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카타르 /알 주바라 고고학 유적
[Al Zubarah Archaeological Site]
요약 : 페르시아 만(Persian Gulf) 연안의 성곽도시 알 주바라(Al Zubarah)는 1811년에 파괴되어 1900년대 초반에 완전히 방치되기 전까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이르는 동안 진주 채취와 무역 중심지로 번성한 곳이다. 쿠웨이트에서 건너온 상인들이 건설한 알 주바라는 인도양과 아라비아 반도, 서아시아에 걸친 방대한 지역들과 무역 관계를 맺었다.
사막에서 불어온 모래의 층에 덮여 궁전, 모스크, 도로, 중정형 주택, 어부의 오두막, 항구와 이중 방호벽, 운하, 성벽, 묘지 등 유적들의 흔적이 보존될 수 있었다. 유적지의 극히 일부분에서 진행된 발굴 작업을 통해 이 지역의 주요 해안 도시에서 지속되었던 도시 무역과 진주 채취의 전통에 관한 탁월한 증거를 발견하였다. 당시의 도시 무역과 진주 채취는 오스만 제국과 유럽 제국, 페르시아 제국의 영향권 밖에서 번성했던 작은 독립국들의 발전을 이끌었고, 궁극적으로는 페르시아 만 연안에서 근대 국가를 출현하게 하였다.
알 주바라 고고유적
알 주바라 고고유적
알 주바라 고고유적
알 주바라 고고유적
알 주바라 고고유적
알 주바라 고고유적
알 주바라 고고유적
알 주바라 고고유적
알 주바라 고고유적
알 주바라 고고유적
국가 : 카타르(Qatar)
좌표 : N25 58 41,E51 1 47
등재연도 : 2013년
알 주바라 고고학 유적 :
탁월한 보편적 가치
페르시아 만 연안의 성곽도시인 알 주바라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이르는 약 50년의 짧은 기간 동안에 진주 채취 및 무역 중심지로서 번성하였다.
쿠웨이트에서 건너온 우투브(Utub) 부족 상인들이 건설한 알 주바라는 고가품 무역, 특히 가장 비싼 진주 수출에 관여하면서 크게 번성하였다. 최고의 전성기 동안 알 주바라는 인도양과 아라비아 반도, 서아시아에 걸친 방대한 지역들과 교역하였다.
알 주바라는 9세기경인 이슬람 초기 시대부터 지속적으로 발달하여 내륙의 정착촌과 공생관계를 형성해온 오늘날의 카타르를 비롯해서 페르시아 만 연안의 긴 해안선을 따라 형성되었던 여러 부유한 요새 형 무역도시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들 무역 도시들은 인도양 무역이 왕성하던 수세기 동안 서로 경쟁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알 주바라는 1811년에 그 대부분이 파괴되어 20세기 초반에는 완전히 방치되었다. 그 후 남아 있던 잡석과 진흙으로 지은 건물들은 무너져갔으며 그런 와중에도 사막으로부터 불어오는 모래의 보호 층이 유적을 서서히 덮어갔다. 지금까지 이 도시의 일부분만이 발굴되었다. 이 유산은 옛 도시의 흔적, 다시 말해 궁전, 모스크, 도로, 중정형 주택, 어부의 오두막, 항구와 이중 방호벽, 내륙 쪽의 운하와 2개의 가림벽, 묘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알 주바라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칼아트 무라이르(Qal’at Murair, ‘무라이르 성’이라는 뜻)’라는 요새의 잔해가 남아 있는데, 이곳에서는 사막의 물 공급을 어떻게 관리하고 보호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1938년에 축조된 또 다른 요새의 흔적도 발견되었다.
알 주바라가 페르시아 만의 다른 무역 도시들과 구분되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알 주바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존속했다는 점, 둘째, 이후 버려진 도시가 되었다는 점, 셋째, 사막의 모래에 뒤덮인 이후 전반적으로 훼손되지 않은 채 방치되었다는 점, 넷째, 소규모의 위성 정착촌과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인근 경쟁 도시들이 남긴 흔적을 통해서 오늘날까지 보다 광범위한 맥락에서 파악이 가능하다는 점 등이다.
