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式 作成法(11)
왕정이 마무리 되고 근대의 사회에서는 더욱 개방적이고 활발한 동서문물의 교류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뤄지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은 세계대전을 경계선으로 해서 전후가 뚜렸하게 나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명리학에서도 이무렵에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새로운 이론들이 속속 등장을 하게 되는 중흥의 시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우선 서락오(徐樂吾) 선생이 지은 자평수언(子平粹言)을 보면 비로소 야자시라고 하는 용어가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에서는 子正 이전은 야자시라고 해서 금일의 일진을 그냥 사용하고, 자정이 지나면 다음날의 일진을 사용한다는 언급이 되어있다. 그렇다면 자정을 날짜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서구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발생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동시대의 원수산 선생도 그의 저서인 명리탐원(命理探原)에서 야자시에 대한 것을 설명하면서 채용하고 있느 대목이 보인다.
또 오준민 선생의 명리신론(命理新論)에서도 역시 어김없이 야자시에 대한 이야기를 채용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쉽게도 위천리 선생의 저서를 구하지 못해서 확인을 하지 못하겠는데, 일단 위의 세 분이 채용했다는 것은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왜냐면 이분들은 자평명리에 대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분들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야자시설을 채용할 정도라면 이미 나름대로 상당한 임상을 해보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가장 방대한 자료라고 생각이 되는 사주첩경(四柱捷徑)에서는 야자시를 인정하고 있다. 야자시가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문제의 그 쥐 발가락 이야기까지 등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그대로 사용하신 것 같다.
도계(陶溪) 박제완 선생님의 명리요강(命理要綱)에서는 또한 야자시를 따지지 않는다고 하신다. 이유는 당연히 기본원칙에서 벗어나는 이론이라는 말씀이고 또한 타당하신 견해라고도 생각된다.
대충 살펴봤지만, 야자시설은 근대에 발생한 것으로써 상당히 많은 학자들이 이것을 긍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물론 반대를 하는 학자님도 상당히 계시다는 것도 역시 현실이다. 그러면 낭월이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일단 이 강의는 낭월이가 떠버리는 강의이기 때문이다. 낭월이는 물론 야자시를 사용하고 있는 입장이다.
다만 이것은 낭월이의 방법이니까 벗님은 또 벗님의 의사에 따라서 원하는 대로 응용을 하시기 바란다. 구태어 어느 방법이 옳다고 하는 생각은 할 수가 없겠기 때문이다. 다만 이론적으로는 야자시설은 어울리지 않지만, 실제로는 해당이 된다는 정도로 마무리를 하고 싶은 생각이다. 결국 낭월이의 이야기는 자정이 날짜의 기준점이라고 하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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