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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록유산 /바베이도스, 자메이카, 파나마, 세인트루시아, 영국, 미국 /실버맨 : 파나마 운하의 서인도 제도 노동자 기록물 (202)

eorks 2019. 12. 22. 00:10

세계기록유산 /바베이도스, 자메이카, 파나마, 세인트루시아, 영국, 미국 /실버맨 : 파나마 운하의 서인도 제도 노동자 기록물
[The Silver Men : West Indian Labourers at the Panama Canal]

국가 : 바베이도스(Barbados), 자메이카(Jamaica), 파나마(Panama), 세인트루시아(Saint Lucia), 영국(United Kingdom), 미국(United States of America)
소장 및 관리기관 : 바베이도스 박물관·역사 협회(서인도제도 바베이도스 브리지타운, 세인트앤 소재), 자메이카 국가문서보관소·기록국, 세인트루시아 국가기록보관소, 파나마 대양간 운하박물관(Museo del Canal Interoceánico de Panamá), 프림로즈 맬릿-해리스(Mrs. Primrose Mallet-Harris, 영국 서머싯), 국가기록보관소-큐(Kew), 국립 문서기록 보관청, 칼리지파크에 소재한 국가기록보관소, 플로리다대학교, 조지 A 스매더스 도서관1)
등재연도 : 2011년
파나마 운하는 많은 서인도 제도 사람들의 경험과 노력으로 건설되었다. 파나마 운하의 건설은 노예로부터 해방된 서인도 제도 사람들이 1838년 이후 자발적 이주라는 움직임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실버맨 : 파나마 운하의 서인도 제도 노동자(The Silver Men: West Indian Labourers at the PanamaCanal) 기록물」은 바베이도스·자메이카·파나마·세인트루시아·영국·미국 등 여러 국가에 나누어 보관되어 있는 기록물이다(‘실버맨’이란 서인도제도에서 온 비숙련노동자를 뜻함).이 기록유산은 각각이 만들어진 상황과 사건만큼이나 고유하다.

50,000명 이상의 서인도 제도 노동자들은 파나마 지협으로 이주했으며 그들의 배우자, 여자친구, 자녀들도 그 뒤를 따랐다. 이것은 1881년 프랑스가 해면 운하를 건설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시작되어, 미국에 의해 갑문식 운하가 성공적으로 개통된 1914년까지 계속되었다. 이렇게 많은 수의 노동자가 파나마로 이주해오자 서인도 제도 식민지 당국은 계약에 따라 운하 건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수를 관리해야 했다. 그래서 식민지 당국은 이주자 명부, 공식 보고서, 총독 보고서, 경찰 보고서 등을 만들게 되었다. 이 기록들은 모두 서인도 제도에서 나온 수천 명의 사람들의 이동뿐 아니라 이들을 사법적·정치적으로 어떻게 통제했는지도 기록되어 있다.

확보된 노동력으로 대농장을 운영하던 기득권자들은 이 대대적인 이주 때문에 위협을 받았다. 동시에 그 지역의 식민지 정부는 기득권자들이 ‘노예’처럼 생각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와 그에 알맞은 작업 환경을 제공할 법적 틀을 만듦으로써 선심을 쓰는 것처럼 보이려고 했다. 그러나 사실 이 법령은 서인도 제도 사람들의 이주로 인해 느슨하게 통제하는 듯하지만 나중에 노동자들이 탈출하려고 하면 언제라도 노동자들을 통제할 심산으로 만든 것이다.

파나마 운하 건설을 위해 노동자를 모집하는 데는 외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내용은 기록 유산에 잘 나타나 있다. 이 기록유산에는 영국령 서인도 제도 사람들이 대영제국으로부터 대대적으로 빠져나와 파나마에 정착한 것을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또 수만 명의 서인도 사람들이 파나마에서의 일상생활과 힘들었던 작업 환경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모든 활동을 본 식민지 당국자는 노동자의 정착과정, 노동자의 지위, 노동 조건 등에 대해 「식민부 장관실 기록(Colonial Secretary’s Office Records)」, 「파나마에 관한 중앙정부 기록(Central Government Department records re Panama)」, 그 밖의 여러 법적 기관들의 기록 등으로 남겼다.

19세기 중엽부터 운하가 개통되기까지 10만 명 이상의 서인도 제도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집을 떠나 가족과 헤어져 새로운 생활을 찾아 이주했다. 이러한 이주는 서인도 제도 사람들에게는 상상할 수 해보지 못한 경제적 개선 효과를 의미했다. 1853년~1918년까지의 은행 예금 장부에는 수만 명이 ‘파나마 돈’을 저축은행(Savings Bank)에 예금했던 금융 거래가 남아 있다. 이 예금 장부는 근본적으로 서인도 제도 사람들이 새로운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는 뜻이기도 하며, 서인도 제도 사람들의 경험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우표 수집 관련 기록이나 사진 기록은 20세기 초의 수십 년 동안 두 지역 사이에 있었던 엄청난 양의 서신 왕래를 증거하고 있다. 이 기록유산 중 우표나 서신의 기록에 따르면 운하관리구역(Canal Zone)에 있던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가족 및 친척과 연락하기 쉽도록 자체적으로 우표를 발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덧붙여 이 기록유산에 포함된 다양한 매체(사진, 우표 등의 기록물들)에 나타난 그림들은 파나마 운하의 굴착과 건설 과정과 관련된 것이며 운하 건설에 참여한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성공적인 운하계획에 대해 기록해놓은 「지협운하위원회(Isthmian Canal Commission)의 기록」 또한 19세기 말에 처음 이루어진 프랑스의 운하 건설 시도와 19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파나마철도회사(Panama Railway Company)의 초기 기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기록들은 모두 서인도 제도의 노동자들을 파나마 지협으로 끌어들인 계획들이었다. 이 유산은 세계기록유산에 빼놓을 수 없는, 파나마에서의 서인도 제도 사람들이 겪은 경험을 보여주는 핵심적 기록유산이다.