알 주바라의 건축 구획은 사막의 모래층 아래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사막 배후지 내에 있는 알 주바라 도시 전체는 18세기에서 19세기까지 페르시아 만 연안에서 무역 사회의 발전과 주변 사막 경관과의 상호작용을 오늘날까지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알 주바라가 이 지역의 다른 정착촌과 어떤 방식으로든 구별되는 점이 있거나 고유하기 때문에 특출한 것은 아니다. 알 주바라는 초기 이슬람 시대 혹은 20세기 이전 이 지역의 주요 해안 도시들에서 성행했던 도시 무역과 진주 채취 전통에 관한 탁월한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곳은 18세기와 19세기 초기에 걸쳐 페르시아 만 지역의 정치적, 인구통계학적 지도를 다시 그리면서 오스만 제국, 유럽 제국, 페르시아 제국의 영향권 밖에서 번성했던 작은 독립국들의 발전을 이끌었으며, 궁극적으로는 페르시아 만 연안에서 근대 국가의 출현을 이끈 도시 기반의 일련의 사례로서 탁월한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완전성
알 주바라는 1811년에 파괴된 이후 폐허 상태로 방치되었다. 19세기 후반에 본래 도시 지역의 극히 일부 구역에서 사람들이 다시 거주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알 주바라의 18세기 도시 설계는 본래의 모습 그대로 거의 온전히 보존되게 되었다. 이 유산은 도시 전역과 인접한 배후지를 포함한다. 유산의 경계는 입지와 기능을 표현하는 모든 속성을 포함하고 있다. 완충지역은 무대와 배경이 된 사막 일부를 포괄한다.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은 발굴되지 않은 구역이나 이미 발굴된 구역 모두 침식에 의해 매우 취약한 상태이다. 그럼에도 계절이 몇 번 바뀌는 지난 수개월 동안 정밀 조사와 실험이 진행되었고, 최적의 안정화와 보호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현재까지 계속하고 있다. 현재 전체 유산은 튼튼한 울타리 안에 보호되고 있으며, 보다 넓은 범위의 환경을 포함한 완전성도 적절하게 보호되고 있다.
진정성
1980년대 초기, 2002년부터 2003년까지, 그리고 2009년 이후의 3단계에 걸쳐 옛 도시의 극히 일부분에 대해서만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다. 1980년대에 이루어진 복구 작업에는 성벽의 복원 작업도 포함되었는데, 일부에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시멘트가 사용되기도 했다. 2009년 이전까지 약 25년 동안은 유지 보수 작업이 부족했던 탓에 노출된 성벽의 상당 부분이 훼손되기도 하였다. 그 결과 초기 발굴 때 밝혀졌던 유적의 진정성이 어느 정도 훼손되게 되었다. 그러나 진정성의 훼손은 유적의 극히 일부분에 그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BR>
2009년 이후 새로운 발굴 작업이 재개되었고, 2011년부터 광범한 실험과 연구를 통해 고안된 공법과 최신의 정보 및 기술을 적용하여 성벽을 안정적으로 보강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공법을 통하여 발굴 지역 부분을 보강하도록 해야 하며 이로써 방문객은 관람이 가능해질 것이다.
보존 및 관리체계
알 주바라는 1980년의 ‘고대유물법 제2호’와 2010년 본 법률의 수정법 제23호에 따라 고고학 유적으로 지정되었고, 따라서 법적 보호를 받는 유산이다. 완충지역은 카타르의 지방자치 및 도시계획부에 의해 법적으로 승인되었다. 그 결과 완충지역 내에서는 향후 어떤 상업적 개발이나 부동산 개발도 허가받을 수 없다.
알 주바라 고고학 유적지가 포함된 알 림 생물권보전지역(Al Reem Biosphere Reserve)과 북카타르 국가유산공원(National Heritage Park of Northern Qatar)은 법적 보호구역이다. 보호 범위를 보다 광범위하게 설정하여 효과적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2013년에 승인될 예정인 ‘마디나 아시샤말 구조 계획(Madinat Ash Shamal Structure Plan)’은 유산을 훼손할 가능성 있는 북동쪽 도시의 잠식으로부터 유산을 보호하게 될 것이다.
문화 유적지의 보호에 관해서 명시하고 있는 ‘카타르 국가 기본계획(Qatar National Master Plan, QNMP)’은 알 주바라 고고학 유적지를 카타르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면서도 카타르 전역에서 가장 중요한 유산 중의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Policy BE 16). 이 때문에 유적지의 보호를 위해 ‘보존 지역’으로 설정되었으며, 정책 결의에 따르면 카타르의 북부 해안(‘해안구역보호지역’), 그리고 알 주바라와 알 샤말 사이의 지역(‘알 샤말 보존 지역’이 포함됨)을 ‘보존 지역’으로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기본계획에 따르면 개발은 보호 지역 밖으로 제한되고, 도로망 구축 계획은 완충지역을 우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카타르 이슬람 고고학 및 유산 프로젝트(Qatar Islamic Archaeology and Heritage Project, QIAH)와 카타르 박물관청(Qatar Museums Authority, QMA)은 2015년까지 유산을 위한 ‘유적관리단’을 공동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2013년 현재 QIAH가 임명한 현장 관리인은 QMA가 임명한 현장 부관리인과 협력하여 일하고 있다. 알 주바라 유산을 위한 국가위원회에는 지역 공동체, 여러 관계 부처, 카타르 대학과 코펜하겐 대학 등의 다양한 이해 관계자 그룹이 포함되어 있고, QMA 부청장이 그 의장을 겸임한다. 이 위원회는 원활한 대화와 유산의 보호, 모니터링에 관하여 QMA에 자문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승인된 ‘관리 계획’은 9년 동안 3단계로 나누어 시행될 예정이다. 제1단계(2011~2015)는 고고학적 조사, 보존, 그리고 2015년에 개관할 예정인 관광객 센터를 위한 계획과 디자인, 능력 배양을 포함하여 관광 개발을 위한 기본 계획의 수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제2단계(2015~2019)는 프레젠테이션과 능력 배양을 위한 중기 전략으로 앞으로 추가될 고고학 조사 및 위험 예방 전략의 개발을 포함할 예정이다. 제3단계(2019년 이후)에 이르면 QMA가 이즈음에 보존되고 소개될 본 유산의 관리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2009년 QMA와 코펜하겐 대학교의 공동 노력으로 ‘카타르 이슬람 고고학 및 유산 프로젝트(QIAH)’가 출범하였다. 10개년으로 계획된 이 프로젝트는 본 유산과 그 배후지에 관해 연구하고 훼손되기 쉬운 유적의 보존을 목표로 삼고 있다.
