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세계문화유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비에슈그라드의 메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차 다리(588)

eorks 2021. 1. 21. 12:54

세계문화유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비에슈그라드의 메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차 다리
[Mehmed Paša Sokolović Bridge in Viešgrad]
요약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동쪽을 지나가는 드리나 강(Drina River)을 가로지르는 비에슈그라드의 메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차 다리(Mehmed Paša Sokolović Bridge in Viešgrad)는 16세기 말 궁정 건축가인 미마르 코카 시난(Mimar Koca Sinan)이 메흐메드 파사 소콜로비차(Mehmed Paša Sokolović) 수상의 명을 받아 건축하였다. 이 다리는 오스만 제국의 기념비적 건축과 토목 공학의 정점을 보여준다.
11~15m간격으로 11개의 석조 아치로 이루어져 있으며, 강의 왼쪽 제방으로 갈 수 있도록 오른쪽 아치 부분에는 4개의 램프가 설치되어 있어 강의 좌측 제방으로 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총 길이179.5m의 이 다리는 고전적 오스만 시기의 위대한 건축가이자 기술자였던 시난의 대표작이며, 동시대인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와 비견될 만한 작품이다. 이 전체 유적의 우아한 비율과 기념비적인 고급스러움은 당시 건축 양식의 특별한 위대함을 보여 준다.

비에슈그라드의 메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차 다리

비에슈그라드의 메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차 다리

비에슈그라드의 메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차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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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슈그라드의 메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차 다리

비에슈그라드의 메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차 다리

비에슈그라드의 메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차 다리

    국가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
    위치 : 스르프스카 자치공화국(Republika Srpska), 사라예보 광역 지역(Sarajevo Macro Region)
    좌표 : N43 46 53.2,E19 17 16.89
    등재연도 : 2007년
    비에슈그라드의 메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차 다리 :
    비에슈그라드 다리는 오스만 제국의 3명의 술탄 통치 시대 중에서도 오랜 기간 동안 집권했던 메흐메드 파사 소콜로비차 수상(1505~1579)이 의뢰하여 건설한 것이다. 이 다리 건축을 의뢰한 것은 그의 고향 지역을 위한 것이었다. 종교적이며 사회적인 이러한 종류의 건축물을 지음으로써 당시의 권력의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이 다리는 이스탄불에서 온 오스만 제국에 의해 내부 발칸 지역의 계획과 통제라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었다. 이곳의 발전으로 인해 다뉴브 평야를 사라예보와 아드리아 해, 특히 라구사(두브로브니크)의 자유 항구를 잇는 루트가 형성되었다.

    다리의 건축 기간은 오스만 제국의 정점인 시대에 지어졌으며, 이후 술레이만 대왕(1520~1566) 통치 시대가 이어졌다.이때는 이 지역에 평화와 번영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비에슈그라드 다리의 디자인과 건축을 위해 오스만 제국 건축의 수장이었으며 위대한 궁중 건축가이자 기술자였던 미마르 코카 시난이 선택되었다. 그는 이스탄불과 오스만 제국의 여러 지방에서 모스크, 다리, 토목 건축물을 건설하는 등 이미 메흐메드 파사 소콜로비차를 대신하여 사회적·종교적으로 중요한 많은 건축물을 건설했던 인물이었다. 시난은 오스만 제국의 정점에서 전형적이며 고전적인 건축물을 건설한 대표인물이다.

    1571년~1577년에 건설된 비에슈그라드 다리에는 상당한 인력이 동원되었으며, 재정도 많이 투입되었다. 다리는 튼튼하게 건설되었으나, 2세기 반에 걸쳐서 주로 홍수의 피해를 입었다. 1625년과 1875년에 복구 작업을 한 기록이 있다. 1898년 큰 홍수로 인해 이 다리 전체가 잠겨 교각이 흔들리고 들어 올려졌으며 난간이 떠내려가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1911년과 1912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기술자들에 의해 교각을 안정화하고 강화하는 상당한 작업이 실행되었다(교각 4, 5, 6, 7, 8과 9). 당시 다리는 세르비아와의 경계에 위치했기 때문에 군사적인 전략면에서도 매우 중요했으므로, 더욱 두꺼운 석재 난간을 새로 설치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에, 교각 3과 4가 다이너마이트로 인해 폭파되었다(1914~1915). 전쟁이 끝난 후 원래 다리에서 남아 있는 부분을 지탱하고 있던 강철 대들보를 임시적으로 보수했다. 1939년과 1940년에는 원래 디자인을 따라 석재로 재건축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인 1943년에는 5개의 다리 아치가 완전히 소실되었으며 이로 인해 교각 3, 4, 5와 6이 영향을 받았다. 파괴된 아치는 1950년~1952년에 교통 및 도리 관리부에 서 재건했으며 부분적인 모델이 여전히 온전하게 남아 있다.

    1966년에 바지나 바스타(Bajina Basta) 하류 수력 발전소가 건설되었고, 1989년에는 그곳에서 2.5㎞ 떨어진 지역에 비에슈그라드 상류 수력 발전소가 건설되었다. 이 두 건설 작업은 상대적으로 비에슈그라드 다리와 가까워서 강 흐름의 수압 비율을 본질적으로 바꾸어놓았다. 다리 관리 측면에서는 1980년부터 1982년까지 다리를 분석하여 교각 5, 6과 8에서 기반의 복원 작업을 했다. 하지만 이 작업은 기금 부족으로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1986년에는 이 역사적인 다리의 기능을 복제하는 현대적인 다리가 1㎞ 하류 쪽에 건설되었다.

    1992년에는 교각 2의 복원 작업을 시작했으나, 교각 5, 6과 8처럼 역시 기금 부족으로 인해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1992년~1995년에 벌어진 전쟁은 비에슈그라드 다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왼쪽 제방에 있는 진입 경사로는 1991년에 문화재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복구되었으며, 2003년에는 다리 상태로 인해 구조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자동차 출입을 금지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에슈그라드의 메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차 다리 [Mehmed Paša Sokolović Bridge in Viešgrad] (유네스코 세계유산, 세계유산센터(영/불어 원문))

......^^백두대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