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때 유머

춘삼월에 만나세

eorks 2019. 3. 19. 00:34
[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제1부 선비들의 멋, 그것은 유머였다.
[제1ㅡ30화]춘삼월에 만나세
한 고을에 홍씨(洪氏) 성을 가진 선비가 풍헌(風憲) 직책을 맡 았다. 그런데 홍씨 선비의 아내는 음모(陰毛)가 너무 길어서 어 쩌다가 땅바닥에 앉아서 소변을 볼라치면 음모가 땅에 닿아 젖 곤 했다.

어느 추운 겨울 섣달 그믐께였다. 홍씨 선비의 부인이 밤에 자다가 소변이 마려워 밖에 나와서 마당가에 앉아 소변을 보는 데, 마침 땅바닥에 얼음이 얼어 있었다. 소변을 다 보고 일어나 려니, 음모가 얼음에 닿아 함께 얼어붙어 털이 당겨지는 바람에 아파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부인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큰소리로 남편을 불렀다.

"여보, 여보, 빨리 일어나 이리 좀 나와요, 여보, 빨리요."

부인의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잠을 깬 홍씨 선비가 마당으 로 나와 보니 상황이 매우 고약하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아니, 내가 변소에 가서 용변을 보라고 주의를 시켰지 않아? 이 일을 어떻게 한담? 가만 있자....옳지, 좋은 수가 있어."

홍씨 선비는 급한 마음에 얼른 엎드려 음모가 붙어 있는 부분 의 얼음에 입을 가까이 대고, 입김을 불어서 얼음을 녹이면 되겠 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손으로 땅을 짚고 엎드려 몸을 구부리고는 입을 음모 가까이 가져가 열심히 입김을 부니, 그만 어느 사이에 선비의 긴 수염 역시 땅바닥 얼음에 닿아 얼어붙어 버렸다.

홍씨 선비는 부는 입김을 멈추고 얼굴을 들어 보려고 해도 얼음 에 붙은 수염이 닿겨져 아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이렇게 얼굴을 부인의 옥문 앞에 대고 꼼짝 못한 채 엎드려 있는 동안, 날이 새고 아침이 되었다.

그런데 마침 새벽에 약정(約正) 일을 맡아 보는 김씨 선비가 무슨 연락을 취하려고 홍씨 선비 집에 들러 대문에서,

"홍 풍헌, 풍헌 이 사람 아직 일어나지 않았나? 빨리 대문을 좀 열게나, 연락할 일이 있어서 급히 왔네."
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이에 홍씨 선비는 할 수 없이 엎드린 채 큰소리로,

"아 김 약정, 관청 일이 비록 중하지만 나는 내년 봄 해빙하 기 전까지는 나갈 수 없게 되었네, 내 이 뜻을 관청에 전하고 풍 헌 직책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도록 해주게나, 내년 봄 이후 내 권농(勸農) 직책을 맡으라 해도 마다 않고 하겠네,"

"뭐,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린가? 무슨 일이 생겼나?"

"응, 그렇다네, 넉넉잡고 내년 봄 해동하기 전까지는 내 아마 못 나갈 것 같네, 그리 알고 돌아가게나,"

이렇게 말하며 집에 들어오지 말고 그대로 돌아가라고 하니, 김씨 선비는 아마도 집안에 무슨 큰일이 있는 것 같아서 지게를 담벼락에 기대 놓고 올라서서 담을 너머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홍씨 선비는 마당가에 엎드려 있고 아내는 엉덩이를 내놓은 채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본 김씨 선비는 사정을 대강 짐작하고는 외쳤다.

"어이 홍 풍헌, 그러면 내년 봄 얼음이 녹는 춘삼월에나 만나 세, 나 이만 돌아가네,"

이러고 내려와 얼른 떠나가더라.<조선 후기>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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