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록유산 /프랑스 /피에르 드 비레 시대 클레르보의 시토회 수도원 도서관
[The Library of the Cistercian Abbey of Clairvaux at the time of Pierre de Virey (1472)]
국가 : 프랑스(France)
소장 및 관리기관 : 대(大)트루아 미디어테크(Mediatheque de l’Agglomeration Troyenne), 몽펠리에 대학간도서관(Bibliotheque Interuniversitaire de Montpellier), 프랑스:국립도서관(Bibliotheque Nationale de France), 라온시립도서관(Bibliotheque Municipale de Laon), 생트-쥬느비에브 도서관(Bibliotheque Sainte Genevieve), 유럽:벨기에 몽스에노대학교(Universite de Mons Hainaut) 중앙도서관, 영국도서관(런던 NW1), 헝가리 국립 세체니 도서관(Orszagos Szechenyi Konyvtar), 이탈리아 피렌체의 라우렌치아나 도서관(Biblioteca Medicea Laurenziana)1)
등재연도 : 2009년
베르나르 드 퐁텐(Bernard de Fontaines)은 1115년에 클레르보 수도원(Clairvaux Abbey)을 설립하여 1153년에 죽을 때까지 수도원을 맡았다. 이 수도원은 시토회의 세 번째 자매 수도원으로서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큰 수도원 중의 하나이며, 중세 말에는 유럽 전역의 530개의 수도원이 이 수도회에 속해 있었다.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기록물은 클레르보에 있는 도서관에 소장된 필사본으로, 1472년에 수도원장 피에르 드 비레(Pierre de Virey, 1471~1496)가 편찬한 목록에 담겨 있다. 당시 이 도서관에 있던 1,790점의 필사본 가운데 일부가 프랑스 혁명기와 수도원이 해체되고 난 후 트루아(Troyes), 파리(Paris), 몽펠리에(Montpellier)로 흩어지고, 현재 1,115점이 남아 있다. 프랑스 혁명기(1472년부터 현재까지 문서 소실의 원인이 되었던)에 실시한 분류작업을 모면했던 필사본들이 트루아에 있는 트루아 멀티미디어 도서관(Troyes Multimedia Library)의 공공 소장품이 되었고, 프랑스 국립도서관과 몽펠리에 소재 의학부 도서관의 필사본이 되었다. 피에르 드 비레의 3가지 목록은 세계 기록유산에 등재된 문서 컬렉션에 포함되어 있다.
15세기에 이미 서양에서 중세의 중요한 장서였던 이 소장품들은 현재 양과 보존 상태 면에서 프랑스 중세의 가장 중요한 장서들이다. 더군다나 피에르 드 비레 시대에 클레르보에 있던 이전의 도서관 장서들은 특출하게 일관성이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점들을 예로 들 수 있다.
- 수도원이 학문의 산실이었던 시대에 중세의 수도원은 백과사전적 장서를 갖추고 있었다.
- 르네상스의 동이 틀 때까지 지식을 생성하고 복제하고 전수하는 중심이었던 중세 수도원의 필사실에서 풍부한 기독교 문서들이 작성되었다.
- 클레르보의 베르나르 영향 아래에서 시토회 수도원과 개혁운동에 의해 중세의 지적·종교적·예술적 창작에 역할을 하였다.
잘 보존된 이 장서들은 결집된 방식에 있어서 특히 일관성이 있고, 양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므로 대체가 불가능하다. 진정성과 완전성도 특출하므로 세계적으로 중요하다.
현재는 대부분의 장서가 트루아 멀티미디어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나머지 일부가 다른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세계적 중요성‧고유성‧대체 불가능성 :
1115년에 수도원이 건립되었을 때 클레르보에 도서관을 만들었으며 몇 단계로 추가되었다.
1. 13세기 중반까지 필사실에서 대부분의 필사본을 작성하였다. 수도원장의 희망에 따라 도서관의 소장물이 급격히 증가하였고, 수도원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기부금이 많이 들어왔다.
2. 수도원 도서관들이 활동을 중단한 시기였던 14세기 중반까지 클레르보 수도회에서는 파리 대학교와의 관계, 특히 시토회 수도사들의 교육에 탁월한 역할을 했던 생베르나르 대학(College Saint-Bernard)의 교수 활동을 통해 꾸준히 그 장서가 늘어났다. 대학에서 제공하는 대학 필사본으로 도서관의 장서가 상당히 풍부해졌고, 기부금이 늘어나면서 더욱 추가되었다.
3. 15세기에 수도원장들은 인본주의의 첫 출현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도서관이 다시 한 번 수도원 생활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피에르 드 비레는 도서관을 관장하고 도서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데 전력을 바쳤다.
[네이버 지식백과] 피에르 드 비레 시대 클레르보의 시토회 수도원 도서관 [The Library of the Cistercian Abbey of Clairvaux at the time of Pierre de Virey (1472)]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세계기록유산(영/불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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