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때 유머

옛얘기로 하는 며느리의 고백

eorks 2019. 8. 15. 05:31

[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제5부 끓어오르는 열정, 억제치 못하고
[제5ㅡ22화]옛얘기로 하는 며느리의 고백
한 신부가 시집을 오니 시어머니가 워낙 고담(古談), 즉 옛날 이야기를 좋아했다. 시어머니는 날마다 여가만 있으면 며느리에 게 옛날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조르니, 며느리는 시집오기 전 어 른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몇 가지 들려드렸다. 그리고 나니 며 느리는 들려드릴 이야기가 더 이상 없었다.

며느리가 알고 있는 얘기를 모두 다 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할 이야깃거리가 없다고 해도, 시어머니는 막무가내로 계속 무슨 얘기든지 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며느리는,

"어머니! 그러시면 제가 근래에 겪은 일도 옛얘기가 될 수 있 는지요? 어른들에게서 들은 옛이야기는 하나도 남은 것이 없습 니다."
하고 여쭈었다. 그랬더니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겪은 일도 물론 고담이 될 수 있다고 하면서 들려 달라고 했다.

이에 며느리는 자신의 경험이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집오기 전 혼인날을 받아 놓은 어느 날 해가 질 무렵인데, 집에 길어다 놓은 물이 다 떨어지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녁밥 을 짓기 위해 우물에 물을 길러 갔습니다. 우물 속을 들여다보면 서 허리를 구부려 두레박을 넣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허리를 잡 아끄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서 돌아보니 이웃집에 사는 김씨 총 각이었고, 무어라고 말할 여유도 주지 않고 그대로 우물 옆에 있 는 삼밭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어머님, 정말 얘기를 계속해도 되겠습니까?"

여기까지 얘기한 며느리는 열심히 듣고 있는 시어머니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재미있는 얘기라면서 끝까 지 들려 달라고 했고, 그래서 며느리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삼밭 가운데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총각이, `좋아하는 너를 그냥 시집보내기가 아까워서 너를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 이니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라고 말하며, 제 한쪽 다리를 높 이 들어 총각의 한쪽 팔에 걸었습니다. 저는 넘어질 것 같아 몸 을 의지하며 머리를 그의 가슴에 파묻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어 떻게 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한쪽 손으로 제 엉덩이를 끌 어당기고 어떻게 몸을 흔들어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저는 저절 로 눈이 감기면서 말문이 막히고 사지에 힘이 탁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어머님! 저는 아직도 그게 무엇을 한 것인지 모 르고 있습니다. 저의 이런 얘기도 정말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고 담이 될 수 있는지 그것조차도 모르겠습니다."

점점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얘기를 다 들은 시어머니는, 며 느리가 처녀 때 정숙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고 꾸짖으며, 친정으 로 돌아가라면서 쫒아내 버렸다.

며느리가 친정으로 쫒겨 가면서 평소 가까이 지내던 옆집에 들러 작별 인사를 했다. 그 때 옆집 부인이 왜 쫒겨 가느냐고 묻 기에, 신부는 사실대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얘기를 들은 옆집 부인은 화를 내면서, 그만한 일로 쫒겨 갈 필요가 없다고 하며 이렇게 말해 주는 것이었다.

"새댁! 내 말 잘 들어, 새댁 시어미는 예전에 젊었을 때 북쪽 에 있는 절의 스님과 몰래 정을 통했어, 그것도 한두 번 실수로 그런 게 아니라 홀랑 빠져서 밤낮없이 쫒아다녔단 말이야, 그래 서 동내 사람들이 간통한 여자의 대표라고 하여 `조리돌림`을 시 켰거든, 커다란 북을 짊어지우고 크고 무거운 둥그런 부마(負磨) 맷돌을 머리에 이게 한 다음, 군인들이 사용하는 긴 화살을 비녀 대신 머리에 꿰어서, 이런 모습으로 온 마을을 돌아다니게 하는 조리돌림을 시켰었지, 그때 동내 사람들과 아이들이 죽 따라다 니면서 지고 있는 북을 치기도 하고 돌맹이를 던지기도 하여 큰 모욕을 당하게 했다우, 그렇게 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제 행실이 그런 주제에 어찌다가 총각에게 끌려가 실수한 며느 리를 어찌 쫒아낸단 말이야? 새댁! 지금 바로 시어미에게 가서 이 애기를 똑똑히 전해요, 그러면 아마도 꼼짝 못하고 새댁을 쫒 아내지 못할걸."

이 이야기를 들은 며느리는 친정으로 가지 않고 다시 시집으 로 들어갔다. 며느리를 본 시어머니가 막 소리치면서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에, 며느리는 한말씀만 드리고 가겠다고 하며 마루 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시어머니에게 조금 전 옆집에서 들은 이 야기를 그대로 공손하게 얘기하니, 시어머니는 화를 내면서 펄 쩍 뛰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세상에 그런 불명예스러운 얘기를 너에 게 했어? 그런데 당시 내가 짊어진 북은 커다란 북이 아니라 조 그맣고 네모난 작은 소고였어, 그리고 머리에 인 맷돌도 서서 돌 리는 크고 무거운 `큰 맷돌`이 아니라 한 손으로 돌리는 작은 맷 돌이었고, 또 머리에 꽂은 것도 군인들이 전쟁에서 쏘는 그런 큰 화살이 아니라 무당이 귀신 쫓는 데 쓰는 작은 쑥대 화살[蓮失] 이었단다. 그 여편네가 쓸데없이 아무것도 모르는 너한테 날 헐 뜯는 소리를 했구나, 너 친정으로 갈 것 없이 오늘부터 우리 집 안에만 틀어박혀 꼼짝 말고 일이나 해,"

이렇게 말한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나무라지도 않았고, 이후 로는 옛날얘기도 들려 달라고 하지 않더라.<조선 후기>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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