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野史

금산 보리암의 기이한 석탑

eorks 2015. 3. 28. 07:36
韓國野史 이야기(夜談)

금산 보리암의 기이한 석탑
    경남 남해 금산에 자리한 보리암은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주는 영험스럽고 자비스런 기도 도량으로 우리나라 3대 해양 기도처로 불 릴 만큼 효험이 높다고 소문난 사찰이다. 남해의 벽파(碧波)에 발등을 씻으며, 허리에 구름 띠를 두르고 서 있 는 금산의 이마에 자리잡고 앉아, 망망한 남해의 하늘 끝을 내려다보 고 있는 보리암의 보리는 '도를 이루었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보리암의 창건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가락국의 김수로왕이 왕비로 맞아들인 중인도 아유타국의 허 황옥 공주와 함께 배를 타고 온 장유선사가 세웠다고 하는 설이 그것 인데, 전하는 바에 의하면, 장유 선사는 허황옥 공주의 삼촌이라고 한 다. 김수로왕과 허황옥공주 사이에 난 7왕자를 장유선사가 모두 데리고 출가를 했는데, 영남일대에 그 장유선사의 유적이 널려있다고 한다. 그 중 김해 장유암이 대표적인 유적지고, 남해 금산의 보리암도 그러 하다고 한다. 남해안에서 가장 잘 보이면서도 산의 수려한 자태와 구름이 스쳐 지 나가면서 하늘과 산 바다 위에서 일으키는 천태만상의 변화에 매혹 되어 장유선사는 보리암에 터를 잡아 아유타국에 모시고 온 관세음 보살님을 모셨는데, 지금의 관세음보살님이 바로 그때의 관세음보 살님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신라 원효대사의 창건설이다. 원효대사가 강산을 유행하다가 이 산의 승경에 끌려들어 왔는데, 온 산이 마치 빛을 발하 는 듯 해, 원효스님은 감탄하며 보광산이라 이름을 붙이고 보광사를 지었다고 한다. 이때 창건된 보광사에서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드린 후 조선왕조를 개국하자. 산에 비단을 둘러준다고 하여 금산(錦山) 이라 부르고 절 이름도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보광사 는 폐사되어 지금은 보리암 뒤에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보리암의 해수관음은 우리나라에만 있고, 우리 민복에게만 숭상되어 져 온 관음으로서 해수관음을 보리암에 모신 것은 많은 중생들에게 더 없는 기도도량이 될 것이라는 오고산 스님의 말씀이 있어서라고 한다. 석조관음보살을 봉인하던 날 3시경 헬기가 해수관음보살을 모시고 보리암으로 넘어오던 때 광채가 관음상을 비추기 시작했다고 한다. 해수관음의 이적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보리암에는 참배 기도객 들이 부쩍 많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유서 깊은 사찰들 이 울창한 산림 속에 있는데 비해 보리암은 신선이 노닐었을 법한 영 봉 위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며 자랑이다. 삼층석탑은 보리암 앞 해수관음상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석 탑은 가야국의 김수로왕의 비, 허태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가져 온 돌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그 탑신에는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부처의 진신사리의 조화인지, 아니면 먼바다를 건너 온 인도 의 돌이 조화를 부리는지는 모를 일이나, 탑신 가까이에 가서 나침반 을 들고 있으면 나침반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 이한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현재. 이 석탑은 경남 문화재 제 74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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