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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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ㅡ4화]기생에게 이를 뽑아 준 선비
경주의 한 관기가 얼굴이 예쁘고 재치가 있었다. 한 젊은 서
울 선비가 돈을 많이 가지고 전국을 유람하다가 경주에 이르러
여기저기를 구경하고는 숙소의 주인에게 물었다.
"경주에도 아름다운 기생들이 많겠지요? 어디 소개해 줄 만
한 기생이 있습니까?"
"암, 있고말고요. 뜻이 있으시면 소개해 올리지요."
선비의 말에 숙소 주인은 경주에서 가장 이름이 나 있는 관기
하나를 소개해 주었다.
이날 밤, 선비는 그 기생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는데, 기생은
수줍어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소녀는 본래 양갓집 딸이었습니다. 어려서 가정이 몰락해
기생으로 뽑혀 들어와, 지금까지 아직 남자와 잠자리를 한 적이
없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어르신과 접하는 것이옵니다."
이 말에 선비는 처녀의 몸을 함부로 다루면 아파하면서 두려
움을 느낀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살살 흥분을 시키면서 가르
쳐 준다는 기분으로 조심조심 잘 해주었다. 그렇게 해 잠자리를
마치고 나니 기생은 감격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르신 덕분에 소녀 이제 머리를 얹게 된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선비는 이 말에 감동을 느껴 이튼날부터 아예 짐을 챙겨 그
기생집으로 옮기고 밤낮으로 기생과 붙어 있으면서 즐기니, 기
생은 점점 훈련이 되어 맛을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선비를 아주
즐겁게 해주고는 말했다.
"소녀 이제 서방님 없이는 못살 것 같습니다. 제발 떠나지 마
시고 소녀와 함께 영원히 살도록 해주십시요."
이렇게 되니 선비는 기생과 정이 매우 깊어졌다. 그런데 하루
는 선비를 모시고 온 종이 조용히 아뢰는 것이었다.
"서방님, 이제 가지고 온 돈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요."
이에 선비가 기생에게 다시 오겠다는 맹세를 하면서 서울로
돌아가겠다고 하니, 기생은 매우 슬퍼하면서 우는 것이었다. 곧
선비는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재물을 다 주고 위로하는데, 기생
은 더욱 슬피 울면서 말했다.
"소녀 몸을 처음으로 가지신 증표로 재물보다는 신체의 일부
를 잘라 주십시요. 소녀 평생 잊지 않고 간직하겠나이다."
이 말에 선비가 곧 머리털을 한 뭉치 잘라서 주니 기생은,
"모발은 몸 외부 물건이라 몸속의 것을 주십시요."
하고 간청하면서 울었다.
그래서 선비는 앞니 하나를 뽑아 주고 떠났다.
서울로 돌아온 선비가 그 기생을 못 잊어 슬퍼하고 있는데,
마침 경주에서 올라온 손님을 만났다. 선비는 반가워하면서,
"혹시 경주에 사는 이러이러한 기생을 아십니까? 아마도 나
를 잊지 못해 지금쯤 병이 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아픔니다."
하고 물었다. 이 말을 들은 손님은 딱하다는 듯이 선비를 물끄러
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 그 기생에게 홀리셨구먼요, 그 기생한테 속은 어리석은
선비를 내 여러 사람 만났습니다. 아마도 이를 뽑아 준 게로구먼
요. 틀림없지요?"
이렇게 말하며, 그 기생은 경주에서도 남자를 잘 홀리기로 소
문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 기생은 선비가 떠
나온 바로 그날, 이미 다른 남자를 집으로 끌어들여 홀리고 있다
는 이야기도 아울러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선비는 화가 나서 곧 건장한 종을 시켜,
"여보라, 너 지체 없이 경주로 내려가 그 여우 같은 기생을
만나 뽑아준 앞니를 도로 찾아오도록 하라."
하고 재촉했다.
종이 경주로 달려가 서울 선비의 말을 전하니, 그 기생은 큰
주머니를 던져 주면서 앙칼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 참 어리석은 풋내기로세, 소 잡는 백정에게 살생(殺生)을
하지 말라 하고, 기생에게 절개를 지키라고 하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면 망령이 든 사람이지. 자, 이 주머니 속에서 네 바보 같은
상전의 앞니가 어느 것인지 찿아보아라."
종이 주머니를 받아서 열어 보니, 그동안 이 기생에게 뽑아
준 선비들의 앞니가 한 주머니 가득 들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이 이야기를 듣고 시를 지어 비꼬았다.
나이 어린 풍류남아 깨닫지 못했구나(年少風流見不會)
기생에게 정절 강요 그 어찌 가능한가(娼家責禮竟何能)?
저 기생 인정 없다 말하지 말아 다오(莫言諮物恩情簿)
이 빠지고 대머리는 오래 사는 징조로다(齒害頭童赤壽徽)
<조선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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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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