‘보존 전략’은 특히 흙 건축의 특성에 맞도록 그리고 알 주바라 유적의 요구에 맞도록 개발되었다. 이 보존 전략은 미래 세대를 위해 도시 유적을 보존 및 보강하고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매년 일정한 수의 관람객을 수용하며, 이 도시의 역사를 설명하여 유적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이 지역의 환경 조건과 역사적 건축물의 조성 때문에 보존 작업으로만 유적의 상태 악화를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정기적인 유지 보수 및 모니터링 프로그램이 계획되어 있다. ‘보존 개념’과 ‘보존 매뉴얼’을 포함하는 ‘보존 안내서’는 그 동안 진행되었던 광범위한 조사와 분석에 대한 매우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합의된 보존 전략을 누구라도 손쉽게 참고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보존 활동에 관한 사항을 파악하고 보존 전략의 시행을 최적화하기 위해서 ‘유산 보존 전략 그룹(Heritage Conservation Strategy Group)’이라고 알려진 전문가들이 정기적으로 회의하고 있다. 보존 기법에 관한 훈련 프로그램은 유산 내에서 모든 복원 활동을 담당하도록 특별히 숙련된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 이미 개시하였다.
가혹한 기후 환경에서 훼손될 위험이 매우 높은 유적을 보존하기 위한 과제는 지난한 일이다. 그러나 조사와 분석, 보존을 위한 접근법의 개발, 관람객 관리는 좋은 본보기로 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등재기준
기준 (ⅲ) : 아라비아 반도의 진주-상업 도시로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완벽한 도시 계획인 알 주바라의 버려진 정착촌은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이루어졌던 페르시아 만의 무역과 진주 교역과 전통을 보여주는 특출한 증거이다. 이 시기는 초기 이슬람 시대 혹은 20세기 이전까지 이 지역의 주요 해안 도시들이 지속했던 도시 무역과 진주 채취 전통의 마지막 융성기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기준 (ⅳ) : 배후지의 정착촌으로 이어진 요새화된 도시로서 알 주바라는 무역 거점이라는 전략적 입지를 기반으로 18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 페르시아 만의 정치적, 인구통계학적 지도를 다시 그렸던 일련의 도시 기반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아울러 알 주바라는 18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 오스만 제국과 유럽 제국, 페르시아 제국의 영향권 밖에서 번성한 작은 독립국들의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오늘날의 페르시아 만 연안 국가들이 설립되었던 당시는 인류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기준 (ⅴ) : 알 주바라는 이 지역의 바다 및 가혹한 사막 환경과 인간 사이에서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고유한 증거를 간직하고 있다. 진주를 채취하는 잠수부들이 이용하던 추, 수입산 도자기, 다우선(dhow, 삼각형의 큰 돛을 단 연안 항해용 아랍의 배)에 대한 회화적 묘사, 통발, 우물을 비롯한 농경 시설 등은 무역과 상업이 이 도시의 발전을 어떻게 이끌었는지, 그리고 그 도시의 주민들이 바다와 사막의 배후지와 얼마나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알 주바라의 도시 경관 그리고 비교적 덜 훼손된 바다와 사막의 배후지가 페르시아 만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본질적으로 놀랄만하다거나 고유한 것은 아니며, 독특한 토지 관리 기술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알 주바라가 특출한 이유는 지난 3세대 동안에 완전히 방치된 덕분에 보존될 수 있었던 증거들 때문이다. 지난 세대의 방치 덕분에 알 주바라는 특정한 시기 동안 바다와 사막의 배후지로부터 자원을 얻었던 연안 지역 무역 도시의 화석화된 모습으로서 이해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알 주바라 고고학 유적 [Al Zubarah Archaeological Site] (유네스코 세계유산, 세계유산센터(영/불어 원문))
......^^백두대간^^........
| |
|