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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막은 보라 하여 중보라 한다

eorks 2019. 11. 7. 00:05
野談 ♡ 野史 ♡ 說話

스님이 막은 보라 하여 중보라 한다
    『중보거리의 슬픈 사랑 광양설화 / 설화』 광양 옥룡면 죽천리 학사대 밑에 중보라는 보가 있다. 그래서 그 보 근처 일대를 중보거리라 부른다. 중보거리에 는 땅은 많은데도 수리 시설이 없어서 벼농사 짓기가 어려 웠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마을 사람들은 보를 막아야겠다 고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당시는 사람들이 모두 띄엄띄엄 살다보니 한데 모 이기도 쉽지 않았고, 다들 먹고 살기가 팍팍하다 보니 누 군들 나서서 일을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 보를 막아야 겠다는 마음만 있을 뿐 정작 보를 막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한 700년 쯤 전, 중보거리 인근에 얼굴이 달 덩이 같은 오씨 성을 가진 청상과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시집온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이 죽는 바람에 십 년 넘게 수 절하고 있었다. 그런데 워낙 미모가 빼어났는지라 인근 총 각들은 물론 나이 지긋한 영감님들마저 먼발치서나마 그녀 를 보기 위해 안달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에게 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중보거리와 얼마 안 떨어진 백운산 송천사에 젊은 스님이 살았다. 봉강 출신인 그는 열 살 되었을 때 출가를 하여 십 여 년 동안 구도의 길을 걷고 있었다. 젊은 스님 역시 외모가 출중하여 사찰을 찾는 여인네들에 게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구도의 길을 걷고 있는 승려의 신분이기에 스님 역시 그 여인네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 았다. 어느 날, 스님이 탁발을 하기 위해 절을 나섰다. 정처없이 무작정 걷던 스님이 중보거리 근처에 이르렀을 때 너무도 목이 말랐다. 그래서 물을 한 모금 얻어 마시기 위해 근처 마을에서 우물을 찾았다. 마침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는 여인을 보게 되었다. 스님이 정중하게 부탁하였다. “소승 목이 말라 그러니 물 한 모금 얻어 마실 수 있겠습니 까?” 그러자 여인이 바가지에 물을 떠서 스님에게 주었다. 스님 에게 물을 주기 위해 돌아서는 여인의 모습을 본 순간 스님 은 갑자기 가슴 속에서 뭔가가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여인 역시 스님을 보더니 한순간 움찔하였다. 그날 이후 젊은 스님은 상사병에 빠지고 말았다. 불가에 귀의한 몸으로 세속의 여인을 보고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 을 인정하기가 죽기보다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 다. 그래서 면벽 수련도 해보았지만 도리가 없었다. 눈을 감아도 여인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는 큰스님께 고백을 하였다. “큰스님, 죄송합니다. 마음속에 있는 죄악을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한참동안 젊은 스님의 이야기를 듣던 큰스님이 빙그레 웃 더니 이야기하였다. “그렇다면 네 마음 가는 대로 행하도록 하라. 모든 것은 업 보이니라.” 크게 혼날 줄 알았는데 큰스님이 허락하는 듯한 말씀을 하 시자 젊은 스님은 힘을 얻었다. 그래서 마음 다스리기를 포 기한 스님은 그날 이후 틈만 나면 중보거리로 갔다. 어떻게 해서든 한번이라도 여인을 만나서 하소연을 해보려고 밤낮 으로 동네 앞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는 여인을 스님이 우연히 보게 되었다.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여인에게 다가간 스님이 염치 불구하고 사랑 고백을 하였다. “얼마 전 그대를 처음 본 후로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승려의 몸으로 그대를 사랑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화들짝 놀란 여인이 몇 발자국 물러서며 경계의 태세를 보이자 스님이 느닷없이 눈물을 흘리며 말을 하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 간절합 니다. 하지만 이런 제 마음을 저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스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여인이 잠시 후 스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사실 달포 전에 우물가에서 스님을 처음 본 과부 역시 젊고 훤칠한 스님에게 끌렸던 것이다. 