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野史

금산(錦山)과 이태조(李太祖)

eorks 2015. 3. 26. 08:47
韓國野史 이야기(夜談)

금산(錦山)과 이태조(李太祖)
    한려수도해상국립공원에 속한 남해군에 솟은 금산은 전설의 고향이 라 할 만큼 얽힌 전설이 많은 곳이며, 특히 금산 38경으로 유명하며, 금산(錦山)의 본래 이름은 보광산(普光山)이었다. 독자들께서 만일 이곳으로 여행을 가실 일이 있다면, 미리 사전에 익 히고 답사한다면 더욱 의미가 크리라 생각됩니다. 금산(錦山)은 옛날부터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지리산이 남쪽으로 뻗어내려 오다가 노량바다를 사이에 두고, 그 맥을 유지하여 한 점의 섬이 생긴 것이 남해도(南海島)이고, 이곳 남해 섬은 삼남(三南)의 유 일한 절승영악(絶勝靈嶽)이며 소금강이라고 불리어오던 곳이다. 금산이 영산(靈山)이라 불리어 오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전설에 의한 것도 있지만, 사실적으로 정성을 들여 기도를 해본 결과, 효험이 있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며, 옛날 진시황의 사신 서불(徐市: 市字를 인명에 사용할 경우 불로 읽음)이 선남선녀 500명 을 거느리고 불로초를 구하러 영험 있는 산으로 이름난 이곳을 찾아왔 다가 "서불과차(徐市過此) 서불이 이곳을 지나갔노라" 하는 표지를 바위에 새겨 놓았다는 이야기.(현재도 흔적이 남아있음) 신라시대에 유명한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 등 많은 고승들이 찾아와 기도하였다고 하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주제로 다루고자 한 이야기는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설화를 올리고자 한다. 원효대사가 이 산에 보광사(현재 보리암으로 추정됨)라는 절을 창건 하면서 산 이름도 보광산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태조 이성계가 조선 을 개국하기 전에, 전국의 유명한 기도처를 찾아다니며 제를 올리고 기도를 하다가, 이곳 보광산에 제단을 쌓고 100일 기도를 하며 자기 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보광산의 전체를 비단으로 둘러 주겠다는 약속을 굳게 하였던 것이다. 그 후, 그 기도의 효험이 있어서 인지는 몰라도 태조 이성계가 정작 자기의 목적을 이룬 다음에 크게 고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고민은 다름이 아닌 보광산의 전체를 어떤 방식으로 실제 비단으 로 둘러줄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 사정을 알아차린 신하 중에 한 사람이 하루는 이태조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는 것이다. "폐하! 폐하께서는 너무 상심치 마시옵소서, 저에게 좋은 방도가 있사옵니다". "그래! 좋은 방도가 있다니 다행이구려, 그럼 그 방도를 말씀해 보 시오". 그러자. 신하는 이렇게 아뢰는 것이었다. "폐하 그 보광산의 이름을 금산(錦山: 비단산)으로 바꾸어 부른다면 보광산에 대한 약속을 지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말은 들은 태조는 "그래 그게 아주 좋은 생각이오." 하며, 크게 기뻐하면서 하루 속히 보광산 이름을 바꾸어 금산으로 부르도록 온 나라에 방을 부치도록, 각 지방의 도백에게 하명을 하였다는 것이다. ★ 이 기도터에는 현재도 이태조기단(李太朝祈壇)이라 하여 조그마 한 건물이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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