가운데 떨어져 있었으니, 마땅히 사중(寺中)의 공공
한 물건이 아니냐. 네가 비록 주웠다 하나 감히 어찌 이를 혼자 차지
하리요."
사미가 할 수 없이 그 터럭을 여러 스님 앞에 내어놓은 즉, 여러 스님
이 유리 발우(鉢盂)에 닫은 후에 부처님 앞탁자 위에 놓고,
"이것이 삼보(三寶)를 장(藏)했으니, 길이 후세에 서로 전할 보물이다."
하거늘 스님이,
"그러한즉 우리들이 맛보지 못할 게 아니냐?"
한즉 혹자는 또한,
"그러면 마땅히 각각 잘라서 조금씩 나누어 가지는 것이 어떠냐?"
하니 여러 스님이 가로되,
"두어 치밖에 안되는 그 털을 어찌 여러 스님이 나누어 가지리요?"
그때 한 객승(客僧)이 끝자리에 앉았다가,
"소승의 얕은 소견으로는 그 털을 밥짖는 큰 솥에 가운데 넣어 쪄서
돌로 눌러서 물을 길어 큰 솥에 채운 후에 여러 스님께서 나누어 마
시면 어찌 공공(公空)의 좋은 일이 아니리요. 나와 같은 객승에게도
그 물을 한잔만 나누어 주신다면 행복이 그 위에 없겠소이다.
한즉 여러 스님이,
"객스님의 말씀이 성실한 말씀이다."
하고 그 말에 찬성했는데 그때 마침 절에 백세 노승이 가슴과 배가
아프기를 여러 해, 바야흐로 추위를 타서 문을 닫고 들어앉았다.
이 소리를 전해듣고 홀연히 나타나 합장하며 객승에게 치하해 가로되,
"누사(陋寺)에 오신 객스님이 어찌 그 일을 공론하면, 늙은 병승과 같
은 나는 그 터럭의 눈꼽만한 것도 돌아오지 않을 터이니...... 오늘 객
스님 말씀에 가히, 그것을 마신 후에는 저녁에 죽은 한이 있더라도
여한은 없겠소이다. 원컨대 객스님은 성불(成佛), 성불(成佛)하소서."
하였다.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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