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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록유산 /체코공화국 /526편의 대학 논문 컬렉션 (1637~1754)(230)

eorks 2020. 1. 20. 00:13

세계기록유산 /체코공화국 /526편의 대학 논문 컬렉션 (1637~1754)
[Collection of 526 prints of university theses from 1637 to 1754]

Mars a Minerva ochranují uherského prince Josefa

Oslava císare Leopolda I. jako ceského krále

Oslava jezuitské misijní cinnosti s Kristem a sv. Ignácem.

Oslava Leopolda I. s dedicem trunu

Podobizna hrabete Jana Václava z Gallasu

Pražský mariánský sloup – duchovní stred Evropy

Zápas archandrla s d'áblem


국가 : 체코공화국(Czech Republic)
소장기관 : 체코공화국 국립도서관
관리기관 : 필사본·초기 인쇄도서과
등재연도 : 2011년
‘대학 논문 컬렉션 526편(1637~1754)(Collection of 526 prints of university theses from 1637 to 1754)’은 체코의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가장 귀중한 자료 중의 하나이다. 아울러 단일 기관, 여기서는 카를 대학교(Charles University)의 철학·예술 대학과 관련된 동종의 컬렉션으로는 최대 규모이기도 하다. 이 컬렉션은 판본에 매우 큰 그림이 포함된 인쇄본으로서, 대학 토론의 중요한 안건이 되고는 했던 다양한 주제의 미술 디자인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대개의 경우 학사나 박사 학위로 귀결되었다. 16세기 전반기에 유럽의 대학들이 이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 논문들은 17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동안에도, 특히 1534년 성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St. Ignatius de Loyola)가 창설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수도회 중의 하나인 예수회 덕분에 큰 인기를 누렸다. 동일한 형식, 다시 말해 대형 판본은 다른 종파의 수도회(성 베네딕도회, 프레몽트레회 등)가 관리하는 동시대의 타 대학들로 다수 이용하였다.

예수회는 반종교개혁 세력으로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확대되었고, 덕분에 고등교육 기관의 회원도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당시에도 이미 존재하였던 프라하 대학교를 포함한 주요 대학교에서의 관리권을 점차 인수하기 시작하였다. 예수회는 유럽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는 선교사로, 전도자로 봉사하던 그 회원들 덕분에 바로크 문화가 확대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프라하의 대학 논문 컬렉션은 단일 기관, 즉 프라하 대학교의 철학·예술대학과 연관되었으며, 본래의 장소, 다시 말해 옛 프라하 예수회 대학교로 사용되었고 오늘날에는 체코공화국의 국립도서관이 들어선 유서 깊은 클레멘티눔(Clementinum) 건물에 오늘날까지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는 프라하 컬렉션보다 규모가 큰 대학 논문 컬렉션은 독일의 아우구스부르크의 국립-주립도서관이 유일하다(약 700편). 그러나 아우구스부르크의 논문은 단일기관과 연관된 하나의 컬렉션이 아니다. 아우구스부르크 판화 작업실에서 생산된 제작품의 일부로서 수집되었으며, 별도로 보관된 것이 아니고 일반적인 판화 컬렉션 안에서 다른 작품들과 뒤섞여 보관되었다.
점에서 매우 독창적이다. 게다가 양이 방대하며(526편) 예를 들어 대학 토론 논문의 컬렉션 중 단일 기관과 연관된 것으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것(올로모우츠(Olomouc) 대학교의 컬렉션)은 ‘고작’ 23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존 상태 또한 훌륭하다. 도상을 이용한 논문이 가장 인기가 높고 폭넓게 이용되었던 1637년부터 1754년에 걸친 이 컬렉션은 그 외양에 있어서의 점진적 변화 양상을 그대로 보여 준다. 해당 기간에 끊임없이 보존된 논문들은 마치 바로크 도상학의 연대기를 보여 주는 듯하다. 따라서 프라하의 인쇄본 컬렉션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보아도 독창적이며 그 방대함, 조밀함, 그리고 단일기관과의 연관성 덕분에 17세기에서 18세기 다른 교육 기관의 역사와 관련하여 일정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이상적인 모델 자료이다. 이처럼 이 컬렉션은 특정 시기의 대학 환경에 대해 우리의 지식을 확대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문화사와 예술사의 관점에서 비견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본 컬렉션은 또한 예수회와 밀접하게 연관된 대학 내 철학 연구의 내용에 관해서도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우리로 하여금 동시대의 대학 의식에 관한 더욱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술적 관점에서 보면 이 대학 논문 컬렉션은 대개 저자와 판화가 2인의 작업으로 완성된 디자인 덕분에 특히 흥미롭다. 디자인은 풍부하고 풍자적이며 매우 섬세하고 세밀하다. 이 컬렉션이 지닌 이런 특징들은 프라하와 유럽 다른 도시들 사이에 잦은 접촉이 이루어졌음을 보여 준다. 그 인쇄본들이 대표적으로는 독일의 아우구스부르크(Augsburg)를 위시하여 로마, 베네치아, 빈, 그리고 브로츨라프(Wroclaw)를 포함하는 유럽 최고의 판화가들과 긴밀하게 이루어진 협력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라하 컬렉션은 유럽 바로크 문화 중심지들 사이의 광범한 협력관계를 문서로 보여 주는 것이며 바로크 예술 전통 안에서의 문화적·예술적 다양성을 증명하는 자료이다.