과부 역시 자신의 그런 마음을 다스리려고 허벅지를 꼬집 으며 밤을 지샜다. 그래서 그런지 여인의 태도는 스님과는 달리 다소 차분하였다. 밑도 끝도 없이 스님이 사랑 고백을 하는데도 여인이 의연한 모습으로 말을 건넸다. “수절하는 과부로서 어찌 바로 스님 말씀을 따르겠습니까? 그러나 저를 그리도 사모한다니 그러면 이 자리에서 내기 를 해서 스님이 이기면 스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젊은 스님은 여인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무조건 그러자고 했다. 내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님이 여기에 보를 막으십시오. 그러면 저는 집에 가서 삼을 베어 베를 짜가지고 스님 옷을 지은 후에 밥까지 지어 오겠소. 제가 오기 전까지 스님이 보를 다 막으면 스님이 이기는 것이고, 보를 막지 못한다면 제가 이기는 것입니다.” 내기라는 말에 간단하게 생각하였던 스님은 막상 내기 조 건을 들어보더니 당황하는 빛이 역력하였다. 하지만 삼베 로 베를 짜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기에 잠시 생각에 잠겼 던 스님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이기 면 여인을 얻는 것이오, 져도 어차피 못 만날 인연이었다 생각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스님은 즉시 보를 막기 시작하였다. 인근에 있는 돌이란 돌은 다 주워다 차례차례 보를 막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보가 완성되려 하면 물살에 무너지고 말 았다. 과부 역시 재빨리 집으로 돌아가 삼밭에서 삼을 베어 그것을 삶은 후 베를 짜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람 옷을 한 벌 지을 만한 베를 짜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기를 시작한 지 열흘째 되던 날, 드디어 옷이 완성되었다. 그래서 과부는 재빨리 밥을 지어 스님이 보를 막고 있는 곳으로 갔다. 멀리서 살펴보니 스님이 거의 보를 다 완성한 것으로 보였 다. 졌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인의 볼이 발갛게 상기되었 다. 내심 이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여인이 멀리서 스님을 향하여 소리쳤다. “스님 진지 드십시오.” 마치 빨리 마무리를 하라는 말투였다. 여인이 다가오기 직 전 스님은 어느새 보를 다 막고 마지막으로 돌 하나만 남겨 놓은 상태였다. 이 돌 하나만 놓으면 보가 완성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이 승리하게 될 것이다. 여인과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긴장하였는지 스님이 막 마지막 돌을 놓으려는 순간 돌이 미끄러지더니 그만 풍덩 하고 물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그 순간 스님은 내기에서 자기가 패했다고 생각하였다. 진지 드시라는 여인의 목소리가 계속 고막을 때렸기 때문 이다. 스님이기 이전에 남자로서 여자에게 내기를 졌다는 생각이 앞섰다. 하지만 연모하는 여인이 마지막 한 순간을 참아주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 때문에 스님은 더욱 크게 낙담하였다. 그래서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그대로 자신이 쌓은 보에 머리를 박고 말았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과부가 서둘러 달려와 보니 스님이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인은 죽어가는 스님을 부둥켜안고 통곡하였다. “스님, 스님이 이긴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겨우 여인의 목소리를 들은 스님이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스님이 죽자 과부는 자기가 너무 경솔했다고 생각하였다. 말없이 다가왔으면 스님이 죽지 않았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한편으로 과부가 젊은 사내, 그것도 스님에게 마음 을 주었으니 이미 부정한 몸이라고 자책하였다. 그래서 스 님을 장사지내고 나서 마지막 돌을 찾아 보를 완성시킨 후 과부 역시 스님이 막은 보에 몸을 던졌다. 그리하여 죽천리 학사대 밑에 있는 보를 스님이 막은 보라 하여 중보라 한다. 그리고 과부와 스님의 슬픈 사랑이야기 는 지금도 중보거리에 전해온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백두대간^^........白頭大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