세계적 중요성·고유성·대체 불가능성 :
이 기록유산은 노예 해방 이후 20세기 초 카리브 해 사람들에 대한 대규모 집중 이주를 보여주는 고유한 증거이다. 이 기록은 수만 명의 노동자가 파나마 지협으로 이동한 내용을 보여주면, 당시 이곳에 도착한 상당수는 나중에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정착했다.

서인도 제도 사람들은 운하의 건설 현자에서 일하고자 파나마로 이주해왔다. 이주는 특별한 패턴을 지녔는데 이는 대영제국 세력을 약화시킬 만한 현상이기도 했다. 그래서 식민지 정부는 이를 통제하고 완급을 조절하려고 하였다. 당시 지협위원회는 직접적·간접적으로 이주 노동자를 모집했는데 이것은 매우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식민지 정부는 이들을 통제할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서인도 제도 사람들의 가정생활과 노동조건은 형편없었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투자 및 은행 기록은 놀라울 정도였다. 이것은 단순히 수천 명 노동자들의 경제력의 증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인도 제도는 물론 파나마에서 노동자들이 그들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온갖 난관을 물리치고 더 나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불굴의 용기와 의지를 보여준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주민 명부에는 시민의 이동 및 활동이 기록되어 있는데, 심지어 몇몇 마을의 경우 모든 남자들이 모두 파나마로 이주한 경우도 있을 만큼 노동자들의 이주가 식민지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입증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카리브해 사람들과 중앙아메리카 및 북아메리카 사람들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독특한 기록인 것이다. 사람들이 이동하면서 이들은 고국에 남아 있는 친척 및 친지들과 지속적으로 연락하기 위해 전 대륙에 걸쳐 광범위한 통신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기록도 있다.

파나마의 기록은 이미 세계기록유산의 일부로 등재된 ‘1817년~1834년 영국령 카리브해의 노예 명부’와 ‘수에즈 운하 기념물’ 등의 공식 기록과 관련 있다. 그러나 ‘노예 명부’는 주로 아프리카로부터 강제 이주를 보여주는 제국주의적 계획을 기록한 것이며, 반면 ‘파나마 기록’은 서인도 제도의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해외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선택하여 파나마로 이주한 현상을 담고 있다. 한편 ‘수에즈 운하 기념물’의 경우는 수에즈운하공단(Suez Canal Authority)과 수에즈회사(Compagnie de Suez)의 공식 기록으로서 ‘파나마 기록’과는 관점 자체가 아주 다르다. 파나마 기록은 서인도 제도 노동자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들이 어떻게 견뎌나갔고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담은 인간적인 이야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파나마 운하 건설 기간 동안 있었던 이 경이로움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현대적인 기록 매체가 이용되었다. 기록 유산에 포함된 사진, 입체 영상, 기념물 소책자 등은 새롭게 출현한 사진·우표 제작·사진 인쇄 등 그래픽과 관련된 기술을 통해 당시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놀라운 공학적 성과를 축하하며 그 소식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려고 한 것이다.

덧붙여 기록유산에 포함된 물건, 기록, 사진, 필름 등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것은 이 서인도 제도 문화에 대한 시각적 증언을 보존하는 것으로, 이 유산의 문화적 타당성에 대한 지식 및 연구, 그리고 보다 나은 이해를 증진시켜 준다. 이 유산은 서인도 제도 사람들의 생활과 작업, 그리고 파나마가 국가로 수립되는 과정에 그들이 미친 영향 등 여러 측면을 바라볼 수 있는 독특한 성격을 지닌 자료이다. 이 컬렉션은 문화의 전달 과정, 파나마에 정착한 초기 서인도 사람들의 문화적 기여에 대해 더욱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기록유산의 세계적 중요성은 파나마 운하가 대서양과 태평양 사이의 항해 시간을 단축시킴으로써 국제적인 해상 교역의 패턴을 변혁시켰다는 점과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영향력에 근거하고 있다. 운하로 인해 위험한 항로를 벗어날 수 있어 많은 선원들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왕래하려면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수로가 있는 혼 곶을 돌아가야 했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도 운하는 국제무역의 패턴을 완전히 바꾸었으며, 운송비용과 운송시간을 단축시켰고, 북아메리카의 동해안과 서해안 사이의 접근을 개선했다. 현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파나마 운하에 대한 이 기록유산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은 서인도 제도와 중앙아메리카의 지협을 넘어서 전 세계적이다. 해운·경제·문화·사회적으로 20세기와 그 이후 역사의 성격을 바꾸어 놓은, 인간이 자연을 극복한 이 성과로 인해 파나마 운하 관련 유산은 역사적 중요성이 지속되고 있는 중요한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실버맨 : 파나마 운하의 서인도 제도 노동자 기록물 [The Silver Men : West Indian Labourers at the Panama Canal]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세계기록유산(영/불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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