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때 유머

큰머리 때문에 고생을 하면서

eorks 2019. 3. 21. 00:08
[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제1부 선비들의 멋, 그것은 유머였다.
[제1ㅡ32화]큰머리 때문에 고생을 하면서
부인들은 잔치가 있거나 어떤 행사에 참가할 때 머리에 길게 땋은 가발을 첨가하여 둥글고 크게 보이도록 `큰머리'로 장식하 는데, 이 머리를 하고 눕게 되면 그 잘 다듬어진 머리가 망가지 고 다시 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된다. 그래서 부인들은 이 머리로 단장하고는 눕지도 못하고 많은 주의를 하게 된다.

한 전라 감사(監司)가 부친은 연세가 많아 사망하고 여든에 가까운 노모를 모시고 있었는데, 마침 이 노모의 생신을 맞아 잔 치를 열고 인근 고을의 관장들 부인과 친척 부인들을 모두 초청 했다. 그래서 시간이 되어 초청된 부인들이 모두 모였는데, 어 쩐 일인지 가까운 곳에 있는 전주 판관(全州判官) 부인만이 나타 나지 않았다.

곧 행사를 주관한 부인이 어린 기생을 불러,

"그 참 이상한 일이다. 제일 먼저 나타나야 할 판관 부인이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으니 무슨 일이 있나 보다. 네가 급히 판관 관사로 가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고 오너라."
라고 말하면서 급히 달려가 보라고 했다.

명령을 받은 어린 기생이 급히 달려 본부(本府) 내아(內衙)로 들어가 살펴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고 사방이 조용한 게 인기척 이 없었다.

기생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사방을 두리번거리는데, 방안에 서 작은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가만히 닫혀진 문 앞에 가서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판관 대감이 바지를 벗은 채 엎 드려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배 밑에 부인이 속치마를 걷어올리고 두 다리를 벌린 채, 머리를 두 손으로 받쳐 치켜들고 반듯이 누워 있는 것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부인은 잘 손질해 만든 큰머리가 망가질까 조심하며 누워서 두 손으로 목을 받쳐 머리가 방바닥에 닿지 않 게 하느라고 애를 쓰면서도 가벼운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부 인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두 눈을 감고 꿈속을 헤매는 것 같은 황홀한 표정으로 거의 인사불성 상태로 보였다.

기생이 소리 없이 가만히 돌아나와서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뒹굴면서 배를 움켜쥐고 웃으니, 모여 있는 부인들이 와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었다. 기생이 목격했던 모습 그대로를 차 근차근 자세히 설명하니, 여러 부인들도 모두 웃느라 어쩔 줄을 몰라했다.

오늘의 주인공, 즉 생신을 맞은 감사의 노모는 귀가 어두워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왜들 모두 웃느냐고 물었다. 이 때 한 부인이 차마 바른대로 아뢰지 못하고 어린 기생이 실수를 해서 웃는다고 얼버무려 대답하니, 감사 모친은 눈치를 채고 자 기만 따돌린다면서 막 화를 냈다.

그래서 감사 모친에게 사실대로 설명하면서 알아듣게 하려고 큰소리로 여러 번 얘기하고 있는데, 마침 전주 판관 부인이 가마 를 타고 와서 내렸다. 판관 부인이 마루에 오르면서 들으니 방안 에서 자기 얘기를 크게 설명하고 있기에,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 랐지만 그래도 할 수 없이 방으로 들어가 노부인 앞에 엎드려 절 을 했다.

이에 감사 모친은 엎드린 판관 부인을 붙잡아 일으켜 자기 가 까이에 앉히고 얼굴과 머리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다정힌 목소리 로 이렇게 말했다.

"그 행사를 한바탕 치르고 왔는데도 어찌 이 `큰머리'가 조금 도 흩어지지 않고 이렇게 단정한가? 참 신기한 일이네, 나도 옛 날에 영감이 살아 계실 때, 생신 잔치에 몸을 다 치장하고 막 나 가려고 할 때마다 영감이 끌어다 눕히고 그렇게 행사를 했었다 네, 그때 장식된 `큰머리'가 망가져 그것을 다시 고치느라고 얼 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르네, 판관 부인은 어떻게 하고 왔기에 빨 리 왔는데도 이렇게 머리가 단정한가? 정말 기특하기도 해라, 장한 일이네."

이렇게 칭찬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추억하고 황홀한 정감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옆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부인들은 입 을 막고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웃음을 참느라고 애를 먹었다. 이 날은 온통 이 화제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조선 후기>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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