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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폴란드 /브로츠와프의 백주년관(567)

eorks 2020. 12. 31. 09:08

세계문화유산 /폴란드 /브로츠와프의 백주년관
[Centennial Hall in Wrocław]
요약 : 브로츠와프의 백주년관(Centennial Hall in Wrocław)은 강화 콘크리트 건축물 역사상 주목할 만한 건물이다. 박람회장(Exhibition Grounds)에 있는 다목적 레크리에이션 건물로, 1911년~1913년에 독일 건축가 막스 베르크(Max Berg, 1870~1947)가 설계하였다. 건축물 형태는 대칭적인 사엽형(四葉形, quatrefoil) 플랜이며, 중앙에 약 6,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널찍한 원형 공간이 있다. 23m 높이의 둥근 지붕 표면에는 강철과 유리로 된 랜턴으로 마감되었다. 백주년관은 현대 건축술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20세기 초 다양한 세력들의 교류를 보여 주며, 훗날 강화 콘크리트 건축물의 발달에 중요한 준거가 되었다.

브로츠와프의 백주년관

브로츠와프의 백주년관

    국가 : 폴란드(Poland)
    위치 : 남부 실레지아 주(Lower Silesian Voivodship), 실레지아 지방(Silesia Region)
    좌표 : N51 6 25.01,E17 4 37.25
    등재연도 : 2006년
    브로츠와프의 백주년관 :
    브로츠와프 시의 역사는 다양한 세력들과 통치자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이 ‘섬 도시(Island City)’에 붙여졌던 이름들도 브로티슬라(Wrotizla)·브레트슬라브(Vretslav)·프레슬라브(Presslaw)·브레스슬라우(Bresslau)·브레슬라우(Breslau)·브로츠와프 등으로 다양했다. 브로츠와프는 독일의 중요한 주도(主都)이자 주요 도시들 중 하나였고 19세기 후반 급속도로 성장했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전략적 위치에 있으며 다문화 소통의 중요 중심지이기도 했다.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Frankfurt am Main)·베를린·라이프치히·드레스덴(Dresden)에 박람회장이 있는 것처럼, 브로츠와프에도 박람회를 위한 상설 건물을 짓자는 계획이 고려되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Friedrich Wilhelm Ⅲ)가 나폴레옹에 대한 항전을 호소(1813)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가 박람회장 건축의 적기로 꼽혔다. 1910년에 브로츠와프 시의회는 100주년을 기념할 박람회장을 150㏊의 복합 건축 단지에 짓기로 했다. 이 건축 단지 안에는 19세기 중반에 저명한 정원 설계사들이 만든 슈치트니츠키(Szczytnicki) 공원과 1864년~1865년에 지은 시립 동물원이 있었다. 사람들이 휴식을 위해 즐겨 찾는 장소이기도 했으며, 19세기 후반에는 도심과 연결하는 전차 궤도가 만들어졌다. 건축가 막스 베르크는 뮌헨에서 공부했고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활동했으며, 1909년에 브로츠와프 시의 건축가로 선정되었다. 이듬해 그는 다목적 박람회장의 설계를 시작해 1911년 초에 도시 발전 계획의 일환으로써 자신의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시의회는 1911년 6월 28일에 베르크의 설계를 승인했고, 박람회장과 백주년관의 건축에 합의했다.

    그와 동시에 박람회장의 설계를 위한 건축 경연이 치러졌다. 경연 결과, 전반적 공간 배치는 브로츠와프 시 국립 장식미술 아카데미(State Academy of Fine and Decorative Arts)의 학장인 한스 푈치히(Hans Poelzig, 1869~1936)가 맡게 됐고, 최종 프로젝트는 한스 푈치히와 베르크의 협력을 통해 진행되게 됐다. 건축의 중심점은 백주년관이었으며, 대부분의 다른 경쟁자들이 하나의 주요 축을 제안했던 것과 달리, 2개의 주요 축을 기반으로 지대의 전체적인 배치가 이뤄졌다.

    1912년에 브로츠와프 시의회는 4개의 둥근 지붕을 갖춘 정자 형태의 두 번째 박람회 건물 계획을 승인했다. 이 건물은 한스 푈치히가 설계했으며, 나폴레옹 전쟁사와 관련된 전시를 할 용도로 지었다. 행정 건물과 식당이 증축되면서 전체 구조물은 공공 광장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서쪽에 정문이, 북쪽에 푈치히가 설계한 터널형 정자로 둘러싸인 인공 연못이 있었다.

    1911년에 작업장이 개방되었고, 1912년 4월에 기념비적인 아치를 전위적 기법을 사용해 짓기 시작했다. 콘크리트에 압축응력을 가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전기 압축기를 썼는데, 이 기계의 안정성은 베를린의 하인리히 뮐러(Heinrich Müller) 교수에 의해 확인됐다. 건축 자재들은 매우 주의 깊게 선별되었다. 콘크리트 제조에 사용된 시멘트는 오폴레(Opole)의 실레지아 시멘트 공장에서 만든 특수 시멘트였으며, 이 시멘트는 베를린의 그로스 리히터펠데(Groß Lichterfelde)에서 점검 받은 후 사용되었다. 표준적인 구조용 강철 대신 등급이 높은 압연 강철이 강화용 막대로 쓰였다. 높은 압력에 노출된 구획들에는 최고급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골재가 사용되었다.

    브로츠와프 시 당국은 한 달에 걸친 점검을 통해 콘크리트의 강화 과정을 측정했다. 결과적으로 측정된 것보다 6배 높은 강도가 요구되었다. 단단한 목재로 만든 애프스(apse)가 1 : 25의 비율로 축소된 상태에서 6,000㎏의 하중 테스트를 받기도 했다. 고용된 작업자들은 모두 적격했고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빌헬름 황태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1913년 5월의 백주년 박람회에는 100,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했다. 임시 건물들은 박람회가 끝난 뒤 철거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백주년관은 집회소로, 푈치히가 설계한 4개의 돔을 갖춘 정자는 박람회장으로 계속 사용됐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주식회사가 박람회장의 운용을 맡게 되면서 미술 전시회, 콘서트, 연극 공연과 더불어 국내외 산업 박람회가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박람회장은 1924년~1925년에 확장됐다. 베르크의 설계에 따라 커다란 전시회 전시장인 메세할레(Messehalle, 축제 파빌리온(fair pavilion))와 주랑(柱廊)이 늘어선 입구가 증축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다. 1929년에는 독일 공작연맹(Werkbund)의 ‘생활과 작업 공간(Living and Work-space)’ 전시회(WUWA, Wohnungs-und Werkraumausstellung, Workplace and House Exhibition)가 개최됐다. 이 전시회에서 혁신적 기술과 서비스를 갖춘 새로운 건축에 관한 중요 선언이 발표됐다.

    박람회장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도 비교적 훼손되지 않은 채 보존됐다. 1948년에 영토 반환(Reclaimed Territories) 박람회(폴란드에 반환)가 이곳에서 열렸다. 그때 스타니스와프 헴펠(Stanisław Hempel) 교수가 설계한 강철 첨탑(Iglica, 로지카) 기념물이 백주년관 맞은편 광장에 세워졌다. 1948년 8월에 에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참여한 ‘평화 수호를 위한 지식인 국제대회(World Congress of Intellectuals in the Defence of Peace)’가 백주년관에서 열렸다. 1995년~1997년에는 백주년관의 내부 보수 작업을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브로츠와프의 백주년관 [Centennial Hall in Wrocław] (유네스코 세계유산, 세계유산센터(영/불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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