이 대학 논문들은 그 예술적·실질적 가치 때문에 처음부터 매우 소중하게 여겨졌으며 그 당시에 이미 수집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예수회의 해산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1770년대부터 점차 대학에서 이용되지 않았고, 그 후 다시는 등장하지 못했다. 계몽주의의 시대에는 과도한 우화적 장치를 특징으로 하는 바로크 예술이 경멸되었으며,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대학 논문의 컬렉션도 많이 파괴되었다. 이 사실 때문에 세계기록유산이라는 관점에서 이 프라하 컬렉션의 높은 가치와 대체 불가능성이 더욱 강조된다.

세계적 중요성·고유성·대체 불가능성 :
프라하 대학교 논문 컬렉션의 세계적 중요성과 고유성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확보된다.
대학 논문 526편으로 구성된 프라하 컬렉션은 단일 기관(여기서는 중부유럽에서 가장 유서 깊은 카를 대학교)과 관련된 동종의 컬렉션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이다. 따라서 이 컬렉션은 유럽의 대학 내에서 유행하였던 바로크 문화 현상을 독창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또한 공공의 논쟁을 발표하기 위해 이들과 마찬가지로 논문을 이용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오늘날까지 보존되지는 못한 유럽의 다른 대학교들이나 다른 종류의 학교들이 비교 자료로서 활용할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 귀중한 사료들에 담긴 문서 부분은 17, 18세기 대학에서의 철학 연구 성격 및 공식적인 대학 의식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더욱 강화한다. 한편, 시각적인 부분은 지극히 정교한 바로크 도상학과 바로크 그래픽 예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주고 깊이를 더해 준다.

이 대학 논문 컬렉션은 그것이 본래의 장소인 프라하의 클레멘티눔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로 인해 그 중요성이 더 강조된다. 이곳은 옛 예수회 대학교로 사용되었고, 프라하 대학교의 철학·신학 연구가 이루어졌던 장소이며 현재는 체코공화국의 국립도서관이 들어선 곳으로 논문이 작성되었던 바로 그곳이다. 대학을 찾은 방문객들은 17세기 또는 18세기부터 이미 전시되고 있었던 이 논문들을 높이 평가하였다.

1622년 프라하 대학교가 예수회의 관리를 받게 된 후로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a) 여제가 추진한 교육 개혁의 시기인 19세기 중반까지 완전히 예수회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프라하 대학교의 철학 및 신학 연구의 중심지는 프라하 구시가에 소재한 클레멘티눔이란 이름의 예수회 대학교였다. 현재 이 건물은 체코공화국의 국립도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526편의 대학 논문 컬렉션 (1637~1754) [Collection of 526 prints of university theses from 1637 to 1754]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세계기록유산(영/불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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